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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링 Apr 03. 2021

사랑은 언제나 이뤄지기 일보 직전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사담 있는 독후감

*노란 글씨는 책 본문 중 일부를 인용한 것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 조남주 외 / 큐큐


고민 없이 사랑이라 확신 – 착각일지라도 - 하는 것이 이성애자의 특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와 친구들은 잊을만하면 우정과 로맨스의 차이가 뭘까 하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곤 한다. 스킨십 욕구의 유무? 하지만 연애 상대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을뿐더러 친구와의 스킨십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친밀도의 차이? 하지만 과연 연인 사이가 친구 사이보다 가까운, 깊은 관계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여러 친구들 중에서도 힘든 얘기를 털어놓게 되는 친구, 개그코드가 맞는 친구, 사회문제를 바라볼 때 말이 잘 통하는 친구 등등 모두에게 다 다른 걸 느끼듯, 연인도 ‘어떠한’ 친구인 거겠다는 데까지 다다르면 생각을 관두고는 했다. 내가 연애다운 연애를 못 해봐서인지 그 ‘어떠한’이 무엇인지 통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답 없는 문제를 풀려고 하다 보면 문제 자체가 꼴도 보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사랑이라는 모호한 단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사랑이 싫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내가 싫어진다. 차라리 수학 문제라면 문제를 낸 수학 선생님을 미워하겠지만, 이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붙잡고 끙끙대고 있으니 나를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그런 순간이 많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혼자 멍청한 짓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 그런 나를 보고 으억 하고 놀라는 일들.


타인과의 소통을 단념해가면서도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손을 잡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나는 정말 사랑과 믿음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삶에서 그것들은 점점 희박해졌다. 이미 끝난 소풍인데, 다들 집으로 돌아갔는데, 나만 홀로 남아 보물이 적힌 쪽지를 찾아 헤매는 것도 같았다.


사는 게 지치고 힘들 때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 진다. 주변에 나를 아껴주는 가족,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투정을 부리면 나를 부담스러워하거나 나의 약한 모습을 질타하진 않을까 두려워서 위로해달라고 징징대지 못하겠다. 그래서 맹목적인 위로와 다정을 주는 완벽히 내 편인 존재가 나타나길 바란다. 그러다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 내가 사랑이 아니라 구원을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상황과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의지가 없는 건데, 사랑받지 못해서 그런 거라며 사랑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을 뿐이다. 세상 모든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결국 자기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인 것 같다. 내가 사랑(연애 감정으로써의) 엇비슷한 걸 했다고 믿어온 상대들을 정말로 사랑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사랑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관계가 무너진 경험이 있다. 보이지도 않는 것을 주제로 이렇게 많은 글자를 써낼 수 있는 내가 한심하다. 그런데도 사랑 소설을 집어들었다. 읽었다. 그냥 사랑이란 그런 것 같다 - 언제나 아무 데나 있어서 가지기도 힘들고 버리기도 힘든 것.


그때 나는 내가 다 늙어버린 줄 알았다. 겪을 건 다 겪었다고, 사랑은 우습다고, 더 좋은 것 따윈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예단했었다. 거듭할수록 가벼워지는 사랑과 허무한 이별을 겪으면서 사랑을 유치하고 이기적이고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므로 다 큰 어른이 할 짓은 아니라고, 사랑보다는 사업이나 사교가 훨씬 어른스러운 처신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유치하고 이기적이고 우습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누구든 할 만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랑은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는 것.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을 때 그것은 거기 없다. 너의 가족이 나를 보고 미소 짓는다면 나도 미소 지을 것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면, 나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다. 우리가 이상한가요? 당신들도 이상합니다.


너는 아마 이렇게 할 거야. 문득 전화를 내게 전화를 걸어 스스럼없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내 꿈을 꾸었다고 말할 거야. 그 꿈에서, 나는 무엇으로 너를 기쁘게 할까? 네가 나를 만나야겠다고 말하면 나는 바로 약속을 잡을 거야. 언제나 집에 싸구려 와인을 사둘 거야. 너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수십 번 수백 번 엉망이 될 수 있어. 우리의 첫 키스를 위해서라면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삶을 반복할 수 있어. 나는 기꺼이 그럴 수 있어.


개인적으로 9편의 퀴어소설 중 최진영 작가의 <XOXO>에 가장 마음이 갔다. 사랑도 인생도 포기한 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화자가 결국 사랑으로 인해 다시 일어서는, 어찌 보면 신화생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보다도 더 판타지적인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인 나는 또 한 번 사랑을 믿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커플의 사랑은 앞서 늘어놓은 나의 이상에 거의 들어맞는다. 다만 소설의 화자는 자신의 친구이자 연인에게 네 덕분에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동시에 아픈 연인을 돌보러 담담한 용기를 가지고 출발한다. 만약 사랑이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을 주는 이가 홀로 해내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나에게도 사랑을 받아들일 용기 그리고 나의 사랑을 꺼낼 용기가 있는가? 그렇다면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환상으로만 남을 마냥 한심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마음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실용성과 효율을 가장 중시하는 사회에서 사랑은 박하게 대해진다. 사랑을 하려면 정해진 까다로운 기준에 맞춰 마음을 재단해야 한다. 퀴어에게 사랑이란 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한다. 무너질 걸 알면서도 인생을 살아내는 것처럼, 다칠 걸 알면서도 내면을 드러내는 것처럼, 한다. 퀴어소설 한 편 한 편이 반갑고 소중한 이유이다.


사람에게 인정이란 무엇일까. 왜 혼자서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가끔은 참을 수 없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찔리고 피가 나고 붕대를 감을 일이 생길 걸 알면서도.


나는 여기서 이렇게 소리치고 있고 더 이상 죽고 싶지도 무리해서 행복해지고 싶지도 않아. 나는 그냥저냥 살아갈 거고 가끔은 오늘처럼 웃기고 유치한 영화를 찍을 거고 낯선 사람의 어깨에 기대 속을 털어놓았다가 후회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더 괜찮아질 거야.




학교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오래 안 올렸네요... 아주 느리더라도 꾸준히 브런치 활동을 하자는 다짐을 하면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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