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인가 독인가? 승진이 좋은지 나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4월 말에 트레이닝을 끝내고 오월 유월 새롭게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 중이다. 오월에는 여름휴가의 일부를 다녀오고 유월에는 120시간이 넘는 힘든 비행 스케줄에 페티그 리포트(만성피로 보고)와 씩(병가)를 많이 내서 실질 비행을 한 건 한 달 정도이다. 여름휴가로는 온전히 발리의 우붓에서 요가만 하고 왔다. 우붓이 산스크리트어로 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연히 만난 인도네시안 승객이 설명해 줬다.
벌써 다음 달에는 삼 개월 차로 삼 개월에 한 번 있는 어세스먼트도 있을 예정이라니. 여기서의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시간은 지나가며 나이는 먹어가는데 마음은 젊어지는 느낌이랄까. 사막의 뜨거운 햇볕에 주근깨는 생겼지만 그 따뜻한 느낌과 푸르른 바닷속 물고기가 마음을 일렁이게 자주 만든다.
이코노미 크루였을 때는 어떤 비행에서의 어떤 포지션에서나 자신이 있었다. 비즈니스 크루를 시작하고는 매 비행 전에 공부를 더 하고 간다. 포지션에 따른 책무와 서비스 등을 다시 리뷰하고 간다. 그런데 비행을 가면 한 번 본 위치도 뒤돌아서면 까먹고 좌석 차트 앞에서는 가끔 길을 잃곤 한다.
한 번은 포크와 나이프를 깜박하고 음식만 주기도 하고 한 승객이 주문한 커피를 다른 승객에게 주기도 했다. 정말 정신없는 비행에서는 샴페인과 카푸치노를 쏟기도 했다. 다행히도 갤리에서. 승객에게 물과 와인을 따라주며 흘린 건 다반사였다. 그 후로는 느리더라도 서두르느라 쏟거나 실수하지 말고 차분히 가기로 결심했다. 음식을 전달하기 전에도 좌석 차트에 좌석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가곤 한다.
이렇게 느리고 실수투성이인 새로운 비즈니스 크루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첫 솔로 비행들에서 승객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 실수해서 당황하는 나를 오히려 승객들이 감싸주고 가끔은 감동의 위로와 말에 눈물이 찔끔 나올 뻔하기도 했다. 오히려 새로운 크루가 더 친절한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일을 하고 많은 승객들을 만나다 보며 지칠 때도 많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닌 그냥 단순히 일로 받아들여 힘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 승객 한 승객의 가늠할 수 없는 우주를 호기심과 애정으로 다가가야 하는데.
이렇게 비즈니스 비행을 하다 지난주에 작은 Airbus 320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턴 비행에서는 다시 이코노미에서 일하게 되었다. 바로 L4 이코노미 총괄 담당을 한 것이다. 세 명씩 줄줄이 앉아있는 승객들의 자리가 익숙했다. 어떤 한 8살 꼬마 아이는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앉았다. "키팍?" (아랍어로 How are you?)라고 물어보니 웃으며 "함둘라"(Thank god I am blessed and greatful 신에게 감사하게도 저는 축복받고 감사해요)라고 대답을 했다. 어른 승객들은 나의 아라빅을 잘 못 알아듣는데 아이는 알아듣고 그것도 단순히 타맘(good)이라는 대답이 아닌 함둘라 라고 대답하다니 감동이었다.
오랜만에 이코노미에서 다시 일을 해보니 편하고 재밌었지만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한 번 하는 것이니 즐기며 하지는 마음이기도 했다. 사실 어느 위치에 있던 이코노미 크루이던 비즈니스 크루이던 중요한 건 나의 마음의 상태였다. 내 생각이 이 위치에서 상황에서 평화를 만들고 어떨 때는 컨트롤을 못해 엘레멘탈 불의 소녀 엠버처럼 보라색이 되기도 한다. 아직 끊임없이 내 마음속 흔들림이 있지만 그럴 때 알아차리고 고요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떠한 힘든 일이 기내에서 일어나더라도 십 년 후 오십 년 후 돌아봤을 때는 그랬었지 하고 웃어넘길 일들일 것이다. 몇 개월 전에 일들 또한 그렇기도 하고 기억조차 나지 않기도 한다. 또한 경험들이 나를 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준다.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걸 알기에 기대를 하지 않고 이해하며 존재한다면 내 마음은 더 편하다.
지금 이 시기에 최고의 처방전은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해 갈수록 익숙해질 것이고 모든 문제는 나도 모르게 해결되고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 처한 고군분투의 상황이라도 앞으로 다가오는 한 비행 한 비행에 집중하며 발전해 나가자. 내 마음에 폭풍우가 찾아와도 그 비를 흠뻑 맞고 느끼고 빗속에서도 나만의 춤을 출 수 있는 어나더 레벨의 마음가짐을 갖자.
Let's enjoy this amazing 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