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제주도로 워크숍을 간 적이 있다. 우리 부서와 타 부서 인원까지 총 십여 명이 워크숍에 참석을 하였고 그 워크숍에 행정요원으로 참여를 하게 되면서 항공기 편, 숙소, 식당에 이르기까지 워크숍 기간 동안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챙기게 되었다.
제주도에 도착한 후 차 렌트를 시작으로 모든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고 미리 알아봐 둔 식당은 맛있었고 거기다가 숙소는 1인 1실로 배정되었기 때문에 동료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문제는 저녁 회식 때 발생하였는데, 저녁 6시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서 회식 장소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회식 장소는 호텔에서 십 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도보로 이동을 하였는데 이동을 시작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마른하늘에 소나기여서 모두들 당황하며 뛰기 시작했다.
삼사분이 지났을까? 우리 일행은 비를 홀딱 맞은 채 회식장소에 도착을 하였고 식당 주인이 마른 수건을 주셨는데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으면서 상사 한 분이 화를 내셨다. 비 오는데 이 먼 거리로 회식 장소를 잡은 이유가 무엇이냐, 비 올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냐, 일처리를 왜 이렇게 하느냐 등등... 일행들도 화를 내는 상사를 어이없게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대꾸를 하지는 않았다. 그분은 머리카락 한 올이 너무나 소중한 분이셨다.
예산부서에서 근무를 하였을 때의 일이다. 한 기관에서 쓰지도 않는 물건을 구입하여 창고에 방치해 두거나 물건을 받지도 않았는데 거래처에 대금을 지급하는 등 예산낭비가 심하다는 민원이 발생하였고 그 기관은 감사를 받게 되었다.
감사과에서는 예산을 무리하게 집행한 이유를 물었는데 그 기관에서 한 대답이 예산부서에서 예산을 많이 줘서라고 하였다. 감사과에서는 왜 예산을 많이 주었느냐며 예산 부서에 질문을 하였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가 하였던 적이 있었다.
예산의 승인이라는 게 기관에서 구체적인 산출내역이 담긴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예산 부서에서 심의 조정을 한 후 의회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예산이 배정이 되고 각 기관과 부서에서는 사업계획서의 일정대로 사업을 진행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 기관은 사업계획서대로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연말에서야 부랴부랴 무리하게 예산을 집행하다가 민원이 발생하였는데 그 탓을 예산부서로 돌린 것이었다.
돼도 안 한 기관의 대답에 예산부서로서 또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도 웃겼지만 제일 어이가 없었던 것은 우리 부서 상사의 반응이었다. 상사는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 왜 그랬어."...
뭘?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
나의 잘못이 아닌 데 주어진 상황이 그리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해서 또는 누군가에 책임을 강요하기 위해서 얼마나 자주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렸을까?
나의 잘못이 아니고 어쩌다가 마주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의 잘못이야 나의 잘못이 아니라 너의 잘못이야 그러니 네가 총대를 메야해. '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판단하여 대처하기란 쉽지가 않다. 일단은 이 상황을 정리하고 그 후에 차분히 시시비비를 가려 보자 하고 지나친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을까?
책임에 대한 소지는 중요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감과 소명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조직사회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고 시작한 일은 책임감 있게 끝을 맺고 그 성과와 결과에 대해서는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또한 중요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런 조직문화와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성장은 조직의 성장으로 연결이 되어 하나의 큰 톱니바퀴처럼 사회가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공무원의 일이라는 게 성과 즉 수익을 내는 일이 아니다 보니 그 공무원이 잘했고 못했고를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다. 때문에 그 조직이 속한 지역사회의 봉사자로서 소임을 다하여 일이 잘 진행되면 당연한 것이고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질책이 따른다. 그리하여 공무원으로서의 소임을 다 하였을 때 돌아오는 것은 성과와 보상이 아닌 질책과 자책뿐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말 나의 잘못인가. 정말 나의 실책이었나... 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니다.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일을 진행할 당시에 같이 고민하여 내린 결정대로 상사들의 결재를 받지만 그 후 일이 틀어지거나 정책이 바뀌었을 때 (심지어 화창한 날씨에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도) 그 일에 대해 결재를 했던 상사들까지도 담당자에게 묻는다.'왜 그랬어... 왜 이렇게 했어...'
직면한 문제의 해결방법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왜 그랬어'가 아니라 '다 같이 해결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말이 상황적으로든 언어학적으로든 문맥적으로든 맞지 않을까...
너무 이상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함께 걸어가야 할 공동체의 운명이라면 그 일을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팀원들 서로에게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이건 단지 일어나려고 일어난 일일 뿐이야.'라는 말을 시작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은 채 그 문제를 바라본다면 더 나은 해결책이 더 나은 조직문화가 그리고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그 짧은 말 한마디가 아쉽고 그립다.
어렸을 적에(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간장계란밥이 먹고 싶어서 슈퍼에서 계란 한 알을 산 적이 있었는데 슈퍼 아주머니가 계란 한 알을 주시면서 깨지지 않게 조심히 들고 가라고 하셨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겠다는 생각에 너무 꽉 움켜쥔 바람에 계란을 깨뜨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