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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Apr 28. 2021

몬태나에서 가장 달콤했던 모임

몬태나에서 맞은 첫 크리스마스

Friends are chocolate chips in the cookie of life!


몬태나에서 맞은 첫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2017년 12월은 팬데믹이 없었던 때라 행사도 많았고 초대도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달콤했던 모임, 쿠키 모임에 초대를 해 주었던 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 사라의 쿠키 교환 모임


사라와는 ISI(International Students, Incorporated)라는 단체의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ISI는 한 달에 두 번 주로 미국 사람들이 주최가 되어 금요일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인터내셔널 가족들, 학생들과 함께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었다. 사라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는데 큰 아들은 똘똘이와 동갑이고, 작은 아들은 2살 어리다. 보즈만에 온 지 6개월 정도쯤 지났을 무렵, ISI 모임에 간 첫날 사라와 사라네 가족도 처음 만났다. 


그때만 해도 나는 미국 생활, 특히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때였다. 시간이 약이라고 지금은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몬태나 생활 1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영어로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머릿속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정신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라와는 첫 만남에서부터 친근한 느낌이 들었고 영어에 대한 부담이 적게 느껴졌다. 어떠한 영어도 사라는 잘 이해했고 짧은 영어로도 대화가 왠지 잘 통했다. 


사라의 두 아들과 똘똘이는 첫 만남에서부터 잘 어울렸다. 사라의 남편인 필립은 키가 아주 컸고 어릴 적 6년이나 일본에 산 경험이 있었다. 필립은 유치원 때 일본으로 이사를 가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큰 키로 인해 튀는 것이 싫었고, 일본어가 어려워서 초등학생 때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좋은 추억도 많았다고 했다. 필립은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역사, 문화, 음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며 자주 생각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두 가족은 첫 만남에서부터 친해지기 시작할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사라와 나는 생일도 비슷한 동갑이라는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는 나이를 잘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40년을 한국에서 산 나는 나이가 궁금할 때가 많다. 사라의 나이가 궁금해서 만난 지 몇 달이 되었을 때 물어봤는데 완전 동갑! 그리고 사라의 전공은 스페인어였다. 하는 일도 제2외국어 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영어를 제2외국어로 쓰는 친구들을 많이 안다고 했다. 역시 나랑 영어가 잘 통하는 이유가 있었다.  


몬태나에서 맞은 12월의 첫날, 사라에게서 아래와 같이 메일이 왔다. 

Are you going to ISI tonight? We're planning on being there so hope to see you. 
I have another question for you. If I decide to host a Christmas cookie exchange would you like to come? I would invite some other people too. Everyone brings Christmas cookies and then you exchange them. 


저녁에 ISI에서 만났을 때 모임에 대해 물어보니 예상과는 달리 본인도 쿠키 교환 모임을 처음 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교환 모임이라는 말을 쿠키와도 같이 쓸 수 있음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가 좋다고 하면 자기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한번 재미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나는 물론 좋았다. 한창 베이킹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라 쿠키 굽는 것은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오로지 걱정이라면 영어겠지만 마음이 잘 통하는 사라가 있으니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어떤 쿠키를 가져갈까, 고민하면서 여기저기 레시피를 찾다가 아무래도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쿠키를 가져가면 좋을 거 같았다. 몇 달 전 쌍둥이 엄마가 베이킹 도구들을 내게 주고 이사 가면서 알려 준 블로그, 하나만님의 레시피에서 마음에 드는 쿠키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파리바게뜨의 크렌베리 월넛 쿠키! 쌍둥이 엄마가 알려 준 하나만님의 블로그에는 다양한 쿠키, 머핀, 케이크 레시피가 있다. 유튜브가 대세이긴 하지만 하나만님의 블로그가 더 좋을 때가 있다. 찾아보기도 쉽고 따라 하기도 어렵지 않은 레시피가 많기에 베이킹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놀러 가 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날, 쿠키 교환 모임을 하는 날이 되었다. 크렌베리와 호두를 듬뿍 넣은 쿠키는 생각보다 큼직하게 먹음직스럽게 완성이 되었다. 은박으로 잘 감싼 쟁반에 쿠키를 일렬로 담아서 가지고 갔다. 사라는 친구들 3명, 나까지 모두 4명을 초대했다. 다들 각자의 개성을 담은 홈메이드 쿠키를 준비해서 모였다. 모두 미국인 친구들이었고 아이들이 한 명에서 세 명까지 있는 엄마들이었다. 사라가 나를 친구들에게 잘 소개해 주어서 영어 대화가 쉽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라의 성격이 꼼꼼하고 배려심 많은 것은 몇 번 놀이 모임을 하면서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역시 이번 모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쿠키 위에 아이싱(설탕가루와 달걀흰자를 섞어서 만든 것)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준 덕분에 아이들은 쿠키에 그림을 그리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물어보니 아이싱용 쿠키도 어제 본인이 구운 거라며 두 가지 쿠키를 굽느라 바빴다고 한다. 아이싱 시간이 끝난 후에는 흰 종이 포장지를 접어서 가위로 모양을 내어 눈꽃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쿠키 교환 모임은 이름처럼 다 같이 쿠키를 맛보고 교환하는 모임일 줄로만 알았는데 사라의 알찬 준비 덕분에 아이들은 더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쿠키를 골고루 담은 쿠키 통을 잘 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남편! 나와 똘똘이는 이미 쿠키를 많이 먹어서 입에서 계속 달콤한 설탕 맛이 맴돌았다. 쿠키에는 엄청난 설탕이 들어가기에 진즉 오늘의 설탕량 한도를 초과한 듯했다. 하지만 남편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골고루 쿠키를 맛보는 남편의 얼굴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뱃살을 빼야 하지만 오늘 하루는 쿠키 데이니까 나도 한 개 더! 


# 앤의 쿠키 나눔 모임


몬태나에서 맞이 한 첫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그다음 날, 앤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운전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며 보즈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본인의 집으로 주말에 놀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함께 쿠키를 구워서 먹자고 하셨다. 내가 준비할 것이 있는지 여쭈니 아이와 같이 오면 되고 준비할 것은 전혀 없으니 안전 운전해서 오라는 말씀만 하셨다. 


앤은 도메스틱 엔지니어링이라는 몬태나 여성들의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지만 누구나 나이 상관없이 앤으로 불렀다. 몬태나에서는 어떠한 타이틀도 없이 이름을 그냥 부르면 될 뿐이었다. 아무리 영어라지만 처음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의 이름을 그냥 부르는 것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00님'과 같은 타이틀 없이 그냥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평등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나이의 장벽도 낮춰줄 수 있음을 점점 느낄 수 있었다.     


앤의 집은 맨해튼이라는 동네에 있었다. 보즈만에서 서쪽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인구가 1,500명에 불과한 작은 동네였다. 맨해튼에서 생각할 땐 인구 4~5만의 도시인 보즈만이 큰 도시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맨해튼의 많은 사람들은 대형마트로 장을 보기 위해 또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자주 보즈만으로 나오신다고 하셨다. 


똘똘이와 함께 앤의 맨해튼 집에 도착을 하니 집 옆에 작은 집이 붙어 있는 구조였다. 그 작은 집에는 앤의 부모님께서 살고 계셨다. 집에는 앤의 친구분이신 메리도 와 계셨고 러시아에서 온 인터내셔널 친구 한 명도 초대를 받아 와 있었다. 앤께서는 집 구경을 먼저 시켜주시겠다고 하셨다. 자녀분들 사진을 보다가 연세를 여쭈어 보니 앤은 우리 친정엄마와 동갑이셨다. 그리고 큰 따님은 나와 동갑. 모녀간의 나이가 서로 일치해서 참 신기했다. 


앤과 메리께서는 미리 쿠키 반죽을 다 만들어 놓으신 상태셨다. 우선 동글동글 초승달 모양으로 빚어서 아몬드 초승달 쿠키를 만들어 보자고 하셨다. 오븐에 15분을 굽고 나서 한 김 식힌 후 설탕 가루를 묻히니 하얀 눈이 묻어있는 듯 도도한 자태를 뽐내는 초승달 쿠기가 완성이 되었다. 하나 입에 넣으니 사르르 녹는 달콤한 맛. 또 다른 쿠키 반죽으로는 작은 컵 모양으로 한번 구운 후 그 안에 초콜릿을 넣어서 다시 구우니 컵에 초콜릿이 담긴 멋스러운 초콜릿 쿠키가 완성되었다. 


어제 미리 만드셨다며 꺼내신 것은 초콜릿 토피(캐러멜 과자)와 차이티(홍차에 향신료를 넣어 만든 차) 가루. 예쁜 접시에 초승달 쿠키와 초콜릿 쿠키, 초콜릿 토피를 담고 비닐로 포장을 한 뒤 빨간 끈으로 묶으니 근사한 쿠키 선물세트가 완성이 되었다. 앤께서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먹으라며 예쁘게 포장한 쿠키 접시와 차이티 가루를 나와 러시아 친구에게 하나씩 선물로 주셨다. 



몬태나에서 지낸 시간 중에서 팬데믹 이전의 3년 동안 많은 모임을 경험했다. 그중에서 가장 달콤했던 모임이라면 맛있는 쿠키와 함께 했던 두 모임, 사라와 앤의 쿠키 모임이 떠오른다. 아마도 사심 없이 초대해 주고 함께 해 준 그 보석 같은 마음 덕분에 쿠키가 더 달콤하고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 자료]

https://blog.naver.com/mdchung1/8016169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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