우리는 '존재'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마치 그것이 자명한 것처럼, 우리는 '나는 여기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존재'라는 개념 자체를 물으면, 그 대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 방 안에? 내 의식 속에? 타인의 시선 속에? 아니면 이 모든 것의 교차점에?
이러한 물음은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이자 출발점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 물음을 '접힘과 펼쳐짐'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탐구해보려 한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monad) 개념은 서구 형이상학 전통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모나드를 "창문 없는" 자족적 실체로 규정했지만, 이는 모나드가 고립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각 모나드는 우주 전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영하고 표현한다. 말하자면, 모나드는 세계가 접혀 들어간 하나의 응축점이다.
이정우는 『접힘과 펼쳐짐』에서 이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우리 각자는 단순히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독특한 방식으로 접혀 들어온 존재다. 내 안에는 내가 읽은 책들, 만난 사람들, 경험한 사건들, 배운 언어들이 모두 접혀 있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접히고 펼쳐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는 동양 철학의 연기설(緣起說)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인연과 조건들의 네트워크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사유는 우리의 존재 이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존재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이다.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단지 물리학적 원리를 넘어 존재론적 함의를 갖는다. 하이젠베르크가 말했듯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측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관찰 행위 자체가 대상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존재론적으로 확장해보자. 우리가 자신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변화한다. 자기 성찰의 행위는 단순히 기존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생성하는 행위다. 이것이 불확정성의 존재론적 의미다.
따라서 우리의 존재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접히고 펼쳐지는 과정 속에 있다. 관찰자와 관찰 대상,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이며, 모든 존재는 이 상호작용의 접힘 속에서 생성된다.
이러한 사유는 디자인의 영역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접히고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을 설계하는 일이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를 생각해보자. 그 공간은 단순한 콘크리트 벽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빛의 유입 방식, 소리의 울림, 공간의 배치를 통해 방문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디자이너가 모든 경험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 방문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공간을 경험하고, 자신의 내면으로 접어들인다.
여기서 디자인은 하나의 열린 질문이 된다. 그것은 확정된 답변이 아니라, 무수한 가능성의 구조다. '계획된 무계획'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가장 훌륭한 디자인은 사용자의 창조적 참여를 유도하고, 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접고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접힘과 펼쳐짐의 연속이다. SNS에 글을 올릴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특정한 방식으로 접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접힌다. 오래된 노래를 들으며 추억에 잠길 때, 우리는 펼쳐진다.
디지털 시대에는 이러한 접힘과 펼쳐짐이 더욱 복잡해진다. 우리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서로 다른 자아를 구성하고, 각각의 맥락에 맞게 자신을 접는다. 메타버스의 아바타, SNS의 프로필, 직장에서의 페르소나 등 우리는 끊임없이 다중의 접힘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가면의 교체가 아니다. 각각의 접힘은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며,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접힘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재구성한다. 불확정성의 시대에, 고정된 정체성보다는 유동적인 생성의 과정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모나드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나드는 고립된 점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접어 안은 존재다. 우리 각자는 독특한 방식으로 세계를 반영하고, 또한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타자와의 만남은 서로 다른 접힘 방식의 교차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새로운 접힘을 경험하고, 새로운 펼쳐짐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공동체란 바로 이러한 상호 접힘의 네트워크다.
이제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답은 단순하지 않다. 나는 무수한 접힘과 펼쳐짐의 교차점에 존재한다. 나는 과거의 모든 경험, 만남, 생각, 감정이 접혀 있는 존재이며, 동시에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펼쳐지는 존재다.
이정우의 『접힘과 펼쳐짐』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에게 존재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준다. 존재란 결코 완성되지 않는 과정이며, 끊임없는 생성의 흐름이다. 우리는 모두 세계를 품고, 세계와 함께 접히고, 또 펼쳐지는 존재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접혀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펼쳐지고 싶은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방식 자체를 묻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접힘과 펼쳐짐의 존재론은 우리에게 새로운 자기 이해와 세계 이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