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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Jul 27. 2022

누구냐, 내 남편한테 소맥을 알려준 게!


때는 2017년 겨울, 오랜만에 한국에 가는 비행기표를 끊어 놓은 상태였다.


크리스마스 휴가까지 알차게 묶어 무려 3주나 한국에 다녀오는 계획을 세워놓고 한참 들떠 있었는데, 출국을 단 2주일가량 앞둔 시점, 남편이 (무슨 촉이 왔는지) 내 영주권 카드 만료일을 한번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헉!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짜는 1월 13일인데, 내 영주권 만료일은 1월 10일이었다. 아... 딱 3일만 더 있었어도 ㅠㅠ


캐나다 영주권은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데, 만기 전에 미리 신청서를 보낸다는 걸 깜빡한 내 잘못이었다.


부랴부랴 가족한테 전화해서 상황을 알리고, 여행사에 전화해서 비행기표 변경이 가능한 지부터 알아봤다. 다행히 1월 9일 날 돌아오는 비행기에 남은 좌석이 있었다. 추가 비용도 20만 원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얘기를 전해 들은 남편이 내 표만 바꾸라고 했다. 자기는 원래 일정대로 있다가 1월 13일 날 돌아오겠다고.


엥?? 한국말도 못 하는 네가 우리 엄마 아빠랑 혼자서 며칠을 더 지내다 오겠다고?


그의 결정을 전해 들은 엄마는 마냥 좋아하셨고, 아빠는 황당해 하시며 그게 A 뜻이 맞는지 재차 물으셨다. (그럼 뭐! A가 나한테 가스라이팅이라도 당한다는 거야 뭐야 ㅋㅋ)


"아니, 아빠, 진짜라니까. 내가 그냥 20만 원 추가로 내고 같이 돌아오자고 했는데, 괜찮대~ 그 돈 아깝게 뭐하러 내냐고. 자기는 엄빠랑 며칠 더 있다가 캐나다로 혼자 돌아오겠대 ㅋㅋㅋ"




그래서 결국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친 나는, 한국말도 못 하는 남편을 한국 엄빠 집에 놔둔 채 혼자 돌아왔다. 나 없이 잘 지낼 수 있으려나... 내심 마음이 쓰였는데, 그는 와이프 없는 처가에서 아주 재밌고 알찬 시간을 보내고 왔더라.


1. 엄마는 매일 A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사진을 보니까 광화문, 똥 박물관 (ㅋㅋㅋ), 서울타워, 남대문시장 등엘 갔고, 엄마 친구 모임에도 데려갔다.


누가 보면 모자사이인 줄 ㅎㅎ


2. 그 둘을 내내 따라다니며 찍사 역할을 자처한 아빠는, 사진 찍는다고 한 겨울에 장갑도 못 끼고 다니다가 감기에 걸리셨다.

남자들끼리 농구대결 한 판! ㅎㅎ


3. 언니는, (아무도 안 시켰는데) 한국의 술 문화(?)를 알려 주겠다며 본인 퇴근 시간에 맞춰 남편을 불러내, 곱창, 닭발, 옛날통닭, 산낙지, 육회 등 한국의 술안주를 소개하는 일을 담당했다. 술도 소주, 맥주, 막걸리 등 다양하게도 마셨더라.


(아, 참고로 언니는 중국어를 좀 할 줄 알아, 남편과는 크게 어려움 없이 대화가 된다.)


나도 한 번도 안 먹어 본 다양한 술 안주들


그리고 남편한테 소맥 마는 법을 알려줬다. ㅋㅋㅋㅋ


나중에 캐나다로 돌아온 그는 언니한테 전수받은 대로 맥주잔에 소주와 맥주를 일정 비율로 넣고, 숟가락을 힘 있게 팍 꽂아서 거품을 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ㅋㅋㅋㅋ 언니야?? 이런 거 왜 가르쳐 준 거니.ㅋㅋ


출처: blog.paradise.co.kr/502


덕분에 남편은 남편대로, 우리 가족은 우리 가족대로 잊지 못할 추억을 한가득 만든 시간이었다.


영주권 만료일 확인도 제대로   칠칠이 딸내미 덕분에,  주고도   값진 경험을 얻은 우리 부모님. 그리고 정작 친동생이랑은  번도  가져본 술자리를 부와 씐나게 즐긴  언니.ㅋㅋㅋ 


아빠는 그때 그 시간이 정말 너무나 특별했다고 지금도 말씀하신다.


어휴, 그때 나 혼자 안 돌아왔음 어쩔 뻔했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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