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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Aug 07. 2022

직장인 5년 차, 회사를 보는 기준이 생겼다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기준 3가지


1. 월급 밀리는 곳은 가장 먼저 버릴 것

사회초년생이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회사에 입사했다는 사실을 3개월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구두로 나눈 월급 지급일은 있었지만,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으니 밀리는 일이나 혹여 밀린 월급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어련히 알아서 주겠지! 돈이 급해? 급하면 그냥 아, 내가 줄게. 계좌 찍어 보내. 진짜 귀찮게 하네."

팀장도 직급을 떠나 같은 을의 관계에서 이해할 줄 알았으나 단단한 착각이었다. 퇴근길에 팀장을 붙잡고 월급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 몇 번째 물어보는지도 모를 물음을 다시 던졌고 돌아온 답은 한심하단 뉘앙스를 가득 담은 짜증이었다.


며칠째 대표는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매번 밥은 먹으러 나왔었는데, 신기하게도 월급일만 되면 종적을 감춘다. 길면 한 3주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거래처 영업 관리를 목적으로 이곳저곳 술은 마시러 다니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 전, 우연히 팀장의 카톡에 대표가 떠있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월급을 지급해 달라는 나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받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느꼈던 허망함과 불안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팀장은 나를 쏘아보며, 퇴근길 역 앞에서 대뜸 소리를 질렀다.


“아, 그깟 거 좀 기다리면 되는 걸 왜 그걸 못 기다리냐! 어? 돈 없어, 너? 대표님 바쁘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냐고. 누가 돈 떼먹냐고! 어?"

“제 월급을 사비로 따로 줄 수 있을 만큼 팀장님은 여유가 있으세요?"

그 물음에 팀장이 잠시 얼버무렸다. 충격적이었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본인 사비로 월급만큼 돈을 일단 주겠다는 해결 방식도 일반적인 범주는 아닌 것 같아서, 내 정신도 흐리멍덩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 월급, 제 몫 다 받을 때까지 대표님께 직접 연락할 겁니다, 저는."

"아니...  아니! 내가 준다고, 아! 좀!"

황당무계한 소리만 늘어놓는 팀장을 뒤로하고, 역으로 들어갔다. '무슨 돈에 미쳐있는 것도 아니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거지 같이'라며 들으라는 듯 외치는 팀장이 한심했다. 내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일은 일대로 하고, 그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건 그렇다. 속이 문드러지는 일이다. 통장에 돈이 꽂히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나의 내일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급여는 받아냈다. 야근 수당도, 4대 보험도, 제대로 적용된 것 하나 없는 엉터리로 대표 재량껏 매긴 액수의 월급이라 말하는 것을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은 나는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고, 병원 신세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받아낸 돈의 절반이 병원비로 다시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결심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 노동을 제공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고, 계약서를 쓰든 안 쓰든 월급이 단 하루라도 밀리는 곳은 미련 없이 나올 것, 눈길조차 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 사수가 없는 곳은 가지 않을 것

내가 신입이거나 대리 급의 주니어일 때, 사수가 없다면? 물론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로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환경을 함부로 성장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내 위에 사수가 없는 업무 환경의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법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내 법대로 만들어, 마음대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로젝트와 관련해 의논할 일도 없고, 회의도 생략되고, 피드백 공유도 없다. 업무의 자율성과 자유도가 극한으로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단점은 이를 제외한 모든 것이다.


타 부서에서는 나에게 피드백을 줄 수 없다. 나의 결과물이 그들의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은 있을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각자의 전문 분야는 따로 있는 법이다. 나의 업무 효율이나 스킬, 능력치를 올리는 데에 필요한 피드백을 받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사수가 없는 무법지대 상태에서 업무를 전담하여 핸들링하게 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자유로운 망아지가 되기 쉽다.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부터 그 결과물이 도출되기까지, 어느 부분이 아쉽고 보완하면 좋을지 이 일련의 과정에 따른 밀도 있는 피드백을 받을 수도 주고 나눌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납품이 가능한 퀄리티인지, 그에 맞는 수준인지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도 갖춰질 리가 없다. 홀로 완벽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온전한 착각이다. 그 안에 동화되어 자만하게 된다면, 성장이 아닌 고인 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책임은 또 져야 하다 보니 독박도 쓰게 된다. 이때는 뭐가 잘못된 지도 명확히 모르는 상태일 확률이 높다.


특히 3년 차가 아직 안 된 신입에서 사원인 경우는 특히 경계하는 것이 좋다. 나는 고작 1년 차에 사수 없이 혼자 일하며, 책임까지 지는 위치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 못 차리고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사수의 역할은 팀의 신입과 사원들에게 업무를 익힐 수 있도록 돕고,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때때로 그들의 실수에 대해서는 커버도 쳐줄 수 있는 든든한 방패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역할이 제거된 곳에서 홀로 분투해야 한다면 대다수의 경우로 부서 경계 없이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며 치이는 동네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강압적인 명령조와 폭언을 다수 겪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팀에 책임자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사원이나 대리가 어느 회사 조직에서든 최종 책임자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훗날 다른 곳에서 만난 사수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든 초년생들, 그러니까... 윤이 씨 같은 친구들한테는 사수나 직속 선배 같은 방패막이 꼭 필요해, 잘 모르는데 책임을 어떻게 져. 그걸 모르는 애들한테 강요해서도 안 되지."


어딜 가든 본인의 사회적 자아가 확립되기 전까진 적어도 사수가 존재하는 곳으로 배우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3.  꼰대, 그리고 가스라이팅이 공존하는 곳에서는 도망칠 것

“회사 다 똑같아요. 여기 나가서 다른 데 간다고 거긴 다를 거 같아요?”


퇴사일을 확정 짓고 난 어느 날, 사수는 불시에 이런 말을 꺼냈다. 물음표가 붙었지만 물음은 아니었다.


“회사 다 똑같은 거 저도 아는데요.”

“아는데 그래요?”

“회사를 관두는 건 제 마음이잖아요. 왜 그러세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번번이 티오가 나는 자리라면, 그것은 더더욱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 텐데 왜 그들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하는지 근본적인 문제는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 나가는 그들에게 도리어 삿대질을 한다.


“그 나이에 열정이 있어야지. 벌써 돈부터 쫓아가려고 하고..."


심지어 과장님은 별안간 나보고 돈만 쫓아갈 줄 안다며, 무어라 훈수까지 두기 시작했다. 돈만 쫓아갈 줄 알았으면 적어도 매주 로또 사는 데에 혈안이 되다 못해 파산 정도는 해줘야 걸맞지 않을까. 이곳에서도 야근 수당 따위 받지 않고 집에 돌아가서도 업무를 보며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말은 열정이 없다는 철 다 지난 소리뿐이다.


“내가 다 윤이 씨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선배들이 퇴근을 못하고 있는데, 어디 막내가 감히 먼저 가?”


퇴근 전에 선배들에게 도울 일이 없는지 충분히 물어본 다음에 받을 일이 없으면 퇴근하는 것이 맞다고 해서 이곳의 법을 따랐다. 업무 시간 내내 수차례 물어보았지만 장장 열 번을 물어보고도 한 번은 그렇게 한가하냐며 구박을 받았다. 그나마 이후 받은 할 일은 퇴근 전에 모두 끝내고 전달까지 완료했다. 그럼에도 퇴근 시간에 퇴근을 하려고 하니, 갑자기 이 자체가 문제라고 한다. 나보다 윗사람들이 퇴근 준비를 못하고 있는데 감히 아랫사람이 먼저 간다는 행위, 그 자체로 말이다.


어느 날은 난데없이 커피를 타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무실에 대표님의 거래처 관계자인지 지인인지 모를 사람이 찾아와 회의실로 곧장 들어가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대표의 손님들이 자주 찾아와 업무 얘기 반, 사는 얘기 반 하고서 다시 나가는 일이야 워낙 흔한 일이라 직원들은 본인들 하는 일에만 충실하면 됐다.


그런데 갑자기 커피를 타오라니? 내가? 왜? 그래서 다시 물었다.


"제가요?"

"어어, 막내가 커피 한 번 타서 내와봐."

"제가... 왜... 요?"


머리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상황이라 순간적으로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순수한 의문형의 물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아, 그 죄송한데 제가 커피를 못 타서요."


바로 뒷말을 이어 붙였지만, 사무실은 이미 눈에 띄게 얼어붙은 후였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느낌까지는 안 들었다. 그냥 조금 망한 것 같다는 정도로만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런 실제 상황에서 조금 더 센스 있게 받아치거나 현명하게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할까? 있다고 해도 나는 막상 또 그렇게는 못했을 것 같아서 방금 내뱉은 말에 후회는 안 하기로 했다.


결국 다른 대리님이 탕비실로 가, 커피를 탔다. 그 커피는 그대로 회의실 안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버르장머리 없는, 그야말로 되바라진 사원이 되었다. 그렇게 이미지 낙인이 찍힌 것이다. 불만은 없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 앞으로 커피 몇 잔 타가서 미소 지으며 회사의 이미지를 화사하게 밝히겠다는 목적의식은 나에게 없다. 그런 일은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기 위해서 이 일을 배운 것도 아니다. 이는 굳이 내 직급과 역할에서 필요 없는 행위였다.


이후 대리님은 나를 불러 따로 혼냈다. 거기에서도 조금 대들었지만, 그 상황에서 현명하게 굴지 못한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는 반성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날처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나는 또 한 번 거절을 반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딜 가나 그 시절 잘못된 사상과 가치관을 주입시키려고 가상한 노력을 펼치는 열성적인 꼰대는 존재한다. 보편적으로 그들은 악의적인 의도로 후려치다 안 되면 가스라이팅도 서슴지 않는 부류다. 그렇다고 나이 먹은 꼰대가 없는 조직으로 들어가는 것이 완벽한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닌, 사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조직을 찾고 있는 과정이라면 다양한 연령층이 고루 섞인 집단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겠다.


결단코 어느 회사든 어떤 구성원이든 유니콘은 없으니 말이다. 적당히 중화된 분위기가 그나마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만 기억해도 반은 살아남은 목숨이 되지 않을까.




근래는 예전보다도 조금은 더 세상에 발전해서 취준생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경력직들도 충분히 기업을 조사하고,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알 수는 없다는 게 큰 애로사항이긴 하지만, 눈치껏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 집단인지는 가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기업 평점과 재직자, 퇴직자들의 후기들을 통해서 말이다.


물론 수습 3개월을 다녀도 내가 다니는 이 회사가 어떤 곳인지 파악이 잘 안 되는 게 평균이다. 6개월을 다녀도 모르고, 1년 다니면 제법 알 것도 같은데 또 다르게 느껴지는 게 내가 다니는 회사인 것이다. 이는 모든 직장인들의 숙명이자 굴레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경험을 쌓고, 쌓아가다 보면 분명 요령은 생긴다. 가령 예를 들면, ‘우리 회사가 뭐 하는 곳인지 알아요?’의 뉘앙스가 단번에 제대로 읽히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면접자의 신분에서 충분히 대답을 선별할 수 있게 된다.


‘우리 회사는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목표가 있습니다’의 구체적인 포부와 설명이 면접자의 입장에서도 훨씬 좋다는 것. 그 차이를 명확히 분간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더 이상 갑을 관계에 쫓겨 ‘뽑아줘서 무조건 감사합니다’가 아닌 이것저것 재고 따져 판단할 수 있는, 일명 ‘안목’이 생기는 것이다.


회사를 선택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자잘한 조건부들은 많다. 직장 생활을 더욱이 연명하다 보면 조건은 더욱 디테일해진다. 나의 경우는 수많은 조건 리스트가 있지만, 그중 하나만 뽑아 이야기해 보자면 화장실을 꼼꼼하게 본다는 것이다. 회사 건물 외관이나 환경은 일할 자리만 제대로 마련되어 있다면 상관없지만 화장실이 노후된 것은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면접을 마치면 회사 화장실이나 건물 화장실 상태를 확인하는 편이다.


을이 좀 까다롭고, 깐깐하고, 신중하면 어떤가? 갑은 나의 노동력과 능력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 합당한 능력을 제공하고 돈을 버는 을이다. 그러니 내가 일해야 할 곳의 환경과 조건이 나의 가치관이나 기준과 부합하는지 충분히 살피고 따진 후에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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