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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정 Sep 04. 2023

엄마의 쑥색 사랑법

날이 따뜻해지고 두껍던 옷을 한 겹 벗어내는 때가 오면 쑥이 자라는 봄이 온 것이다.

그럴 때면 작은 과도나 커터칼, 소쿠리를 가지고 동네에 있는 논두렁으로 간다. 쑥은 진한 뾰족한 모양에 앞은 진한 초록색이고 뒷면은 하얀 가루가 묻은 것처럼 뿌옇다. 털이 나서 보송보송한 풀뿌리를 똑 자르면 쑥을 잘 골라 캔 거다. 봄에는 쑥이 연하고 작아서 국을 끓이거나 떡을 찌려면 꽤 오래 걸릴 것도 같은데, 다섯 식구가 총출동해서 캐는 날에는 어느새 소쿠리 위로 소복이 쑥이 담겨있곤 했다.


쑥으로 할 수 있는 요리는 아주 다양하지만,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반들반들한 쑥절편이다. 열심히 캔 쑥과 쌀을 같이 방앗간에 맡기면 갓 나온 따끈한 쑥떡을 먹을 수 있다. 박스에 잘 담긴 절편 하나를 꺼내 먹으면 말캉말캉하면서 쫀득한 식감이 난다. 직접 캐서 더 고소하고 진한 쑥 향이 입안 골고루 퍼진다. 남은 떡은 식기 전에 먹을 만큼 소분하여 냉동 보관한다. 먹고 싶을 때마다 해동해서 데워 먹으면 또다시 말랑하고, 고소하게 먹을 수 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아침잠이 많아 늘 분주하고 급하게 학교에 가기 바빴다.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쑥떡을 구워 가방에 챙겨주셨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익은 떡 위에 설탕을 한 겹뿌리고 밀폐용기에 잘 담아 뚜껑을 꽉 닫아 봉지에 쌌다. 막 구워 담은 도시락이라 가방이 닿는 허리 부분이 따뜻했다.


학교에 도착해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면 뜨거운 열기와 습기에 녹은 설탕이 떡 속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갓 나온 떡만큼이나 말랑하고 촉촉했다. 거기에 달콤함까지 더했으니, 그보다 든든하고 맛있는 아침이 또 있었을까. 달콤한 향기가 교실에 퍼지고 친구들에게도 떡을 나눠주면 하나같이 감탄하기 바빴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몸도 마음도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요즘은 나는 말로 받는 사랑 말과 어떤 사랑을 느끼며 살아왔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말로 하는 표현에 인색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이 서툴고 참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엄마의 쑥떡처럼, 아빠의 진달래처럼 보이지 않는 사랑을 주려 노력한다. 내가 배운 사랑을 보여주려고 말이다.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 진심을 알아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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