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Lee Aug 07. 2022

전여친한테 받은 남편의 명품 지갑


나를 만나기 전 남편은 ‘저축’보다는 ‘소비’에 집중된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좋은 레스토랑에 가고, 원하는 옷이나 신발이 있으면 큰 고민 없이 사는 그런 사람. 돈이 많거나 돈을 엄청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그저 월급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며 사는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사람이었다.


반대로 나는 돈을 쓸 때보다 통장에 잔고가 쌓여갈 때 더 기쁨을 느끼는 타입이었던 데다가, 엄마의 초특급 경제 교육관 (이라고 쓰고 “짠순이”라고 읽음) 덕분에 만 원짜리 티셔츠 한 장 쉬이 사지 못하던 성격이었다.




연애 초반 남편은 루이뷔통 반지갑을 가지고 다녔다.


지갑에 촘촘히 박힌 로고가 '나 비싼 몸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아이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지갑의 출처가 남편의 전여친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은 민망해하며 버렸으면 좋겠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이 귀한 걸 버리긴 왜 버려, 낡아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써야지! ㅎㅎ”


(그리고 있잖아... 나도 사실 이 구두 전남친한테 받은 거야. 내가 종종 입는 겨울 옷 중에는 심지어 그 사람과 커플룩으로 샀던 것도 몇 개 있어.)

이건 독자님들과 나의 비밀, 지켜 주실 거죠?


그런데... 가만!
네가 루이뷔통 지갑을 받았을 정도면,
넌 전여친한테 대체 뭘 사준 거니?


대체 어떤 명품을 얼마나 사 준거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자꾸 자기는 하나도 해준 게 없다고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그래, 이제 와서 그거 알아서 뭐하게. 나도 차라리 모르는 게 낫지.


그렇게 ‘Spender’와 ‘Saver’가 만났다.




#그의 이야기


1. 남편과 데이트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내가 지나가는 말로 ‘나도 기타 배우고 싶다'라고 한 한마디에, 그는 다음 데이트에 바로 새로 산 기타를 선물로 들고 왔다. 차 뒷자리에서 짜잔- 하며 커다란 기타를 꺼내는데, 감동보다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결국 그 기타는 한 번도 연주되지 못한 채 중고마켓에서 반값에 팔렸다.



2. 어느 날 그의 자취방에 놀러 갔는데, 거실에 골프클럽 세트가 든 가방과 골프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몰랐는데... 골프가 취미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친구 따라 딱 한 번 가봤다고 했다. 딱 한 번 필드에 나갔다 와서 골프 세트를 장만한 그였다.


골프클럽과 골프화 모두 꽤 오랫동안 그의 자취방 한쪽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있다가, 이 역시 중고마켓을 통해 새 주인을 찾아갔다.



3. 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2년 전쯤 새로 뽑은 차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차는 3~5년에 한 번씩 바꾸고 싶다고 했다. 다음 차는 무려 BMW를 타고 싶다며...


그랬던 남편은 그 차를 아직까지 타고 있다. 14년 동안 29만 킬로미터를 뛰었다. 이제는 내가 좀 바꿨으면 싶은데, “아직 이렇게 멀쩡한 데 몇 년은 더 탈 수 있다”며 남편이 괜찮다고 한다.



#나의 이야기


1. 연애 초반, 나는 <섹스 앤 더 시티>라는 시트콤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안 남편은 어느 날 시즌 1부터 시즌 6까지 전편의 DVD를 선물이라며 사 왔다. 친구한테 빌리거나 해서 보면 되는데, 괜히 거금을 쓴 것 같아 미안했다.


그 뒤로 전 편을 몇 번이고 봤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2. 결혼 초반에 나는 크기에 비해 다소 무거운 헤어드라이어를 쓰고 있었다. 돈이 없던 어학연수생 시절에 중고마켓에서 산 드라이어였다. 조금 무겁고 소리가 크다는 점 외에는 문제가 없어 잘 쓰고 있었는데, 내가 지나가는 말로 '좀 가볍고 빨리 말랐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 남편은 또 바로 폭풍 검색에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볍고, 조용하고, 성능 좋은 새 제품을 사 왔다.


70 가까이줬다고 해서  그럴 필요가 있었나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런데 그때  헤어드라이어를 지금까지 5 넘게  쓰고 있다. 정말 가볍고 조용하고 빠르게  말린다.




돈을 무조건 아낄 줄만 알았던 나는, 돈이란 무조건 아끼는 것보다는 현명하게 쓸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로 인해 얻는 행복의 가치도 있다는 걸 배웠다.


필요한 건 망설임 없이 지르고 보던 남편은, 물건을 사기 전 이게 진짜 꼭 필요한 지 먼저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였고, 계란 한 판을 2불 더 싸게 살 때의 즐거움 같은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몰랐던 가치를 그에게서 배웠고, 남편은 새로운 즐거움을 나로 인해 알았으니, 이 역시 정말 감사한 일이다. 늘 서로에게 배운다.


 



사진출처: Unsplash.com



이전 12화 남편이 “중간역할”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