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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r 12. 2021

몬태나 ISI 모임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

International Students, Incorporated

Good friends are hard to find, harder to leave, and impossible to forget.


몬태나에서 만난 도메스틱 엔지니어링이라는 여성들의 모임에서 나는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중 한 친구는 내게 또 다른 인터내셔널 모임이 있는데 남녀노소 아무나 가도 되니 가족과 함께 꼭 가보라 했다. 그 모임의 이름은 ISI였다. 몬태나주립대학교 바로 옆에 있는 Bowman House라는 장소에서 한 달에 두 번, 금요일 저녁을 함께 하는 모임이었다.  


남편한테 ISI 모임 이야기를 하니 너무 좋다며 돌아오는 금요일에 꼭 가보자 했다. 나와 남편은 20년 전 대학교 캠퍼스에서 모이는 클럽에서 만났기 때문인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에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도메스틱 엔지니어링 모임은 여성들만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이라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ISI 모임은 온 가족이 같이 갈 수 있어 너무 잘 되었다 싶었다.


처음으로 간 ISI 모임, 건물 입구에는 하얀 스티커에 이름표를 만드는 테이블이 있었다. 이 모임의 터줏대감 격이신 데이비드 아저씨께서 환한 미소로 반겨 주셨다. 이미 안쪽에는 각 국에서 온 얼핏 봐도 사오십 명 가까운 사람들이 북적였다.


"Onion~ Say~ Yo"

갑자기 데이비드 아저씨 하신 인사였다. '양파?'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고 여쭈어 보니,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문장을 'Onion, Say' 이 두 개의 단어로 외우셨단다.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히게 발음이 비슷했다. 한국어가 완전히 낯선 말이다 보니 이렇게도 연상시켜 외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 가족은 웃으며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ISI 모임은 미국의 서쪽에 위치한 8개 주의 약 900개 캠퍼스에 조직되어 있는 모임이다. International Students, Incorporated라는 글자의 약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최근에 모임 운영진으로부터 맨 뒤의 단어만 Fellowship으로 바뀌어서 ISF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직 홈페이지에는 예전 그대로 ISI로 되어 있다.  


이 모임은 같은 이름으로 대학교의 학생 클럽으로도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학을 통해서 외국에서 온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대학교와 관련이 없더라도 다문화 가정이거나 다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모임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자금은 자원봉사와 교회 및 학교의 지원으로 충당이 된다고 한다.  


몬태나 보즈만의 ISI  모임은 한 달에 두 번, 금요일 저녁시간에 이루어졌다. 식사는 볶음밥, 칠리, 카레, 포테이토 바(bar) 등 다양한 주제로 돌아가며 이루어졌다. 식사 테이블 외 디저트 테이블도 항상 마련되었다. 쿠키, 아이스크림, 파이 등이 단골 메뉴였다. 똘똘이는 늘 주메뉴보다는 디저트에 관심을 보였는데 미국 어린이들도 모두 똑같았다.


식사 준비는 미국인 가정에서만 분담하여 이루어졌고 학생이나 외국인 가정들은 어떠한 참가비나 준비 없이 그냥 올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아줌마로서 거의 매번 한국음식을 싸 갔다. 간단하게는 구운 김을 잔뜩 잘라서 가기도 했고 시간이 있을 땐 정성스레 대추차를 끓여서 커다란 보온병 2개에 담아 가기도 했다. 한 겨울에 싸 간 대추차는 그야말로 인기가 최고였다. 싸 간 한국 음식 옆에는 항상 포스트잇으로 음식의 이름을 영어와 한국어 로마자 표기로 적어 안내했다.


가지고 갔었던 한국음식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음식은 단연 김밥. 알록달록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물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라며 칭찬을 해 주었다. 하지만 많은 양의 김밥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기에 딱 한번 만들어 가는 것에 그쳤다. 가장 인기가 없었던, 대부분을 남겨왔던 음식은 인절미. 디저트 코너에 갖다 놓았었는데 몇몇 친구들만 시도해보는 눈치였다. 맛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정작 입에 넣어보고는 '쫄깃한 식감 참 낯설다.' 하는 표정을 지었던 게 기억이 난다.  


개강이나 종강, 미국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이 있는 기간에는 피자나 햄버거 등이 준비되었고, 자전거 뽑기나 영화 보기, 옐로스톤 관광 등의 이벤트도 가끔 이루어졌다. 미국에 온 지 1년쯤 지나서 자전거 뽑기 행사에 참여했을 때 똘똘이 이름으로 자전거가 뽑혔던 추억은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경험한 멋진 행운 중 하나가 되었다. 덕분에 남편은 새 자전거를 타며 출퇴근을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이 모임에서 우리 가족은 좋은 친구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처럼 외국인들도 많았지만 미국인들도 많았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외국의 경험이 있거나 외국의 문화, 외국인 친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결같이 모두 친절하고 우리 가정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도 많이 해주곤 했다. 나의 부족한 영어에도 늘 귀 기울여 주고 한국에 대해 많은 걸 질문해 주었던 친구들. 한 달에 두 번 이루어진 모임이었지만 덕분에 나의 영어 실력도 조금씩 늘 수 있었다.


ISI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 기억에 남은 친구들을 떠올려 보면,


이 모임을 이끌어 나가고 계시는 브렛 아저씨. 손자까지 여럿 두신 분이시지만 굉장히 젊어 보이시고 활기차게 사시는 분이시다. 처음엔 자원봉사로 모임 리더를 맡고 계신 줄 알고 여쭈어 봤는데, 알고 보니 직업으로서 모임 운영을 하고 계셨다. 풀타임 잡이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너스레 떨며 대답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한 번은 ISI 모임으로 하이킹 후 본인의 집에서 햄버거 파티를 해 주신 적이 있었다. 사모님께서 샐러드, 디저트 등 다양하게 준비를 해 주셔서 감사했다. 그때 먹었던 브렛 아저씨의 두툼한 왕 햄버거는 아직도 우리 가족에게 몬태나에서 제일 맛있었던 햄버거로 기억된다.  


대학 졸업 후 몇 년 동안이나 한국 드라마를 매일 보는 게 낙이었다는 에밀리. 에밀리는 대학 졸업 후 여러 가지 원인으로 무기력증이 한동안 왔었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한국 드라마를 보고는 너무 재미있어서 무기력한 생활을 이겨냈고 독학으로 한국어를 2년 넘게 공부를 해 오고 있었다.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우리 집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초대해 몇 달 동안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베이킹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라 어느 날인가 소보로 빵을 구워서 에밀리에게 주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밀가루를 못 먹는 체질이었고, 먹을 수 없었다. 이후엔 찹쌀가루로 찰떡을 만들어 주었더니 너무 맛있다며 좋아했다. 미국인 중에서 떡을 가장 좋아했던 에밀리였다.


어린 시절 6년이나 일본에 살았던 필립과 부인 사라. 나와 사라는 성격이 왠지 잘 통해서 보즈만에서 있는 동안 자주 만나고 친하게 지냈다. 필립과 사라는 아들만 둘이었는데 큰 아들이 우리 똘똘이와 동갑이었다. 부모와 아이들의 나이가 잘 맞아서였을까 우리들은 참 잘 맞았다. ISI모임에서 보는 것 이외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몇 번이나 따로 놀이 모임을 갖기도 했다. 필립네 집에도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보즈만에 이런 동네가 있었나 할 정도로 한적한 동네였다. 주변에 이웃집도 없고 소 목장과 밭만 있는 곳이어서 아이들이 실컷 뛰어 놀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주변에 살고 계시며 농부로 일을 하시는 부모님 댁에도 우리 가족을 초대해 줘서 넓은 농장 구경을 하고 멋진 헛간도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외국의 문화에 특별히 관심이 많았던 조엘제시. 조엘은 미국 교회 목사이고 제시는 사서로 일을 한다. 보즈만 시립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제시는 나와 똘똘이가 도서관에 갈 때마다 종종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늘 반갑게 인사하며 도서관에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오케이라고 했던 제시. 조엘과 제시는 아이들이 3명이었고 똘똘이와 모두 비슷한 나이였다. 집에도 몇 번 초대를 해 주어서 놀러 갔었다. 맨 처음 놀러 갔을 때 디저트로 오늘 첫 도전이라며 만들어 준 것이 호떡이어서 놀랬던 적이 있다. 호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거리 음식 중 하나. 미국에서 처음 먹어 본 호떡이 미국 친구 제시의 호떡이 될 줄이야.


말레이시아에서 온 제니퍼도 빼놓을 수 없다. 제니퍼는 스무 살 무렵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다가 남편 크리스을 만나서 결혼했다. 미국에서 산 지 이십 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말레이시아가 그리워 매년 고국 방문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크리스는 보즈만에서 가장 큰 병원의 의사였는데 참 소탈했고 또 수다쟁이였다.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해 온 친구. 영어로 답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뭐라고 답하든 간에 척척 알아들었다. 자녀 3명은 똘똘이보다 조금 나이가 많거나 비슷했고 세 명 모두 홈스쿨링을 했다. 제니퍼는 박사 후 연구원까지 했지만 연구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둔 후 아이들의 홈스쿨링 선생님이자 엄마로 아내로 가장 바쁘게 살고 있는 친구 중 한 명이다.



문득 ISI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팬데믹으로 인해 ISI 모임은 거의 일 년 가까이 오프라인으로 만나지 못 하고 있다고 한다. 모쪼록 펜데믹이 다 지나가고 좋은 친구들이 함께 하는 ISI의 멋진 모임도 부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참고 자료]

https://www.isiwest.org/international-students.html

https://www.facebook.com/groups/293331160799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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