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식 그렇게 먹는 거 아니야
한국인이 아닌 남편과 살다 보니 가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재미있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음식에 대한 일이다.
요리를 곧잘 하는 남편은 비빔밥, 된장찌개, 불고기 등 내가 좋아하는 한국 요리도 종종 해주는데, 레시피를 따로 찾아보지 않고도, 그저 한국 음식점에서 먹어 본 맛을 기억해서 하는 것 치고는 늘 꽤 비슷하게 맛을 내는 편이다. 이런 그를 나는 능력자라 부른다.
그런 그에게도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그 음식에 대한 특별한 느낌이나 추억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나에게 있어 “잡채”는...
‘잔치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생일이나 명절, 혹은 집들이 등으로 손님을 초대할 때 잘 빠지지 않는 메뉴. 반면, 남편에게 잡채는 그냥 수많은 한국 요리 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나 같은 요리 똥손은 아예 시도조차 하기 힘든 음식인데 반해, 뭐든 뚝딱뚝딱 해내는 남편에게 잡채는 특별히 손이 많이 가는 요리가 아니라고 했다. 가만히 보니, 채소를 하나하나 볶지 않고 그냥 다 같이 넣고 볶아버리더라. (뭐 어때? 어차피 결국 다 섞일 건데 ㅎㅎ)
다시 말해 그에게는, “이 요리는 이렇게 하는 것”, “이 음식은 이럴 때 먹는 것” 같은, 그 문화 속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학습된 고정관념이 없다.
신혼 초 어느 주말, 남편이 저녁으로 잡채를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렸는데, 저녁이 다 됐다고 불러서 가보니...
이게 웬걸?
잡채만 두 접시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파스타볼 같은 꽤 큰 접시에 각각 하나씩.
나: 헉! 잡채를 뭐 이렇게 많이 담았어? 그리고... 밥은? 다른 반찬은 뭐 없어?
남편: 밥?? 잡채가 있는데 밥을 왜 해?
알고 보니 남편은 잡채를 라면, 칼국수, 냉면, 쫄면 같은 일종의 면요리로 이해했던 것이다. 남편은 잡채야말로 면 요리계의 김밥 혹은 비빔밥 같은 것 아니냐며, 이 자체로 이것저것 채소와 고기까지 섞여 있는 훌륭한 요린데 밥이 왜 따로 필요하냐고 물었다.
엥? 듣고 보니 또 틀린 말 같지는 않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잡채를 '면 요리'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엄연히 '당면'이라는 면이 들어가는 면 요린데, 그렇다고 잡채를 라면이나 칼국수 같이 단일품으로 먹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다.
남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일단 젓가락을 들었는데, 역시 평생을 "잡채 = 반찬" 공식으로 산 나이기에 내내 뭔가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그 뒤로 잡채를 할 때면 남편은 꼭 밥도 같이 준비해 준다. 거기에 김치나 김만 추가해도 부족함 없는 밥상이 되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