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Lee Jun 06. 2022

시아버지한테 손편지가 왔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시부모님은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예뻐해 주셨다.


이왕이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며느리가 들어와 당신들과 조잘조잘 얘기도 나눴으면 좋았겠다 하는 바람이 왜 없으셨겠냐만은, 두 분 다 처음부터 나를 그 모습 그대로 예뻐해 주셨다.


아니, 나를 좋아해 주시기 이전에 당신의 아들인, 나의 남편의 선택을 전적으로 믿어 주셨던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사시는 시부모님과는 1,2년에 한 번 정도 뵙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인지 늘 서로가 애틋했고, 두 분은 우리가 올 때마다 나를 100% 손님으로 대접해 주셨다.


내가 요리를 잘 못한다는 건 진작에 들어서 아셨다고 해도, 그 흔한 설거지 한번 시키지 않으셨다. 시아버지는 내 손을 보시더니 “집안일 한 번 안 해본 고운 손” 이라며, 나는 부엌에도 못 들어오게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시아버지로부터 편지가 한 장 도착했다. 손편지였다.


수신인은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지만, 가뜩이나 짧은 내 중국어 실력에 멋지게 필기체로 휘날려 쓴 편지는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어 바로 남편 손으로 넘어갔다.


구름은 남편, 무지개는 내 이름


편지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남편에게 하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J를 잘 보살펴 주어라”

“집안일은 네가 더 많이 해라”

“J 화나게 하지 말거라”


나는 그중에서도 나를 화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ㅋㅋ 남편한테도 그 부분을 밑줄 쫙 여러 번 강조하고,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가득 안고 편지를 다시 고이 접어 서랍 한쪽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 우리의 첫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나는 시부모님께 답장을 쓰기로 했다.  


며칠에 걸쳐 작문을 하고, 남편의 도움을 받아 연습장에 미리 몇 번 써 본 후, 예쁜 카드를 골라 한 자, 한 자 직접 옮겨 적었다.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세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저희가 결혼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네요.


로 시작하는 별 것 없는 내용이었지만, 내 편지의 하이라이트는 그다음 부분에 있었다.



나는 시아버지의 세 번째 당부 말씀이었던 "J를 화나게 하지 말거라" 부분을 가위로 오려다 내 편지에 붙이고, 아버지 말씀 덕분에 다툼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을 글에 담았다.  


(아, 물론 원본을 훼손할 수 없어 복사본을 오렸다.)


내 이 깜찍한 아이디어가 담긴 편지는 시부모님께 잘 전달되었고,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내 편지는 우리 가족의 대화거리로 등장하는 인기템이 되었다.ㅎㅎ







이전 07화 남편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