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ior 家長의 출근 일기
오늘도 아침을 연다.
목디스크로 몸이 욱신거려 만사가 귀찮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하러 나가야 하는가 그 생각부터 올라온다. 요즘 세상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거의 없단다. 그럼에도 아침을 거르고 나가는 것을 몸이 거부한다. 특이한 체질이란다. 아침을 거르는 것이 특이한 체질인 줄 알았다. 그래서 좀 미안한 마음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아내는 정성 들여 황탯국을 끓여놓았다. 거기에 밥을 대충 말아먹고 집을 나선다. 어차피 수고하면서 왜 말은 다르게 할까. 주부들은 그 마음을 다 안다. 나도 지방 근무할 땐 어쩔 수 없는 주부(主夫)였다. 아침은 귀찮다. 그럼에도 거의 거른 적이 없었다.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몸이 요구했다. 그래서 특이하다는 것이다.
같이 잠을 잔 귀여운 내 껌딱지 몰티즈 랑이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며 배웅한다. 녀석이 온몸으로 '오늘도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한다. 안고 뽀뽀 한 번 해주고 손을 흔들며 녀석을 뒤로한다. 사람보다 낫다.
전철 앞에까지 가는 길은 아파트 길이지만 주변에 플라타너스와 벚나무들이 많아 아직은 푸르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어떤 중학생 정도의 포니테일의 여학생이 휴대폰 통화를 하며 구름이 많이 낀 하늘을 쳐다보고 하늘이 불안하다고 말한다. 아침 시간에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불안한 요소를 우리는 참 많이도 갖고 살고 있다. 정말로 불안한 일이 생기면 뭐라고 말할까.
앞에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뒤태가 불안하다. 천기(天氣)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이런 게 진짜 불안 요소다. 팔자로 굽어진 다리 사이로 멀리 걸어가는 학생이 보인다. 그럼에도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가 넘어지지 않고 느리지만 동일한 템포로 걸어가는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나도 저렇게 하얗게 되면 다리는 성하며 과연 잘 걸을 수 있을까.
역사(驛舍) 안에 들어섰다. 오늘도 전철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눈앞에 보이는 안내 모니터는 내가 타야 할 열차가 2분 후에 도착할 거라고 보여준다. 지금부터 조금 빨리 걸으면 문제없이 탈 수 있다. 여기저기 발걸음들이 빨라진다. 게이트 태그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자 바로 열차가 도착한다. 늘 계단을 조심한다. 전에 젊었을 때 급하게 두 칸씩 뛰어 내려가다 발목이 삐어 일주일 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전철 안은 시원하다. 여름이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며 가을이 왔지만 아직도 절반은 반팔 차림이다.
자리가 없어 서서 바라보는 전철 안 풍경은 늘 그대로다. 대부분 휴대폰을 보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딱 한 사람. 캐주얼한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다. 늘 출근길에 그 사람을 만난다. 그때마다 그는 책을 읽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갈아타는 곳에서도 역사 밖의 산을 주시하며 난간에 책을 올려놓고 읽고 있었다. 그가 다르게 보였다. 또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그게 궁금했다.
그에게서 눈을 떼자 바로 눈앞에 좌우로 서 있는 젊은 여자들이 보인다. 요즘 젊은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다들 키가 크다. 둘 다 내 앞을 막고 있는 듯하다. 둘이 동시에 서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그네들의 휴대폰에 눈길이 갔다. 아니 내게 보여주는 것 같다. 하나는 유튜브를 보고 있고 오른편의 그녀는 웹툰에 빠져 있다. 그들과 비슷한 나이인 아들, 딸의 출근하는 모습이 그대로 오버랩되었다. 우리 애들도 그럴까. 그러겠지.
지하철은 다시 전철로 바뀌었다.
날은 흐렸지만 눈앞에 보이는 산들은 아직 푸르다.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통증을 억제하려 한쪽 손은 저린 어깨를 주무르고 눈은 밖을 쳐다본다. 레일 이음새를 넘어가는 열차의 철거덕거리는 소리가 아픈 기운을 데리고 가는 것 같다. 쇳소리도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 소리가 음률이 되어 내 푸른 시절을 갖고 온다. 지금은 그 기찻길이 없어졌지만, 옛날 해운대에서 동해남부선을 타고 바다를 보며 여행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철거덕거리는 그 소리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고 다른 모습으로 내게 그때 그 젊은 시절을 이렇게 소환한다.
전철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말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참 친근하다. 어떤 연세 많으신 분은 가끔 눈인사도 한다. 그때마다 사람 냄새가 풍긴다. 다른 것도 아닌 단지 눈인사 한번 받았을 뿐인데...
다시 다른 열차로 갈아탄다.
갈아타는 곳은 주변에 산이 많다. 유명한 바위산이 떡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당당하다. 아까 그 중년은 책을 펴고 산을 바라보며 다시 읽기를 거듭한다. 내가 타는 칸은 제일 앞칸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이 눈에 익숙하다. 이제는 하나하나 그들의 행동까지 기억이 되어 도착역에서 어떻게 그들이 움직이는 것까지 그려진다.
어떤 몸이 가냘프고 젊어 보이는 여자는 꼭 역에 도착하면 내 앞을 가로질러 뛴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뛰다시피 하며 올라간다. 아침에 조금 일찍 나오면 뛰지 않아도 될 텐데, 꼭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모습이다. 뛰어야 산다가 일상화된 사람 같다. 어떤 지긋한 노신사는 기어코 그 많은 계단을 뒷짐을 지며 올라간다. 양복을 입어 약간 어울리지 않을 뿐 영락없는 등산하는 폼이다. 백발의 청춘, 튼튼한 다리가 그렇게 말한다. 또 어떤 아주머니는 몸이 뚱뚱해서 다리에 힘이 없는 듯 엇박자로 걷는 모습이 불안하다. 늘 그 아주머니를 만나면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역사를 나오는 곳에 늘 그렇듯이 할아버지가 죄지은 듯 앉아 있다. 고개 숙인 할아버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그려진다. 추석이 지나고 첫 출근길인데 할아버지는 명절이나 제대로 보내셨을까. 저 앞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까. 갖은 방법을 다 해보고 결국 사람들의 동정을 구해야 하는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혼자만의 눈물을 흘렸을까. 가난하고 못난 것이 고개 숙일 일이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불공평한 세상이 천벌 받아야 할 죄인인 것이다. 이처럼 주종이 달라지는 것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늘 그렇지만 죄송한 마음에 얼른 시선을 뒤로하고 또 걷는다.
걷는 길에도 몇몇 동행자가 있다. 그중 중년의 신사를 자주 만난다. 그는 걸음이 무척 빠르다. 그를 따라가려면 거의 뛰다시피 해야 한다. 다음 신호등을 기다리지 않고 건너기 위해서 그렇게 빨리 걷는 것 같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맞춤형 걸음걸이다. 삶이 그렇게 빠르게 걸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었을까. 그런 생각을 할 즈음, 그는 이미 저만치 빠르게 앞서 간다. 마른 체형의 그의 모습에서 건강미가 넘친다.
사무실엔 아직 아무도 없다.
늘 내가 제일 첫 번째 출근이다. 하기야 출근시간 한 시간 전이니 누가 이렇게 빨리 출근할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바로 정해진 출근시간 한 시간 전부터다. 발 빠른 중년 따라오느라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사무실 도착하자마자 정수기 찬물을 종이컵으로 두 컵 마신다. 숨이 찼을 때 마시는 그 물맛이 참 좋다.
한숨 돌린 후 책상 앞에서 아침 감사 기도를 간단히 하고 더치 앤 빈 커피를 내린다. 그것을 내리기 전에 커피가루가 들어 있는 하얀 팩을 코에 갖다 대면 그 향에 넋이 나간다. 이 첫 커피 향을 맡으려고 그렇게 빨리 걸어왔나 보다. 아쉬움 때문에 꼭 두 번 냄새를 맡는다. 팩을 걸치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방울방울 흑갈색 진주 같은 커피가 내려진다. 그것을 보면서 성경을 편다. 한 모금, 뜨거운 커피가 몸속으로 들어가면 그 쓴 기운이 몸을 휘젓고 나른하게 만든다. 휘어진 연기처럼 커피의 뜨거움이 머리 위로 몽글몽글 솟아오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성경 속에 파묻히다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면 그때부터 모니터를 켜고 이곳저곳을 훑어본다. 반가운 댓글들, 소식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 아침 이불속 게으른 불평은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으로 바뀐다. 그렇게 내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