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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링 May 13. 2021

여자들이 사라진 숲에서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독후감



강화길, 손보미 외 6명 / 은행나무


“사라지는 건 전부 여자들뿐이거든요.”


작중 대사이자 책 제목의 원형인 문장이다. 섬뜩한 느낌을 준다. 단지 ‘사라진다’라는 표현 때문만이 아니다.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라는 말이 소설 속 허구의 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우리가 몸으로 느껴온 현실의 공포가 이 문장을 더욱 스릴러답게 만든다. 지금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통받고 죽임 당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시대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나온 시대에는 안 그랬을까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다. 여자들에게는 역사적인 한이 있다. 동료 여성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고 자의든 고의든 그 죽음에 동참하기도 했던 이들 간의 경계심도 친밀감도 다른 성별에 느끼는 그것에 비해서 특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성이 쓰는 여성 스릴러 단편 모음집이라니, 조금은 어렵고 무섭고 답답하면서도 머릿속 깊이 들어와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책의 장르가 스릴러라는 것을 모르고 읽기 시작했지만, 이 이야기들을 굳이 한 가지로 정의하자면 역시 스릴러구나, 하며 책을 덮었다.


나는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는다. 겁이 많아서 긴장되는 분위기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즐기기보다는 힘들어하고, 사는 것도 힘든데 책이나 영화를 볼 때만이라도 따뜻한 상상에 빠지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스릴러에는 상처와 악이 등장하는데, 그 형체가 분명히 밝혀지고 처리와 회복이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기승전결에 탑승해서 끝의 온전한 결말을 향해 기대하면서 달려가는 스타일이다. 이 책은 앞뒤 개연성을 충분히 설명해주기보다는 장면마다 드러나는 각 인물의 감정과 미스터리함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듯 느껴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쉽게 몰입하는 이야기들과는 결이 달라 읽기에 편하지는 않았다. 이런 점까지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한 가지 특징으로 기억되는 점은, 등장인물들이 뚜렷하게 선이거나 악의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피해자이기도 가해자이기도 하며 둘 중 무엇이거나 둘 다라고 명확히 말하기에는 고민되는 성격과 서사를 갖고 있다. 어떤 문제를, 여성으로서의 아픔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게 되고 물려받게 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과 여성은 서로 미워하기도 하고 서로 좋아하기도 하고 서로를 너무 믿기도 한다. 책에 수록된 강지희 문학평론가의 발문을 읽고 그 표현을 빌리자면 위의 모든 서로 간의 이어짐은 ‘동일시’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여자들이 사라진 숲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누가 있었을까. 더는 사라지는 건 여자들의 몫이 아니길. 혹은 적어도 사라진 그곳에는 아픔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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