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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공오삼이 Feb 06. 2021

기획자의 시선

J 이야기

비엔나ㅣ CAFE MUSEUM




동경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백만 가지 것들이 서툴고 어색했던 나의 첫 사회생활은 부산스러웠다. 팀의 막내로 발탁되어 간식거리를 마련하는 그 사소하디 사소한 일 조차 쩔쩔매는 내가 참 못나보였다. 나에 대한 실망감이 엉겨있던 시기,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선배가 있었다. 맡은 일을 똑 부러지게 처리했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팀의 신뢰를 한 아름 받던 H. 언제부턴가 그녀를 남몰래 동경했던 것 같다. 발레 하는 마케터라는 수식어가 참 멋있었는데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자기에게 꼭 맞는 색깔을 찾았다는 그 발견(發見) 자체였다. 부러움과 동시에 더욱 강하게 느꼈던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대감이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한주는 평소 동경하던 자신의 사수(소진)에게 이러한 취중고백을 한다.

입사했을 때 대표님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보다 딱 세 살이 많으셨어요. 이제 저한테 3년 남았으니까 3년 후에 난 대표님처럼 이렇게 강하고 정확한 사람이 되어있을까? 그 기대감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해요.


H가 나에게 그랬다. 나의 1년 선배이자 바로 눈 앞에 보이는 1년 후 나의 미래였달까. 그 기대감을 실현해내기 위해 나는 H의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따라 했다.



작별

정말 딱 1년이 흘렀다. 나는 과연 좀 성장을 했을까? 궁금하던 찰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려왔다. 갑작스럽게도 H가 퇴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 선배는 퇴사 스토리조차 또 왜 이렇게 멋있던지. 오래전부터 이루고 싶었던 꿈 승무원에 합격하여 글로벌한 부서에 있었음에도 난생처음 듣는 도시, 카타르의 도하(Doha)로 떠난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좀 파트너로 일할 수 있는 내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 비슷한 감성의 소유자로서 퇴근 후 을지로에서 같이 다녀보고 싶은 곳도 갑자기 참 많아져 버렸는데. 서운함, 아쉬움, 대견함 이 많은 것들이 맴도는 감정이 복잡했다.



또 다른 시작

그렇게 H는 떠났고 나는 사무실에 남아 그간 쌓아 올린 내공을 누구와 함께 나눌지 몰라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한 적응기를 겪어내던 그때 즈음 H가 한국에 잠시 귀국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곧바로 연락했다. 봄이 오기 직전 그 추웠던 겨울날, 자취방 앞 길가에서 손을 호호 불면서 긴 통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6시간의 시차, 7,000km의 거리만큼이나 나와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H의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나도 두근거렸다. 내가 그토록 궁금했던 세상 이곳저곳 타지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 산 증인이었고, 함께 다녔던 회사의 오프 더 레코드를 나눌 수 있어 안주 없이 술을 즐길 수 있는 말동무였다. 그 통화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멀리 떨어져 버리고 나서 H를 더 진득하게 만나게 되었던 그 시작이.



공감

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다. 나의 퇴사 그리고 H의 귀국. 우연하게도 서로 자신에게 집중하고 방황하기도 하는 그러한 시기를 함께 보내었다. 근황을 나눌 때면 관심사가 꼭 맞아떨어졌다. 우리를 가장 흥분시켰던 주제는 포르투갈 그리고 독립서점. 퇴사 후 유럽으로 떠났던 나는 유독 포르투갈에서 H의 생각이 많이 났다. H와 꼭 맞는 나라를 찾은 것 같아 알려주고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H가 항공사에서 제공받은 마지막 티켓의 목적지가 포르투갈이었단다. 여행에서 담아온 그 감정들이 누군가의 설렘으로 전달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독립서점을 찾기 시작한 이유는 퇴사 후 책을 구매하는 스펙트럼의 확장과 공간이 주는 힘에 대한 관심이었다. 주인장의 생각을 담은 큐레이션, 다락방 같이 오만가지 가득한 공간 그리고 책의 향까지. H와 만날 때면 그동안 다녔던 책방을 공유했고

늘 길고 긴 이 이야기의 끝은 '우리 그러지 말고 그냥 하나 차리는 게 어때?' 였다. 



동행

지금의 나와 H는 포르투갈로 떠나보지도, 책방의 사장님이 되지도 못했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여정에 이 글들이 어떠한 든든한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 같다. 비슷한 갈색빛의 따뜻한 감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글쓰기라는 행위를 예찬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각별한 열의를 가진 나와 H. 콜라보의 시대라 했던가. 우리의 작은 콜라보로 인한 그 시너지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고 독자들에게 좋은 에너지로 전달되기를 소망한다.




J 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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