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다리에서 돌아온 그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습니다. 총 부채는 2억 3천만원. 월 이자만 450만원이 넘었습니다.
먼저 가족들 앞에 앉았습니다. 와이프, 부모님, 동생...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엑셀파일을 열었습니다.
"카드빚 4,200만원
대부업체 2,800만원
지인들 7,600만원
전세자금 5,000만원
기타 3,400만원..."
숫자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갈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말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와이프는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 재건의 기초: 전문가의 도움
다음날 바로 도박중독 전문 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상담사 선생님의 첫 마디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오신 것 자체가 큰 용기입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개인 상담과 집단 치료를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GA(Gamblers Anonymous) 모임도 참석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저 앉아서 눈물만 흘렸죠.
## 부채 정리의 시작
재무상담사와 함께 부채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1. 이자율이 가장 높은 대부업체 부채
2. 신용카드 부채
3. 지인들에게 진 빚
4. 전세자금
매달 월급 350만원 중 250만원을 부채 상환에 할당했습니다. 나머지 100만원으로 당분간 부모님 댁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와이프는 시간제 학원 강사를 시작했고, 주말에는 대형마트 진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 가장 어려웠던 순간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지하철역에서 전단지를 돌렸고, 퇴근 후에는 편의점 야간 알바를 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새벽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나갔습니다.
특히 힘들었던 건 지인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한 명, 한 명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분할 상환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떤 이들은 고함을 치며 화를 냈고, 어떤 이들은 말없이 등을 돌렸습니다.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첫째 아이의 말이었습니다.
"아빠, 우리 집에는 언제 가요?"
"할머니 집 말고, 우리 집에서 살고 싶어요..."
## 작은 희망의 불씨들
3개월이 지났을 때, 처음으로 작은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부업체 두 곳의 부채를 완전히 상환했고, 카드빚도 1,000만원 가량 줄었습니다.
GA 모임에서 만난 선배님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세요. 돈은 다시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자존심과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6개월째, 와이프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 새로운 일상의 구축
도박 충동을 이기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상담사님의 조언대로 세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1. 절대로 혼자 있지 않기
2. 스마트폰에서 모든 주식/선물 앱 삭제
3. 매일 밤 가계부 쓰기
퇴근 후에는 반드시 와이프나 아이들과 함께 있었고, 주말에는 가족과 근처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특히 둘째와 함께하는 그네 타기가 저희만의 소소한 행복이 되었습니다.
## 1년이 지난 후
부채는 1억 8천만원으로 줄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제는 희망이 보입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신뢰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어제는 처음으로 첫째 학교 참관수업에 갔습니다. 아이가 저를 보고 환하게 웃었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이런 행복을 도박으로 날려버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
아직도 매달 이자 상환이 빠듯하지만, 계획대로라면 3년 안에 모든 부채를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이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와이프와 약속했습니다.
"5년 후에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그때는 진짜 새로운 시작을 하자."
이제 도박은 제게 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대신 매일 밤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장보기를 하는 소소한 일상이 제 삶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정한 행복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