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zzy Lee 리지 리 Aug 21. 2023

서른한 살이 된 나의 생일에 필요한 선물은

이번 여름휴가는 한국에서의 쉼으로





 벌써 서른한 번째 생일이라니. 작년 서른 살 생일에 도하의 반얀트리 호텔 꼭대기에 있는 바에서 친구들을 모아 생일파티를 했었다. 그것도 생일인데 파티해야지 하는 친구의 말에 떠밀려 했던 것 같다. 그때 받은 선물들 중 매지 않은 가방, 뜯지 않은 향수들이 아직 카타르 집 서랍에 있다.








그 사이 일 년 중엔 카타르 월드컵도 지나가고 겨울엔 엄마도 카타르를 왔었다. 친한 언니가 퇴사 후 스페인에 잠시 살 때는 마드리드, 로마 비행을 가서도 만났었다. 오프 때 처음으로 두바이에 결혼해 사는 대학 언니 오빠를 보러 가기도 했다. 도하에서 또 한 번의 라마단도 지나갔다.



2022 Qatar Worldcup



크루들과 다 같이 나가 신나게 놀았던 알제리아, 세이셸 비행들도, 가봤던 곳이라 혼자 나가 요가를 하고 브런치를 먹은 비행들 혹은 잠만 자거나 장만 보고 온 비행들이 수두룩하다.



겨울의 스노보드, 오월의 발리 요가 여행 그리고 유럽 곳곳과 동남아 비행들. 게다가 프로모션까지 되어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 트레이닝에 벌써 비즈니스 비행 사 개월 차가 되었다니. 후~ 시간은 정말 날아간다.



Time flies!








사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과 순간들이 있었다. 이렇게 바쁘게 많은 것으로 젊은 순간들을 채워가는 것도 좋지만 잠시 멈춰 쉬고 돌아보는 이 시간은 더 소중하다.




One of the unforgettable layover in Tipaza, Algeria








바쁘게 비행을 하던 중, 8월 중순 여름에 생일을 끼어 여름휴가를 받아놨던 날짜에 해외여행을 하는 대신 한국을 와서 쉬기로 했다. 엄마와 스페인을 갈까도 했지만 물론 사서 하는 고생인 여행도 좋지만 나에겐 쉼이 절실히 필요했다. 비즈니스 클래스 승무원이 되자마자 비행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나와 무리일 정도였다. 비행은 좋지만 무리하며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이미 비행만으로도 많은 곳을 다녔고 그보다 피로에 지쳤다. 한국에 오기 직전엔 오 년 전 살았던 더블린으로의 비행을 그전엔 아테네, 그 전전엔 말라가를 다녀왔다. 말라가와 아테네는 이렇게 좋은 곳을 혼자 보기에 아쉬워 부모님과 꼭 다시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Resort room view from Malaga, Spain





말라가에서 보낸 삼 일간의 레이오버는 휴가 같았고 따뜻한 모래와 거센 파도를 느꼈다. 아테네에서는 유명한 신전인 아크로폴리스를 가지 않고 바다에서 수영했는데 그 후 먹은 해산물과 그릭 샐러드는 이번 해 먹어 본 음식 중 최고였다. 농장의 할아버지가 따 주신 무화과의 달콤한 맛도 잊을 수 없다.




Best dinner after swimming in Athens, Greece








더블린 비행에서 랜딩 한 후 너무 졸렸지만 세 시간 만에 짐을 풀고 싸고 한국으로 향했다. 유니폼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러 갈 기력도 없어 그대로 두고 와버렸다.



일 년에 한 번 왕복 무료인 애뉴얼 티켓이 주어진다. 비즈니스 클래스 크루가 된 휴 애뉴얼 티켓을 쓸 때 비즈니스에 자리가 있다면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이번엔 자리가 있었지만 나보다 사번이 높은 분이 타게 된 후 자리는 없게 되었다.



이코노미라도 좌석을 받아 한국 집에 한 번에 가게 된 것에 감사하게 생각했다. 저번에는 이코노미조차도 자리가 없어 홍콩을 경유해 한국을 왔었다. 친구는 싱가포르를 경유해서 가기도 했었다. 카타르항공의 카타르- 한국 노선 비행은 매일 밤 한 번씩 있는데 운항 수 증편이 절실하다. 한국인 승무원들이 휴가 때 집을 바로 가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DOH-ICN Hymalayas after 3 hours of flight



한국에 오는 비행 탑승 전 공항에서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좌석이 불편해서 그런지 잠이 잘 안 왔다. 창가 자리라 봐도 봐도 재밌는 경치를 즐겼다. 옆에 컬러풀한 머리의 여자 두 분은 네덜란드에서 왔는데 처음으로 한국을 여행 간다고 했다. 나에게 선물로 수제 스트룹와플(네덜란드 캐러멜 와플 간식)을 주었다. 우유와 먹었는데 꿀 맛!








이번 생일에는 파티도 약속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우연하게도 급 친한 언니를 전날 만나 소소히 이자카야에서 기념하고 다음 날에도 급 친한 요가 선생님을 계획 없이 만나 새로 오픈한 요가 스튜디오를 가서 소소히 기념했다. 그 외로는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고 집과 주변에서만 쉬며 여유로이 시간을 보냈다.



높은 고도에서 작게 보이는 지구와 비행하며 다니는 새로운 나라에서의 레이오버는 정말 두근거린다. 하지만 가끔은 낮은 고도의 땅에서 쉬는 것만큼 천국이 따로 없다. 게다가 집밥은 금상첨화.



최고로 맛있는 소고기 전복 미역국, 가지나물, 참기름 묵은지



생일 주간 부모님과 저녁을 먹고 필요한 것을 사고 집에 와 간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부모님은 나의 인생의 매일매일을 생일처럼 대해주셨던 것이다..




이 삶을 살게 해 주신 부모님과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의 존재가 선물이다. 내게 더 이상 필요한 생일 선물은 없다. 사실 한국을 오는 길에 캐리어 바퀴가 하나 떨어져 나가 수명을 다 해 새것이 필요하긴 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또한 내게 큰 선물이다.






I appreciate your being


You are the gift for me





Love,

Lizzy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7화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 한 달 차 승무원의 고군분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