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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May 26. 2022

결혼 2년 차에 주방에서 쫓겨났다


대학생 시절 대화의 한 토막.


아빠: "우리 딸, 할 줄 아는 요리 하나 없어서 나중에 결혼하면 욕먹을까 걱정이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배워둬야 하는 거 아니니?"


엄마: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어. 미리부터 배울 필요 없어."


그땐 어려서 몰랐는데, 아빠의 걱정도 엄마의 반대도 다 사랑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행여나 내 귀한 딸이 "제대로 배워오지도 못한 며느리" 취급을 당할까 걱정이셨을 테고, 엄마는 한번 시작하면 평생 하게 될 집안일을, 당신 딸만큼은 가능한 한 늦게 시작했으면 하셨을 것이다.


그런 엄마 아빠의 걱정에 나는 대답했다.


"나는 결혼해서도 안 할 건데? 요리 잘하는 남자 만나면 되지! 그게 안되면 이모님 쓰면 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 말임. 그런 풍요로운 삶을 살아 본 적도 없음. 오해 없으시길 바람.)


그러면 엄마야 좋지. 우리 딸 제-발 그렇게 풍족하게 살아줘, 응?


그리고 나는...

돈은 없지만 요리는 잘하는 남자를 만났다. ㅎㅎ




결혼 전 자취를 오래 한 남편은 요리를 곧잘 한다.

나는 요리에 취미도, 특기도, 관심도 없다.


그래도 결혼 초반부터 아예 안 한 건 아니었다.


내가 먹고 싶은 밑반찬이 있거나, 레시피를 몇 개 뒤적이다가 '이 정도면 시도해볼 만하겠다' 싶은 게 있으면 필요한 재료를 사다가 해보기도 했다.


진미채 하나 하느라 온갖 살림살이 다 나옴 ㅋㅋㅋ


그러던 어느 날, (미리 양념된 걸 마트에서 사 온) 제육볶음을 메뉴로 정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양파를 꺼내 반으로 잘라보니 양파가 썩어 있었다. 썩은 양파를 옆으로 밀어 두고 두 번째 양파를 깠는데, 두 번째 것도 세 번째 것도 다 썩어 있는 게 아닌가.


'뭐 양파는 꼭 안 넣어도 되잖아?’ 하며 썩은 양파를 음식물 쓰레기통 옆으로 밀어 놓고, 고기를 팬에 넣고 열심히 볶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다.


내가 부엌에 있는 게 영 불안했는지 어느새 남편은 내 옆으로 와서 뭐를 어떻게 하나 지켜보다가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나란히 있는 양파 3개를 발견했다.


"얘네는 왜 다 반토막이 나 있어?"

"이거 다 썩었어, 다 버려야 돼ㅠㅠ"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이거 지난주에 사 온 거야"

"여기 봐봐, 다 썩어갖고 이렇게 우윳빛 액체가 나오잖아"

 

그랬더니 남편이 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양파가 원래 그래. 하얀 진액이 나오는 양파는 오히려 신선하다는 증거야.ㅋㅋㅋㅋㅋ"


찾아보니 진짜였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런 정보를 남편은 어떻게 알았을까? ㅋㅋ (독자님들! 솔직히 이거 저만 몰랐나요?^^;)




그날부로 나는 부엌에서 퇴출됐고,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집 메인 셰프는 남편이다.


남편이 해 준 다양한 요리들


나야 뭐 땡큐지! ㅎㅎ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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