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트에 들러 아침을 대신할 만한 샌드위치와 신랑이 평소 좋아했지만 요즘 운동하느라 자제하고 있던 모카크림 식빵 같은 것들을 몇 개 고른 후 막 계산을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하길래
"아니요..."
하면서 구입한 빵만 받고 뒤돌아서려는데 문득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아 맞다. 엄마는 항상 영수증을 받았더랬지?
엄마는 왜 항상 영수증을 받았을까?
엄마랑 떨어져 산지 25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문득문득 엄마랑 살던 때가 떠오르곤 합니다.
신랑 없이 가끔 혼자 집을 나서 무언가를 할 때면 더욱 그런 것 같은데요..
엄마는 대형 마트를 가던지집 앞 자그마한 가게를 들르던지 언제든지 영수증을 꼭 챙겨서 나왔습니다. 그리곤 마트 문을 나서며구입한 물건과 영수증 내역을 비교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습관을 반복하다 보니 정말 잘못된 계산을 발견해서 돌려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덜 내고 나와서 다시 돌려주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 당시에는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엄마가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문득 '나는 왜 영수증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우선 귀찮다는 생각이 가장 클 테고 어차피 영수증을 받아봤자 주머니에 쏙 넣고는 버리기 일쑤니 번거로운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리고 가끔 종이를 아껴 환경을 생각하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는 거겠죠.
그러면서도 영수증을 받지 않고 계산을 마치고 나올 때면 종종 찝찝해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빵 몇개 안 골랐는데 이게 28,000원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오늘도 습관처럼 '영수증은 주지 마세요. 안 주셔도 됩니다'라고 해 버렸고, 나오면서 속으론
'이 가격 과연 맞는 가격일까? 몇 개 담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금액이 많이 나왔지? 방금 계산해 주시는 분이 근무한 지 얼마 안 된 분 같던데 정확하게 계산한 게 맞을까?'
영수증 1장 안 받았을 뿐인데 찝찝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 순간
저의 습관과 엄마의 습관을 비교해 본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계산할 때면 영수증을 받아서 지출 품목과 금액을 확인해 보는 삶을 평생 살아오던 엄마의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는 평생 주부셨지만
지금은 4층짜리 건물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서울... 대학교가 3개나 모여있는 동네에 말이죠.
알뜰살뜰 아빠의 월급만으로 살림을 잘 오신 덕분이겠지요. 혹자는 말하길 그때는 외벌이들도 부동산으로 뻥튀기를 잘하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물론 엄마의 동생인 이모가 그 근처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다 '언니~ 이건 너무 좋은 거야. 급매야 급매! 언니 돈 있지?' 하며 좋은 매물 정보를 알려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엄마에게 만약 돈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었죠...
갑자기 계산대 앞에서 엄마의 습관과 제 습관이 오버랩되면서 귀찮다는 잠깐의 이유로.. '뭐 계산이 다르겠어? 그냥 잠깐 내 느낌이 그런 거겠지... 계산은 맞겠지 뭐..'라며 무심히 흘려버린 나의 이 습관...
이런 무심한 습관을 가지고도 과연 나도 건물주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이어 엄마의 눈빛도 생각났습니다.
대학생 때 가끔 택시를 타고 다니는 저를 보며 안타까워하던 엄마의 시선이요...
물론 여러 사정상 그럴 수 있겠지 싶어 딸을 이해해 주던 엄마 눈빛을 넘어 엄마의 삶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습니다.
엄마는 그러한 순간에도 참고 견디었겠구나싶은 생각이 들면서요.
<평생 주부던 우리 엄마는 어떻게 서울 4층짜리 건물주가 되었을까?>
이런 주제로도 엄마에게 인터뷰를 진행해 봐야겠네요...
3일 뒤면 엄마 뇌수술입니다.
내일 아침엔 차를 가지고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엄마의 집으로 갈 예정이고요.
엄마의 입원 수속부터 보호자 역할까지
안 가본 길이라 어떤 상황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저희 모녀에서 25년 만에 처음으로 주어지는 2주간의 시간을 잘 보내다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