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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Lee 리지 리 May 16. 2023

파리로 비행은 가지만 에펠탑은 못 보는 현실

( feat. 파리 비행에서 만난 승객들 )




지인이 파리를 여행하는 인스타 스토리가 올라왔다.


저 다음 주에 파리 비행 있어서 가는데!


진짜요? 부럽다 일하면서 여행도 하고







Privilege of being a cabin crew

카타르 항공 승무원은 160개 이상의 데스티네이션을 비행 다닌다. 전 세계를 비행하는 승무원으로서 무료로 여행하고 좋겠다 부럽다는 말을 백만 번쯤 들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생에 한 번쯤 올 수 있었을까 싶은 새로운 곳들과 매력적인 오성급 호텔들에 머무르며 특권을 누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료로 여행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갔다 왔다 하는데 일하며 비행 후 도착해서는 씻고 쓰러진다. 씻을 힘마저 없어 겨우 샤워를 하고 머리가 젖은 채 잠에 들기 일쑤다. 바로 나가기도 하지만 가끔 세상이 빙빙 돌고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취한 기분이다. 새로운 이코노미 크루였을 때는 피곤해도 나갔지만 요즘에는 잠과 휴식을 우선순위로 택한다.



이번 파리 레이오버는 16시간이다. 랜딩하고 승객들이 내리고 공항을 통과해 호텔로 오고 가고 하는 시간을 빼면 거의 13시간도 안 되는 짧은 레이오버이다. 호텔에 도착하니 룸이 준비 안 되어있고 이미 사람이 있는 방을 잘못 주어 로비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새로운 방을 받았을 때 살짝의 무서움에 옷장 화장실 모든 곳을 열어 본 후에야 짐을 풀었다. 문도 잘 잠근 후 유니폼을 벗고 씻고 꿀잠을 푹 잤다. 자고 일어나 조식을 먹으니 이미 돌아갈 픽업 시간이다. 이번 비행은 프랑스 친구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저번에도 비행은 왔지만 만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공항 근처 호텔이라 파리 시내로 가려면 60km를 가야 하는데 그러기엔 충분하지 않은 레이오버 시간이다. 잠을 포기하면 가능은 하겠지만 돌아오는 비행에서 제정신이 아니고 도하로 돌아왔을 때 만성피로에 시달려 그다음 일정에 무리가 간다.



파리는 7년 전 아일랜드에 살 때 혼자 일주일간 여행하며 돌아봐서 다행히 짧은데 나가야지! 하는 마음은 없었다. 승무원이 되고 첫여름휴가에 부모님과 함께 파리의 에펠탑 앞 공원에서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그래서 짧은 레이오버여도 아쉬움 없이 잠을 푹 자고 무료 호텔 조식과 호텔 주변의 푸르름을 잠깐이나마 즐겼다. 리셉션에서 우산을 빌려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왔다. 발과 등은 다 젖었지만 잔디 사이에 작고 예쁜 꽃들과 우두두두 쏟아지는 빗소리와 이 차갑고 푸르른 공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상쾌했다.








첫 번째 솔로 비행으로 몰디브를 다녀왔었다.


그리고 두 번째 솔로 비행으로 온 프랑스 파리, 그 비행에서 만난 승객들.



DOH-CDG


파리 공항 코드는 CDG이다. 공항 이름이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 Airport) 이기 때문이다. 파리로 가는 비행은 만석이었고 내가 맡은 승객은 12명이었다. 비행을 오기 전 날 카타리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브런치를 먹었다. 그때 아랍어로 자기소개하는 법을 배웠는데 마침 아바야를 입은 승객이 있길래 자신 있게 써먹었다. "아쌀람 알라이쿰~ 말하바~ 이스미 리지~ 아나 코리아~ 폴사 사이다~ 슈크란~" 하며. 우연히도 그 승객이 내 존의 승객이었다. 심지어 사무장이 나에게 카타르 국왕의 친척이라고 쉐이카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난 이미 그녀의 이름을 불러버렸다. 그녀는 한국도 가봤고 전 세계 곳곳을 여행했었다고 말했다. 카타르 왕족임에도 그녀는 굉장히 겸손하며 감사하고 디멘딩 하지 않았다. 카타르의 모든 박물관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고 문화와 전시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VVIP인 한 백발의 승객도 있었다. 정장 재킷과 코트를 맡겼었는데 나중에 내가 정장 재킷만 주니 자신의 코트는 어디에 있는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 승객들의 재킷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TOD 때 돌려줘야 하는데 당황스러웠다. 그 승객은 보르도 와인을 즐겨 마셨고 세 번 더 마셨다. 와츠앱을 달라고 친구 관계를 이어가자고 했지만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고 결국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TOD(Top of Descent) : 최고 하강점으로 항공기가 순항 고도로부터 하강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때부터 착륙(랜딩) 준비를 한다.




한 여자 승객은 행복했다. 프랑스인이지만 지금은 아부다비에 산다고 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파리 공항에서 카타르항공 지상직으로 근무했었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레몬 아이스티를 마시며 즐겼고 점심은 여유롭게 나중에 먹었다. 중간에 무료 1시간 와이파이를 다 썼다며 추가 바우처가 없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테이크오프를 하기 직전 자신의 남편이 선물로 에티하드 항공 한국행 비행기 표를 선물로 줬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녀는 한국을 처음 가 본다며 와이파이를 연결해 호텔과 가야 할 곳 등을 찾아보고 싶다고 했다. 와이파이 바우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메모장에 서울에서 좋은 호텔, 스파와 가야 할 곳 먹을 것들을 추천해서 써줬다. 그녀는 내리면서 내 정확한 이름 스펠링을 알려달라고 너무 고맙다며 회사에 나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다.



가족들과 같이 여행하는 어린 승객들도 많다. 이번에는 15살의 프랑스 청년이었는데 먹성이 좋아 풀코스로 먹고 디저트도 두 개를 먹었다. 가끔은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된 기분이기도 하다. 몰디브를 가는 길엔 중국인 가족을 맡았었는데 여자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고 있어 대학생 때 수학 과외를 했던 시절처럼 문제를 같이 풀어줬었다. 아주 재밌어하며 지나갈 때마다 웃으며 눈 마주쳤던 게 기억난다.



한 말레이시아 여성은 메인 밀로 *락사(laksa) 하나를 먹고 어떤 승객은 라운지에서 많이 먹고 와 배부르다며 샴페인만 한 잔 마신 승객도 있었다. 다양한 승객들을 만나는 게 참 재밌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흥미롭고 영감적이다.


*락사(laksa)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음식으로 코코넛 카레 쌀국수이다. 호주 시드니에 살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CDG - DOH


파리에서 카타르로 돌아오는 길, 다행히 이번엔 하프 로드였다. 6명의 승객을 맡았다.



한 프랑스인 남자 승객은 항상 에어 프랑스만 타는데 이번에 카타르 항공을 처음 타 본다며 미소를 지었다. 샴페인 바틀을 가져가 따르는데 서비스가 완전히 다르다며 좌석도 편하다고 카타르항공 정말 좋다며 칭찬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여행을 갔다 만난 여자친구와 여행으로 발리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했다. 60대인데도 40대로 보일 정도로 정정했다. 과일과 야채 위주로 소식을 하고 설탕을 되도록 먹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번에 만난 정정한 60대의 여성분은 자기 전에 메이크업은 꼭 지우고 자며 요가와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는 삶이 자신을 젊게 유지했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더 가꾸고 건강하게 여행 다니는 승객들을 볼 때마가 감명 깊다.



한 싱가포리안 커플은 싱가포르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중간 좌석이라 내 존에는 싱가포리안 여성분이 있었다. 아직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아 모든 게 느렸다. 옆에 남편은 이미 마시고 먹고 있는데 나는 뭘 하느라 바쁜지 그래도 하나하나 차분히 서빙하며 매번 그녀와 눈을 마주쳤는데 마치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주곤 했다. 잠을 잔다고 매트리스 요청도 했는데 매트리스가 어디 있는지도 깔아 본 적도 없어서 다른 크루의 도움을 받아 설치를 했다. 랜딩을 하고 그녀는 내 이름을 기억하며 땡큐 지현 이렇게 몇 번을 외쳤다. 어떻게 내 이름까지 기억을 하는지 감동이었다. 



그녀는 내가 일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며 이름의 정확한 스펠링을 알고 싶다고 네임 베지를 봤다. 정확한 스펠링까지 외웠다며 회사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낼 거라며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단순히 일하는 것이 아닌 삶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정말 나에게 진심의 조언을 해 주었다. 아마 내가 어린 여동생으로 보였던 것 같다. 힘든 파리 비행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잊히고 내가 어떠한 마음으로 승객을 대하고 어떠한 가치를 갖고 이 일에 임하는지 다시 한번 리마인드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어떤 승객은 독일 리즐링으로 시작하며 점심과 함께는 샤도네를 마셨다. 이렇게 와인을 많이 서빙 한 비행은 처음이었다. 아직 많이 비행을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덕분에 와인 서빙에 조금 익숙해지고 승객들에게 오히려 와인의 향과 맛에 코멘트를 받아 배우게 되었다. 라마단 기간에 F1 프로모션 트레이닝을 받아 테스팅을 하지 못한 와인 트레이닝이 다음 주에 잡혔는데 기대된다. 다 마셔봐야지.



세 번째 솔로 비행으로 인도의 수도인 델리 턴을 다녀왔고 내일모레는 조단의 수도인 암만 턴비행 다음 주에는 독일 뮌헨, 캐나다 몬트리올, 벨기에 브뤼셀로 오월의 비행 스케줄을 마무리한다.



아무리 느려도 올바르게, 당황스러워도 차분하게 천천히 익숙해져 갈 것이다. 그리고 잃지 않아야 할 것, 항상 승객의 영혼을 바라보고 미소 지을 것.




Kindness is a languague a blind can see.




Slowly and steadily, let your kindness shines th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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