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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해 Jan 04. 2023

모든 시작과 끝은 함께 일어난다

5월에 태어났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봄에 가장 낭만적인 날씨인 오월에...

올봄에 라일락 화분 하나를 과감하게 구입했다가 처절하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과정은 처절했고 남은 것은 고이 보내주는 것뿐이었다.

탄생화라는 이유로 라일락을 좋아했고 그렇게 좋아한 나머지 가지고 싶었고 가지고 싶은 나머지 보내주게 되었다. 그 후로 함부로 그리고 쉽게 선택하고 가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내 삶은 어떨까?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봄에 가장 낭만적인 날씨인 오월에 태어난 것까지는 꽤 그럴싸한데...

내가 살아온 발자취는 어떨까?



12월 한 달을 정신없이 보냈다.

'눈코 뜰 새 없이' 란 말이 딱 떠오르는 12월이었다.

월화수목금금금월화수목금금금...

이렇게 3주를 훌쩍 보내고 나니 3킬로나 빠져있었고 또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이렇게 일 년이 또 가는구나 아쉬운 마음에 크리스마스이브에 딸기 생크림 하나를 사다가 혼자 퍼먹었는데...

달콤했다.

내가 보낸 12월을 생각하면 이렇게 일 년이 또 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하나를 사다가 통째로 퍼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날씨가 추운지 눈이 흩날리는지 알아채지도 못한 채 출장을 다녔고 출장 후에는 사안 보고서를 쓰느라 밤새우기 일쑤였다. 12월 마지막 주만큼은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며 여유롭게 보내야 했었다. 그래야 2023년도를 정신 차려 잘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무원이 되었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한순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6년은 '공무원생활'을 한 것 같다. 월화수목금을 일하고 주말에는 쉬고 가까운 곳에 여행도 가고...

그러다 그다음 6년은 공무원인지 기계인지 감정쓰레기통인지 내가 뭔지 헷갈릴 정도로 헬인 시간이었다.

월화수목금금금을 일하고 또 월화수목금금금을 일하고 모자라면 밤새고 또 모자라면 또 밤새고...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흐르니 나는 없었다.

뼛가루까지 갈아다가 썼는데 그 가루마저 소진해 버린 기분이었다.

여기까지 나는 정말이지 여기까지야... 더는 더는 못 하겠어...

하며 12월을 보냈다... 아... 정말 너무 지쳤어요... 단 1분 간 만이라도 나로 돌아오면 그냥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내 마지막 힘이야 제발 알아줘...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 났다.

2023년은 새롭게 시작해 보란다.

그동안 아픈데 고생 많았다. 고생 많았던 것 알고 있었어... 그런데 여태 모른척해서 미안해... 한다.

드디어 개미지옥을 벗어나게 되었다.

다른 일개미를 집어넣고서... 그렇게 나는 잠시나마 벗어나게 되었다.


2022년도가 끝나기 며칠 전 입 밖으로 '끙끙' 소리를 생으로 내뱉으며 마지막이라고 달렸던 그 한순간 한 코너를 돌아서니... 정말 마지막 문이었고 그 문은 열렸으며 나가도 된다고 했고 드디어 문을 열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가 태어났을 때 삶의 시작과 동시에 끝이 정해진 것처럼

내가 열고 닫는 문도 언젠가는 정말 마지막 문을 열고 마지막 문을 닫을 것이다.

개미지옥의 문을 6년 만에 드디어 열 수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생에 마지막 문 앞에 서겠지


모든 시작은 끝과 함께 일어나고 모든 출발은 도착지를 향해 내달린다.

내 삶의 시작은 오월의 푸르른 날이었고 그 마지막은 아마도 방 안에 촛불이 켜져 있을 것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멋진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 직장 선배가 왜 그렇게  마지막을 생각하느냐고 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누구든 마지막 순간이 오는데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답한 적이 있었는데

직장선배는 그런 생각을 하면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고 하였다.

마지막이라는 시점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마지막의 결과물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고 또 마지막의 끝점이 누구에게나 온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그 끝점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더 힘을 낼 수가 있었고 다른 결과물의 다른 마지막의 순간이지만 오고야 말 그 지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하고 또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Living is Dying이라고 하지 않나)


힘들었고 절망적이기까지 한 2022년도의 해는 저문 지 한참 전이고 기다리며 준비하였던 2023년이 시작이 되었다. 새로운 일상과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음을 만끽하고 또 어느덧 2023년이 지나가고 다음 해 그리고 다음 해가 시작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생의 마지막 문이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생의 처음인 것처럼 가벼운 손과 정돈된 마음으로 마지막의 마무리를 할 것이다.

모든 시작은 끝과 함께 일어나는 것처럼 내 삶의 힘듦과 기쁨 또한 맞물려 돌아갈 것이다.


오늘도 시작은 아이스아메리카노

글. 그림 by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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