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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Jun 12. 2022

남편이 “중간역할”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


결혼 전부터 딩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각자의 부모님께 그 사실을 고했다.


나는 직접 화법을 썼고, 엄마 아빠는 별다른 내색 없이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속으로는 조금은 서운하셨을지 모르겠다.)


시부모님께는 남편이 알아서 얘기하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을 믿었지만, 시부모님의 반응은 조금 걱정이 됐다. 직접적으로 압박을 주시진 않아도, 슬쩍슬쩍 떠 보는 식으로 물어보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지난 결혼 생활 동안 시부모님은 나에게 "아이"에 관한 얘기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다.


가끔은 궁금했다. 우리의 선택을 "이해"하신다고는 해도 전혀 조금도 "섭섭"하시진 않으셨을지.



나에게는 (아이를 원하는) 언니가 있어 우리 부모님은 손주를 보실 가능성이라도 있었지만, 아들 하나를 둔 시부모님은 평생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일은 포기하셔야 되는 일이었다. 서운하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한테 별말씀 없으시니 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몇 년을 살았다.




그렇게 결혼한 지 5년쯤 지난 어느 날, (기억나지 않는 어떤 대화 끝에)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그런 상황이면 어머니가 나한테 직접 전화하셨겠지."

"우리 엄마 네 번호 몰라."

"엥? 어머니가 내 번호를 모르신다고?"

"응."

"왜? 내 번호 안 물어보셨어?"

"물어보셨지."

"그런데???"

"내가 안 가르쳐 드렸어."


남편 말에 의하면 결혼 초 어머니는 내 번호를 물어보셨다고 한다. (언어가 달라 말이 안 통하니) 전화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알아는 둬야 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그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간단했다.


어차피 전화 안 할 거,
번호는 알아서 뭐하시느냐고.



그렇게 결혼 생활 5년이 넘도록 시부모님은 내 번호를 아예 모르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머니가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번호 정도는 알아두셔도 될 텐데, 너무 차갑게 거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았다.


사실 시부모님은 손주를 원하셨을 테고 그 표현을 남편한테는 이리저리 하셨던 모양이었다. 남편은 얘기를 들어 드리면서도, "J한테만큼은 절대 아이에 대한 압박을 하지 마시라" 강조했고, 전화번호를 가르쳐 드리지 않는 건 그가 생각한 "중간 역할"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남편은 가끔 내게 말했었다. 부모님 나이가 되면 이미 그들이 살아온 방식과 태도가 있어, 그건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그분들의 생각이 우리와 같거나,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는 범위라면 서로 맞춰 살아가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설득해서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그리고 혹시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아들인 자기는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수 있지만, 며느리인 나는 그러지 못할 테니, 남편 입장에서는 그런 일 자체를 차단하는 것으로 문제를 막은 것이었다.



남편은 그의 방식대로 나를 지키고 있었다.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중간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덕분에 나는 시부모님을 어려워하지 않는 “예쁜 며느리 역할   있었을지 모르겠다.





사진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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