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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Mar 24. 2022

처음 만난 시어머니와 목욕탕에 간 썰


내 남편은 중국계 캐나다인이다.


남편은 혼자 어린 나이에 캐나다로 유학 왔지만, 시부모님은 계속 중국에 남아계셨고, 따라서 영어를 전혀 못하신다.


나는 대학교 때 중국어에 관심이 있어서 북경으로 어학연수까지 다녀왔지만, 그 후로 오래 안 썼더니 중국어 실력이 많이 후퇴하였다.


결혼식을 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면서 시부모님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 전엔 화상통화로만 인사드림). 처음 만나는 자리다 보니 더 쑥스럽고, 소통의 제약도 있어 처음 며칠은 신랑 뒤만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다 일주일쯤 지났나? 신랑이 집 앞 마트에 뭔가를 사러 잠깐 나간 사이에 어머니와 나만 집에 남게 되었다. 둘이 어색하게 미소만 주고받다가, 어머니가 대뜸 중국어로 물으셨다.


"J야, 너 오늘 밤에 샤워할 거니?"


왜 물으시는지 몰랐는데, 혹시 보일러를 켜야 한다거나 그런 일 때문인가 싶어 그러겠다 대답했다.


그랬더니 눈이 살짝 커지며 얼굴이 밝아지셨다.


"오, 정말?? 정말 목욕할 거야?"


나는 이번엔 고개까지 끄덕이며 그러겠다 대답했다.

(왜 그때 이상하단 눈치를 못 챘을까?)




시간이 흘러 저녁시간이 되었다.


밥을 다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식탁에서 일어나시더니 거실 근처에서 뭔가를 분주하게 챙기셨다.


나는 속삭이듯 신랑에게 물었다.


"자기야, 어머니 지금 뭐하셔?"

"엄마가 너랑 밥 먹고 목욕 가기로 했다는데?"

"엥?? 목욕?? 내가? 어머니랑? 아닌데?"

"엄마가 너랑 목욕 간다고 지금 목욕가방 챙기시잖아."


아.... 아까 낮에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나한테 목욕하겠냐고 물어보신 게 아니고, 당신과 목욕탕에 가겠냐고 물어보신 거였다.


"헉, 아니야 아니야ㅠㅠ 나 아까 잘못 알아들어서 실수했나 봐"


신랑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그럼 엄마한테 아까 네가 오해해서 잘못 대답했다고 하면 돼. 걱정 마, 내가 말씀드릴게."


신랑이 어머니를 부르려는 찰나, 어머니의 상기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 밝은 얼굴도 가방을 챙기시는데, 그 표정이 얼마나 신나 보이는지 부르시지도 않는 콧노래마저 들릴 지경이었다.


남편은 외아들이다.

어머니는 평생 딸과 목욕탕 가보는 거 못하셨겠지...?


‘목욕탕 한번 같이 가는 것 갖고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안 가겠다고 해....’


"아니야, 나 그냥 갈게.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가서 조용히 씻고 나오지 뭐"

"진심이야? 너 불편한 데 억지로 갈 필요 없어."

“아니야, 괜찮아.”




결국은 어머니 손을 붙잡고 집 근처 목욕탕으로 향했다. 남편과 시아버지까지 모두 함께 하는 가족 목욕탕 나들이였다. 가족의 첫 목욕탕 나들이니만큼, 어머니는 호텔에 있는 좋은 곳으로 가자고 하셨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어머니...).


남자 둘은 남탕, 여자 둘은 여탕에 갔고, 나는 쭈뼛쭈뼛 옷을 벗으며 생각했다.


‘얼른 가서 대충 샤워만 하고 나오자!’


그러나 그다음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물론 거기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작은 동네에 있는 목욕탕이다 보니, 어머니는 두 명 걸러 한 명 꼴로 아는 얼굴이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며느리라며 나를 소개시키셨다.


“우리 며느리! 울 아들 이번에 결혼했잖아~! 너무 이쁘지?”

“하이고, (전신 스캔하시며) 곱다 고와~ 축하해요!”


“니 하오, 씨에씨에 (안녕하세요오...감사합니다...)”


내가 시댁에 와서 처음 일주일 동안 만난 사람보다, 그 짧은 시간 목욕탕에서 더 많은 분과 인사를 했다.


온 김에 때까지 밀고 가자고 하셔서 마지못해 그러자 했더니, (한국에서도 비싸다고 안 해본) 세신사 분께 서비스 예약을 해 주셨다. 어머니와 옆 침대에 나란히 누울 때쯤엔 나는 될 대로 돼라 반쯤 포기한 상태였고, 어머니가 세신사 두 분과 즐겁게 수다를 나누시는 동안 나는 마지막 남은 멘탈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어머니랑 한층 가까워진 기분이었고, 그날 집에 와서는 둘이 나란히 누워 얼굴에 팩도 했다.


그날 밤 신랑한테 목욕탕에서 있던 일 얘기를 하면서 둘이 얼마나 낄낄대고 웃었는지 ㅋㅋㅋ 나는 그걸 내 인생에 "진짜 ! 한번 있을 대박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 후로 시댁 방문 시 필수코스로 목욕탕 가는 일정이 추가되었다. ㅋㅋㅋ



(지금은 시부모님이 캐나다로 이민 오심, 다행히(?) 캐나다에는 대중목욕탕이 없음. 휴우…)




사진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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