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묘해 Sep 01. 2022

한 번쯤은 나도 빌런이 되어보았다

생각을 해보면

나도 한 번쯤 빌런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어떤 개인에 대한 빌런이 아닌 조직에 대한 빌런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암튼 한참 전에 있었던 일이다.




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때는 지금 몸담고 있는 기관이 아닌 타 기관 여러 곳에서 일을 하다가

2017년도에 지금의 기관으로 발령을 받아 오게 되었다.

가장 중앙기관이어서 친한 공무원들이 많이 힘들 것이라고 잘 견뎌내라고 응원을 해주었지만 그때는 뭐가 더 힘이 든다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이곳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문제는 그다음 해에 예산부서로 발령을 받아 일을 하면서 그 힘듦이 무엇인지를 처절하게 알게 되었는데,

예를 들자면 갑자기 진짜 급하게 어떤 주제의 보고서를 써내라 한다.

저녁 먹고 올 테니 그동안 써놓으라 하고는 윗분들이 식당으로 가시는데

그럼 우리 팀은 때아닌 야근에 저녁을 굶은 채로 미친 듯이 보고서를 써냈다.

어떤 때는 퇴근하기 십 분 전에 상사가 검토보고서를 요구하면서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그 보고서를 보겠다고 하면 우리 팀은 또 가방을 내려놓고 미친 듯이 작업해서 결과물을 상사 책상 위에 올려두고(올려두고 시계를 보면 대체로 새벽 2~3시였다.) 퇴근을 하였는데(자주 퇴근을 할까 말까 고민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아주아주 자주 반복이 되었다는 것과 그 수많은 보고서를 쓴 이유는 혹시나 기관장님이 궁금해하실까 봐... 혹시나 기관장님이 질문을 하실까 봐... 인 '혹시나'가 대부분이어서 그 보고서가 제대로 쓰인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비생산적인 업무와 말도 안 되게 빡센 강도에 병이 나 병가를 하루 냈는데

저녁에 동료직원의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이..

"ㅇ주무관님. 계장님께서 ㅇ ㅇ ㅇ 보고서를 내일 아침 8시에 보고받으시겠대요. 괜찮으시겠어요?"였다.

그 보고서는 병가를 내기 전에 이미 보고 드렸는데 또 보고를 받겠다는 것이었고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그 내일이 공휴일(생각해보니 국경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동료직원과 전화를 끊은 후 카페를 갔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생각을 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보고서를 들이밀어야 그들이 만족을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가늠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보다는 적어도 4년은 더 젊었으니까) 나는 반조직적인 성향이 몸에서 빠지지 않은 때였다.

지금은 뭐 거의 빈껍데기지만...


테이블 위에 냅킨이 보였다.

볼펜 한 자루를 빌려 냅킨 위에 글을 쏟아내었다.

십 분 가량 글자들을 휘갈긴 후 집으로 돌아와 냅킨에 적힌 글들을 노트북에 옮기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글 좀 올려줘. 우리 기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메일로 보내. 언제 몇 시?"

"내일은 공휴일이니까 모레 새벽 네 시... 다섯 시도 좋고"

"오케이"


내가 공무원이 되었다고 했을 때 이 친구는 미친 듯이 웃었다.

네가 무슨 공무원이냐 노조라면 모를까 니 성향에 어지간히 고분고분하겠다고...

그리고 너를 합격시킨 그 조직 괜찮겠냐고 조직 걱정도 덧붙였었다.




글은 정확히 약속한 날  새벽 다섯 시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자유게시판은 익명이다)

내용은 그동안의 울분이 담긴 화와 이 조직의 병폐에 대한 길지 않은 강한.. 뭐 임팩트(?)가 있는 글이었다.

(뭐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한 현실이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글쓴이를 찾을 것이 분명하였기에 조금 혼선을 주고자 공무원 가족이 쓴 척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 글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대체로 자유게시판의 글은 조회수 100을 넘기가 힘든데 그 글은 조회수 4000을 가뿐히 넘겼다.

(웃기는 건 이 조회수를 찍고도 단 하나의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무원의 짙은 성향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심지어 내 글에 내가 댓글을 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조직의 홈페이지에 거의 들어가지 않는 그리고 자유게시판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공무원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이는 엄청난 바람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사무실이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모두들 그 글을 출력해서 읽고 또 읽고 난리도 아니었다.

전화벨이 미친 듯이 울렸다.

우리 기관뿐 아니라 타 기관에도 그 글은 삽시간에 퍼져 온 동네방네 난리가 나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이들이 우리 기관으로 전화를 해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죄다 전화가 왔다.


첫 번째 '글쓴이 누구야? 알아냈어?'

두 번째 '글 다! 속이 다 후련하다!'


대체로 이 두 가지 반응이었고 이 기관에서 힘든 부서는 예산부서였기 때문에 예산부서 직원이 쓴 글이 아니냐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윗분들은 글쓴이가 누구인지 알아내려 혈안이 되었고 분석하기 시작하였고 그날 업무는 그냥 마비상태였다.

혹시나 IP 추적이라도 당할까 봐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였던 터라 IP로는 글쓴이를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는 상태였다.


윗분들이 예산 부서 직원들의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글쓴이가 공무원의 형제라고 밝혔기에 윗분들은 순진하게도 호구조사부터 시작했고 나 또한 호구조사를 당하였다. (난 내가 결혼하는 줄...)


그다음으로는 분명 본인이 썼는데 혼선을 주기 위해 공무원 가족인척 한 것이라는 의견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그리곤 최근에 누가 가장 반항적이었는지를 윗분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였다.


이때 가장 많이 씁쓸함을 느꼈다.

그 글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왜 이러한 글이 새벽에 올라왔는지 우리 조직이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삼삼오오 모여서 '누구일까?'를 미친 듯이 탐색하는 모습에 이 조직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였다.(이때 '글쓴이는 나요! 당신네들이 궁금해 미쳐하는 장본인은 바로 나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를 외치고 멋지게 사직했어야 했는데...)




그날 오후 공무원노조에서 우리 부서를 방문하였다.

좀처럼 있는 일이 아니라 다들 깜짝 놀랐고 나도 놀랬다.(이때 살짝 겁이 났다. 노조가 움직이니 뭔 사달이라도 날 것만 같아 숨을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았다.)

노조는 윗분들을 모시고 자료를 보이며 회의를 하였는데,


슬쩍 자료를 보니...

정말 실망스럽게도 내가 쓴 글을 그대로 캡처해 맨 위에 공무원노조라는 이름만 대문짝만 하게 박아놓은 자료였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꼴이었다.

그걸 들고 무슨 협의를 하겠다고 이 기관 내 격무부서인 예산부서를 찾아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노조에서 윗분들께 질문을 하였다.

우리 기관에서 가장 힘든 부서가 예산 부서이니 여기 직원이 쓴 글이 아니겠냐고 질문을 하였다.

윗분들의 대답이 "우리는 직원들만 일 시키는 분위기가 아니라 관리자들도 같이 일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글에서 보이는 관리자 저격 부분은 우리 부서와 맞지 않다."

뭐래니, 지금...

그들은 눈 뜬 장님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또 노조에서 뭐라 뭐라 질문을 하였는데(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하다.)

윗분들의 대답이 " 예산부서는 숫자로 얘기하는 부서라 이런 글을 쓸 능력을 가진 직원이 여기에는 없다. 숫자로 썼으면 또 모를까."

등잔 밑이 어둡다. 한참 어둡다...


결론은...

조직원들이 힘들지 않도록 앞으로 잘 살펴보겠다... 이게 끝이었고 그렇게 노조는 사무실을 나갔다.

이건 뭐 일 더하기 일은 이 라는 결론을 내린 꼴이었다.(사달은 개뿔! 잠시라도 먹은 겁이 체하겠다.)


글은 그날 저녁 기관장님 저녁식사자리에 올려졌고 글을 읽은 기관장님의 말씀이

'나는 누구한테 말하지... 나도 말할 곳이 있으면 좋겠는데...' 였다고 전해 들었다.

자유게시판의 글이 기관장님께 전해진 것은 엄청난 일이었지만 반응은 더 엄청난 실망감으로 돌아왔고

그 후로 4년이 지난 지금도 이 조직은 변한 것이 없다.




글은 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계속 회자가 되었고 윗분들은 여전히 글쓴이를 찾는 것에 혈안이었고 관리자 급이 아닌 직원들은 읽고 또 읽으며 맞장구를 치고 속 시원해하고 2탄, 3탄이 계속 나오기를 바랐고 기다리고 기대한다는 말도 들려왔다.(이때 나는 홍길동이 되어야 하나 심히 고민하였다) 그 후로도 아주 오래도록 그 글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지금도 자유게시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2탄, 3탄이 문제가 아니라 하고자 한다면 100회를 채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반항이 불러온 결과는 실망스럽다 못해 절망적이어서 2탄을 포기하였으며 그렇게 내 가슴 안 불꽃은 꺼져버렸다.

좀처럼 쉬이 변하지 않는 이 거대한 몸뚱이의 조직과 이 기관에서 동료들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헬인 직장상사를 만나 하루아침에 사직을 하고 떠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절망감에 치를 떨었으며 그렇게 점점 울부짖지 않는 목각인형으로 변해갔다.

변한 건 나뿐이었고 예전의 반항심과 패기는 사라지고...

그렇게 눕는 풀이 되었다.




이렇게 조직을 향한 빌런은 단 한 번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그때 동료들이 맛본 희열과 그 동료들이 전하는 말들은 나를 미소 짓게 하였고 며칠간의 해프닝으로 동료들이 속 시원함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리고 그때 들려온 얘기 중에는 노조에서 글쓴이를 찾아내어 스카우트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사실인지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스카우트당할 뻔했다.(하마터면 시리즈 나도 흉내 내어보기)



그렇게 나도 한 번쯤 빌런이 되어보았다.

일 더하기 일은 이요~ (모르겠다 나는~)

글. 그림 by 묘해

이전 03화 인생이 참 바운스 바운스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