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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해 Sep 26. 2022

인생이 참 바운스 바운스하다

지난주 금요일 출장을 다녀온 후 주말 내내 잠을 잤다. 주말 내내 비몽사몽이었던 건 매년 있는 특정감사를 올해는 최고참 선배가 빠지면서 내가 총괄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작년에도 특정감사 결과보고서는 내가 작성하였지만(최고참 선배가 바쁘다는 이유로) 올해는 전면 총괄을 하다 보니 이만저만 신경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적 건수가 너무 없어서 특정감사를 소홀히 했다는 평을 받을까 봐...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서 해결할 수도 없는 부분까지 지적하게 될까 봐...

감사라는 게 성과적인 측면이 있어서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진행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감기관이 납득할 수 없는 부분까지 긁어모으는 실수를 해서도 안되었기에 그 중간을 찾아 방향을 잡아나가는 게 참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잠을 너무 많이 잔 탓에 월요일 출근을 하고서도 정신이 몽롱하였다. 출장 결재를 올리고 팀원과 출장을 나서려는데 팀원이 오늘도 특정감사가 있냐라고 되물었다.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뭐라고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팀원이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 팀원에게 감사 일정을 다시 전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어떻게 특정감사 일정도 숙지하지 않고, 심지어 특정감사가 있는지조차 모를 수가 있지? 일정에 대해 사전에 조율도 했고 다른 일과 겹치지는 않는지까지 미리 알아보았는데도 어떻게 저렇게 무신경할 수 있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 팀원의 무신경함에 실망감도 매우 컸다.


수감기관에 가는 동안 팀원은 연신 사과를 하였는데 그 사과 또한 왜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러고선 돌아서서 'ㅇ주무관은 너무 예민해'라고 떠들겠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직생활을 하고 조직원의 일부가 된 이상 각자의 몫은 알아서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감사 자료 숙지가 안 되어있던 팀원을 이끌고 감사를 다니는 것도 정말이지 힘이 드는데 알고 보니 일정도 숙지가 안되어있다라니...

하느님 맙소사!(저는 무교입니다만...)를 마음속으로 연신 외치며 감사장을 갔다.


백과사전만 한 두께의 서류 뭉치가 6권 이상 되어 보였다. 오늘 안에 그 자료들을 다 보아야 한다. 감사 자료 숙지가 안되어있는 팀원에게 일정 부분을 다 보라고 말했다. 어쩌면 모든 부분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더 옥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팀원도 자료를 계속 봐야 숙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특정 감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모른다고 모른 체 두어서는 안 된다. 내가 더 힘들어진다.) 일정 부분을 맡겼다. 



오전 내내 카톡이 끊임없이 울렸다. 일 하는 중간에 핸드폰은 되도록 보지를 않는데 연신 울려대는 카톡에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카톡을 확인하였는데...

대학 선배의 카톡이었다. 내 대학 동기가 오늘 아침에 운명을 다했다고 했다. 동맥 파열이라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데자뷔 같다.

데자뷔 같다고 생각했다.

예민해지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그러지 말라고 일깨워주듯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

지난 4월, 그때도 일 때문에 직장 상사와의 문제 때문에 직장 동료와 맞지 않음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길에서 크게 넘어지고(손에 흉터가 선명하게 남았다.) 넘어지던 날 사촌오빠가 세상을 등지고...


대학 선배의 카톡을 보고 지난 4월의 일들이 떠올랐다. 왜 자꾸 주변의 사람들이 이렇게 떠나는 걸까. 그것도 내가 아주 예민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여있을 때 항상 이런 연락을 받는 걸까...

작년에도 그랬다. 작년에 감사과로 발령을 받은 후 스트레스가 아주 심했을 때 내 동기(공무원 동기)인 애기 엄마가 쌍둥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고 직장 동료가 불의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작년에도 올해 4월에도 다짐했었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세상을 좀 유연하게 보자고 매번 다짐을 했었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함은 맞지만 스스로를 해하면서까지는 하지 말자고 그건 최선이 아니라 최악이라고...


그럼에도 조금 지나면 그때의 다짐을 잊어버리고 그때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최악으로 또 내딛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브레이크를 걸어주듯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다. 떠나면서 모두들 잊지 말라고 그리고 본연의 나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 또 이런 연락을 받을지도 몰라.'라는 불길함에 쌓여 감사자료고 나발이고 두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매번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더라도 다시 생각하고 일깨우고 다짐해야 한다. 무한한 삶이란 없으니 진정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중요도에 대한 경중도 둘 줄 알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은 잘 정리해서 잊지 말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고 그만 놓아줄 것, 그만 잊어버릴 것들은 놓아주고 잊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곁에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도록 삶의 중요 표를 새로 작성을 하고 본연의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일깨우고 바로 세워야 한다.  


언젠가 연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연락을 주는 순간이 올 때 기쁜 마음으로 연락을 줄 수 있게 그 누구도 나의 연락이 슬픔이 되지 않고 그동안 많이 수고했으니 이제 그만 좋은 길로 가 편히 쉬라고 말해 줄 수 있게 본연의 나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인생이 아무리 바운스 바운스 하고 삶이 아무리 진흙탕길이라고 할지라도...

나의 마지막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슬픔이 아니라 고마움이 될 수 있게...



"민아... 안녕... 잘가...

그동안 고생많았어... 이젠 푹 쉬어..."


저 문에 다다를 때까지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글. 그림 by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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