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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리뷰 : 위선자의 윤리 교육

by 승주 Mar 11. 2025

본 리뷰에는 미키 17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관람 이후에 읽어주세요.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미키 18


이 영화는 비교적 뚜렷하게 등장인물의 진영을 둘로 가른다.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 반스를 대하는 태도를 기준으로 그가 겪는 죽음을 비교적 쉽게 생각하는 부류와 그의 존재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티모, 사채업자 다리우스, 마샬 부부 등은 언제든 다시 프린트할 수 있는 미키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냐샤, 도로시, 미키17을 구해준 크리퍼 등은 미키의 목숨을 다른 등장인물들보다 소중히 대한다. 이 영화는 두 태도 사이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미키 17을 비롯한 주인공 일당은 타인의 생명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마샬 일행과 대항한 끝에 마샬 등을 끌어내리고 니플헤임에 그들의 가치관을 정착시킨다. 집정관이 된 나샤가 익스펜더블의 프린터를 파괴하기로 결정하고 파괴 퍼포먼스를 행사처럼 꾸며 정착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과 함께 집행하는 모습으로 두 가치관의 대립은 미키 일당의 승리로 끝이 난다. 


미키가 아무리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이렇게 막 죽여도 되는 거야? 미키를 우주로 보내 방사능에 노출시키고, 밥을 절반씩 주고, 바이러스에 일부러 감염시키고, 백신 개발과 신경독 개발을 위해 생체실험을 해도 되는 거야? 미키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빚을 못 갚는다고 산 채로 다리를 자르는 다리우스 같은 놈들, 그 녀석의 즐거움을 위해 저 멀리 니플하임까지 하수인을 보내는 것도 옳은 일이라고는 볼 수 없지? 티모가 "어차피 너는 다시 살아나니까 날 위해 한 번쯤 더 죽어도 되잖아?"라고 말할 때 뭔가 불쾌하지 않아? 우리의 불쌍한 주인공 미키. 


두 가치관의 대립 속에서 영화는 명백하게 한쪽 편을 들고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미키를 대하는 모습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생명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미키 17은 소심한 성격을 갖고 있다. 미키 반스가 가지고 있던 유아기의 트라우마를 미키 18에 비해 심하게 겪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남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해도 반항하지 않는다. "이건 다 벌받는 거야. 어릴 때 차에서 그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가족이 다 죽어버렸어. 나는 그 벌을 받는 거야." 미키는 스스로의 처지를 어릴 적 원죄에 대한 처벌로 생각하여 반항하지 못한다. 이때 미키 18의 대사가 미키 17을 향한다. "그거 네 잘못 아니야. 차가 원래 고장 났던 거 너도 알잖아." 18이 17을 위로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벌받는다는 생각 같은 거 하지 말라는 듯이. 미키 18의 위로가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타인의 위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위로이기 때문이다. 본인과 똑같은 어릴 적 기억을 갖고 있는 존재에게 받는 위로이기에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이해와 공감이 담겨 있다. 


미키 17의 트라우마를 위로해 주는 말을 미키 18이 건넨 뒤 미키 18은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 "이제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인가?" 그러고는 마샬에게 달려가 자신의 몸에 달린 폭약의 폭발 스위치를 누르며 마샬과 함께 자폭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스위치를 누르기 직전 망설이는 18의 눈빛을 읽은 마샬은 그 망설임을 조롱하지만 18은 옅은 웃음으로 조롱을 넘겨버린다. 6개월을 건너뛴 영화는 미키 18, 나샤, 도로시, 마마 크리퍼, 카이 등의 지지로 원죄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미키의 모습을 비춘다. 19, 20~ 등이 태어날 기회를 막아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털어버리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인물들의 도움으로 미키 17은 미키 반스라는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된다.


그럼 미키 18은?

미키 18은 이 영화에서 철저하게 도구로 이용된다. 미키 17을 무시하는 마샬을 향해 화내고 암살을 시도한다. 희생을 강요하는 티모에게 화내지 못하는 미키 17 대신 티모를 혼쭐 내준다. 폭약이 달린 채 다 같이 죽어야 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샬과 함께 동반자살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미키 18은 미키 17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 심지어 미키 17의 트라우마까지도 위로해 준다. 


관객은 미키 17을 미키의 원본으로 생각하고 미키의 소심함과 선량함을 이와 대비되는 미키 18의 폭력적인 성향과 비교하며 더 애착을 갖게 된다. 17과 18중 하나만 살아야 한다면 17이 맞지 않냐고 생각하게 될 만큼, 그래서 미키 18이 동반자살해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미키 17을 미키의 원본으로 비춰준다. 


이건 영화가 내내 이야기하는 가치관과 너무 다르지 않나? 미키 17의 목숨을 소모품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다시 살아난다고 해서 죽는 게 쉬운 일일 수는 없다고 말하는 영화가 왜 미키 18의 존재를 이리도 도구적으로 소모하는 것인가. 18도 17도 다 같은 반스이니 마지막 장면에서 미키 17도 18도 아닌 미키 반스가 되었다는 결말을 내는 것이 정말 충분한가?


미키 18과 미키 17이 다른 존재라는 표현은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성격이 다르다는 점 등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주요한 부분은 미키 17과 18이 소각로에서 다투던 장면에 나온다. 미키 17은 18의 존재를 눈앞에 두고서는 "여태까지는 죽고 나서 다음 미키가 태어나는 게 내가 계속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야. 내가 죽으면 '너'가 살아가는 거잖아. '나'는 죽은 거고."라고 말하며 17과 18이 별개의 자아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며 다른 기억을 쌓아가기에 둘은 다른 존재가 된다. 17에게 18이 타인인 것처럼, 18에게도 17은 타인이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도 터무니없다. 적어도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했어야 하지 않나? 17과 18이 모두 하나의 자아이고 이 영화가 하나의 자아를 둘로 분리해서 트라우마를 겪는 자아와 그걸 극복하는 힘 있는 자아의 메타포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면 적어도 '네' 잘못이 아니라 '우리' 잘못이라고 했어야 했다. '네' 잘못이라는 말에서 미키 18은 미키 17과 더욱더 분리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미키 18을 소모품으로 처리해버린다. 그전까지 등장하지도 않았던 자기희생의 마음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동반자살을 선택한다. 심지어 꼭 자폭했어야 하나 싶은 상황이기까지 하다. 마마 크리퍼는 한 명의 목숨을 요구했고, 자폭 순간 마샬은 18에게 얻어맞고 제압당한 상태였는데도 자폭을 선택하는 것은 위화감이 든다. 더욱 역겨운 점은 미키 18을 대하는 주변인의 태도에 있다. "우리 소중한 미키 반스"를 위해 행사까지 열어주는 착한 니플하임 정착민들이 정작 미키 18에 대한 추모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인물임에도 언급조차 없다. 미키 17은 익스펜더블 프린터를 폭파하면서 태어나지 못하게 된 미키 19, 20 들의 존재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미키 18의 죽음에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에는 미키 반스의 기억을 가진 미키 반스, 미키 1, 미키 2, ..., 미키 18까지의 서로 다른 존재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복제인간의 원본 문제, 자아의 문제를 다룬 수많은 창작물과 논의들의 결론은 미키 17의 대사와 같다. 17인 나는 죽고 18인 네가 살아가는 거지 내가 계속 살아가는 게 아니라고. 육체를 옮겨가며 영생한다는 건 밖에서 봤을 때의 착각일 뿐이다. 이 영화가 정말 미키를 대하는 주변 인물들의 태도를 통해 생명과 존재에 대한 존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그에 대한 관람자의 고민을 원했다면 결코 미키 18을 도구적으로 다뤄서는 안됐다. 미키 17의 생명은 소중하면서 전적으로 타인인 미키 18을 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전개와 전적으로 상반되는 결함일 따름이다.


영화 미키 17이 위선자의 윤리 교육인 까닭은, 주인공으로 비치는 미키 17을 대하는 등장인물의 태도 등을 통해 관람자들에게 그들의 옳고 그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윤리 교육을 하고 있음에도 정작 영화 속 모든 등장인물과 동등한 생명의 가치를 지닌 미키 18의 목숨은 미키 17의 각성과 영화 속 문제 해결을 위해 도구로 소모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미키 17과 18을 대하는 태도를 설명하는 단어는 위선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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