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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Jul 01. 2022

시어머니 왈, “넌 참 복도 많다”

‘진짜 소통’의 중요성


결혼식 날, 신부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내게 부산스럽게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네던 대학 선배 한 명이 있었다.


"어머어머, J야, 너 진짜 ‘외국인’하고 결혼하는구나! 너 근데 진짜 의사소통에 문제없겠어?"


그러더니, 갑자기 낯빛이 바뀌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하긴... 내 남편을 보면, 그게 언어가 같다고 다 말이 통하는 건 아니더라... 에효, 암튼 축하해!!"


연지곤지 찍고 얌전히 앉아 있는 내 앞에서 마치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찍는 것 같던 선배 언니의 모습에 풉! 웃음이 났던 기억이 난다.



감사하게도 그간의 결혼생활 동안 나는, 남편과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둘 다 영어를 아주아주 유창하게 해서 문제가 없나 보다고 짐작할 수도 있는데, 내가 여기서 말하는 문제없음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영어는 남편과 나 모두에게 제2외국어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모국어만큼의 편함은 없다. 다만 그런 ‘완벽하지 않은’ 의사소통으로 인한 오해나 불필요한 감정싸움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시부모님과는 얘기가 달랐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난해, 시부모님이 우리 신혼집 구경도 하실 겸 멀리 중국에서 오셨다. 둘째 날,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나와 나란히 앉아 계시던 시어머니가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넌 참 복도 많다.


나는 시부모님을 딱히 어려워하는 며느리가 아니었기에, 바로 받아서 대답을 했다.

 

"(저 같은 와이프를 만난) A도 복이 참 많죠?"

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말이 맞다” 하셨다.


그리고 그날 오후,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 시어머니는 같은 말을 또 하셨다.


"너는 차암- 복도 많다."


아들 사랑이 남다르신 분이라 당신 아들 같은 사람을 남편으로 둔 내가 복이 많다고 하시는 듯한 말씀이었다. 나 역시 남편한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시어머니 입을 통해 두 번이나 들으니 기분이 그냥 그랬다.


그리고 그날 밤, 잘 시간이 되어 굿나잇 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려다 말고 뒤를 돌아서 나를 보시더니, 무려 세 번째로!!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복이 많다고...



마침 남편은 부엌을 정리하고 있고, 나는 소파에 앉아 폰을 확인하고 있던 터라, 더욱 민망한 상황이었다.


내 귀한 아들이 밖에 나가 돈 벌어오지, 집에서는 살림도 맡아하지, 며느리는 공부한다고 바쁘다던데, 어떻게 그렇게 복이 많아, 내 아들 같은 남편을 만났을꼬?


하아... 모든 아들 가진 시어머니들은 다 자기 아들이 최고인 줄 안다던데, 우리 어머니도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해져 나도 모르게 약간의 썩소와 함께 굿나잇 인사를 했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남편한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어머니가 하신 말씀, 영어로 "You are lucky" 맞지?" 남편은 내 얘기를 제대로 듣긴 했는지 싱크대의 물기를 닦으며 "응" 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흠... 나 그렇담 기분이 좀 그래.”


내가 기분이 나쁘단 얘기에 남편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조금 당황한 눈빛이었다.


"아니, 왜 아까부터 자꾸 나보고 복도 많다고 하셔? 오늘만 세 번째야."


남편은 그 대화 자체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마 운전하면서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그 말씀을 딱히 새겨듣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가 오전에 차에서 하신 말씀, 점심 먹고 나오다 같은 말씀 하신 얘기를 들려주니, 남편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어머니가 어떤 '뉘앙스'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 설명을 듣고서야 내가 어머니 말씀을 내내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가 내게 몇 번이고 하신 그 말씀은...

"  복도 많다" 아니고, "네가 복덩이다" 였다.


같은 "복이 있다”는 말이 이렇게 달리 해석될 수 있다니! 어설프게 중국어를 하는 내가 오해해서 잘못 알아듣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아마 그날 기분이 상했다고 남편한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면 그 후로도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속상해했을지 모르겠다.



글벗님들은 “소통” 잘하고 계신가요?

그저 ‘언어’를 교환하는 수박 겉핥기식의 소통이 아닌, ‘마음’까지 나누는 진짜 소통을 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사진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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