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

by 묘해

주는 만큼 돌아온다 했다.


철썩 같이 믿었다.

사랑도 일도...


아주 오래전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사귀었던 사람이 있었다.

사귀던 중 나는 타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몇 년을 타 지역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매일 전화를 하고 매일 카톡을 하며 지냈고 주말이면 고향으로 돌아와 그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도 내 근무지로 자주 놀러 왔다.

나와 결이 비슷했던 그 사람과의 데이트는 즐거웠고 주말에만 만나는 사이다 보니 애틋했다.

같이 돌보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서 데이트를 했고 항상 조용한 공원을 걸으면서 환경문제를 논하고 철학도 얘기했다.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에 낯선 여자가 말을 했다.

그 사람과 헤어지라고...

그 낯선 여자와 그 사람이 몇 달 전부터 사귀고 있으니 너는 그만 꺼져주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그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을 거라고 하였다.

낯선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날 밤까지 멀쩡하게 연결이 되던 통화는 더 이상 되지 않았고 전날 밤 '잘 자. 내일 또 얘기하자.'라는 말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 사람에게 이별의 말도 듣지 못했고 이유도 설명도 듣지 못했고 어떤 얼굴도 모르는 낯선 여자에게서 어이없는 이별통보를 받은 나는 순식간에 5킬로나 빠져 볼품없이 말라갔다.

그 후 반년쯤 후에 그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소문만 들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이별의 이유를 모른다.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이별 사유를 여전히 모른다.

그냥 그 사람이 바람이 났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몇 년 전 힘든 예산부서로 발령이 났을 때 왜 이 부서로 발령이 난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공무원 인생이라는 것이 A4 한 장 짜리 문서에 이리저리 팔랑거리며 떠돈다 했던가...

나는 서류 한 장에 팔랑 날려갔고 격무부서인 만큼 승진가점이 주어진다며 열심히 하라고 다들 그렇게 말했다.

시간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

어차피 내 일이나 네 일이나 똑같은 월급 받는 것이니 승진이라도 앞당기자는 생각에 2년 반을 미친 듯이 일을 했다.

예산 시즌 백일 전부터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이든 명절이든 거의 쉬는 날 없이 출근한 결과 그 해 초과근무시간은 400시간이 가뿐히 넘어갔다. (당연히 초과근무수당은 400시간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근무평가순위는 좀처럼 당겨지지 않았고 이유를 알아보니 우리 과에 나와 같은 급수의 선배들이 이미 여러 명 자리를 꽤 차고 있어서 그 선배들이 타 부서로 가지 않는 한 과 내에서의 순위가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열심히 한들 소용이 없었다.


2년 반이 지나 번아웃 상태에서 또 A4 종이 한 장에 팔랑거리며 감사과로 날려갔다.

감사과 또한 격무부서여서 승진가점을 준다.

미련하게 또 열심히 일을 했다.

이번에는 우리 팀의 최고참이 승진 준비를 해야 해서 최고참의 업무까지도 떠맡게 되었다.

나 역시 승진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터라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내가 한 고생을 개고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의 무던한 노력(?)으로 우리 팀 관할에서 발생한 사안은 나에게 배정이 되었다.

너무 자연스럽고 극히 당연한 결론이 되었다.

당사자인 내가 거부를 하지 않으니 어느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하는 직원...이라는 말이라도 들으면 그나마 천만다행인 분위기 일뿐.

팀의 삼석으로 그 정도는 해야지.. 다들 그렇게 해... 그 정도는 해줘야 승진이라도 하지 않겠어.. 라는 암묵적인 동의뿐이었다.

적어도 그 한 사람만은 이 암묵적인 행위에 동의를 하여서는 안됐다.


작년에 감사과에 같이 발령받은 그 최고참은 쏟아지는 사안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 당시 삼석이던 선배가 최고참의 사안을 맡아하기 일쑤였다.

처음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최고참은 삼석 선배에게 미안해했고 그다음에는 고마워했다.

삼석 선배는 이듬해에 승진을 하여 타 기관으로 운 좋게 발령이 나 이 지옥을 벗어났다.

그리고 올해 내가 그 삼석 선배의 자리에 배정이 되었고 최고참의 사안을 내가 맡게 되었다.

최고참은 더 이상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으며 심지어 웃음도 보였다.

예민한 성격의 나는 그 웃음을 여러 번 보았다.

적어도 나에게 그 웃음을 들키지 말았어야 했다.


하루는 타 부서 선배가 지나가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 사안이 있는데 중요한 사안이니 감사과의 최고참이 진행을 해주었음 한다는 비공식적인 타 부서의 업무요청이었는데 최고참이 거절하였다고 했다.

이유는 본인이 바쁘다... 가 아니라 나를 지목하며 나에게 요청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최고참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며 혀를 찼다.

나도 궁금하다.


비서실에서 어떤 사안 자료와 요약본을 달라는 전화가 왔다고 전해 듣자마자 모든 자료를 비서실에 주었다.

그런데 비서실에서 이 사안 담당자가 내가 맞는지 다시 확인을 하였다.

그러곤 하는 말이 이걸 왜 최고참이 하지 않느냐고 그 사람은 대체 뭐 하고 있냐라고 물었다.

나도 뭐하는지 궁금하다고 대답했다.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사랑도 일도...

바라고 주느냐...

바라고 주었다.

적어도 내가 준 만큼의 크기 정도의 바람은 있었다.


하지만 12년의 공직생활과 연애로

내게 돌아온 건

추적검사와 조직검사뿐이었다.

주는 만큼 돌아오는 것은 자연뿐이다.

글. 그림 by 묘해

keyword
이전 01화어느 뇌졸중 환자의 활기찬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