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행을 시작한 곳, 그만두고 싶었던 곳을 상기할 수 있었던 기회
Airpot Stand-by
아침 6시 반부터 시작된
네 시간의 공항 스탠바이,
아침 7시 전화가 울렸다. 크루 컨트롤이었다. 공항 스탠바이 중이지? 응
리포팅 8시 40분이야. 뜨악 안 불릴 줄 알고 친구와 점심 약속까지 해놨었는데. 친구에게 unfortunally 비행에 불렸다고 업데이트를 해주고 나중을 기약했다.
체크인을 하는데 비즈니스 크루 멤버 리스트에 내 이름이 없고 이코노미 크루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때 깨달았다. 이코노미 크루로 비행에 불렸다는 것을. 비통하다. 소용돌이치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가라앉히고 브리핑룸 25로 향하였다. 예전에 비행을 함께 한 반가운 얼굴들의 크루들도 있었다.
처음으로 브리핑 체커가 함께했다.(체커는 원래 비행도 함께하는데 이번엔 브리핑만 모니터 하는 체커였다.) 중간에 그루밍 오피서가 들어와 그루밍 체크도 하고 기장님 부기장님이 들어와 조인트 브리핑도 마쳤다. 평소보다 길게 느껴진 브리핑을 마치고 비행기로 향하는 크루 버스로 향하였다.
비행기로 올라가는 스탭 레더(계단 사다리)에 노란 에어컨 호스가 같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 호스 때문에 계단을 올라가 유니폼 치마가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폴짝 넘어 비행기로 들어왔다. 사우나 같은 비행기 안에서 비행 준비를 했다. 승객들로 가득 찬 버스가 밑에 도착했는데 비행기가 너무 뜨거워 탑승을 지연했다. 그 안에 든 우리는 정말 쪄진 것 같았다. 난 칠러(비행기 갤리 냉장고)가 켜진 카트를 열어 찬 바람을 찾아 얼굴을 들이 밀었고 어떤 크루는 아이스크림을 얼리는 아이스팩을 타월에 감싸 등에 넣었다. 이마에 주르르 땀이 흘렀고 볼은 볼터치도 필요가 없게 붉었다. 속옷까지 땀으로 완전히 젖은 채 탑승을 시작했다. 같이 반대편 크루와는 살기 위해 주스 한 잔씩을 마셨다.
Took off to Entebbe
엔테베로 테이크 오프,
기내는 한자리도 빈자리 없이 꽉 찼다. 9시 50분 출발 예정 비행이 약 한 시간 딜레이 후 출발을 했다. 출발도 전에 기진맥진 모든 크루들 다 더위에 쓰러질 뻔했다. 이륙을 하고는 강한 에어컨 바람에 추웠다. 요즘 익스트림하게 더웠다 추웠다 큰 온도 차이에서 살아남는 중이다.
비즈니스 클래스에는 점프싯 앞에 바로 승객이 없다. 하지만 이코노미 내 점프싯 바로 앞에는 승객들이 쫘악 있어서 어쩌다 보니 모두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바로 앞에 앉은 네팔 아저씨는 나한테 한국어로 친구~ 라며 불렀다. 한국에 15년 살았었고 지금 우간다에 7년째 사는데 어머니가 위독하셔 마지막으로 보러 간다고 했다. 얘기를 듣는데 마음이 아파 쏘리.. 유감의 말 밖에 전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사진도 보여주셨다. 비행 중 부모님이 위독해서 보러 간다는 승객들을 가끔 마주친다. 마음이 찡하지만 당신의 방문을 어머니가 좋아하실 거예요 하고 말해주곤 한다.
그 옆 중간 자리에 앉은 가족은 국제 커플이었다. 우간다 아내와 네덜란드 남편 그리고 아들 세 명이었다(1살, 4살, 7살). 1살 아이는 엄마와 안겨 있고 7살 아이는 꽤 스스로 잘 챙겨 난 4살 아이를 가장 보살폈다. 부부는 케리비안에서 일할 때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비행을 하며 국제커플을 많이 보는데 항상 깨닫는 건 사랑에 국적의 벽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커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국제 커플이 아이가 있는데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더 다정해 보이는 장면을 많이 목격해 왔다.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네팔로 무사히 가세요. 네덜란드로 무사히 가세요. 안전한 여정 되세요. 잘 가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Landed to Entebbe safely
엔테베 무사 랜딩,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이륙 전부터 하고 싶었던 샤워를 시원하게 했다. 그리고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호숫가를 거닐었다. 달러를 갖고 리셉션으로 가 우간다 현지 돈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밖으로 나가 롤렉스(시계 아니고 우간다 현지 음식)를 사 먹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달러 끝이 찢어졌다며 바꾸지 못했다. 가까운 atm은 택시로 10분 거리에 있고.. 그냥 호텔 레스토랑을 크루들과 갔다. 록렉스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아쉬운 뒷걸음을 했다. 그런데 리셉션에 있던 스태프가 자신의 사비로 밖에서 록렉스를 사다 나에게 갖다주었다. 이렇게 감동일 수가.. 우간단 웨이터는 록렉스를 보고는 열정적으로 설명을 30분 넘게 해 줬는데 결국 요리법까지 적어다 줬다. 우간다에서 록렉스를 못 만드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말들을 보러 갔다. 어린 말들이 많이 커 있었고 세 마리가 같이 있던 덩키(donkey)는 한 마리가 분리되어 있었다. 다른 덩키들을 물어서 분리했다고 한다. 내가 승마 배울 때 탔던 샤넬은 헤어스타일이 땋은 머리로 바뀌어 있었다. 다음에 올 때는 사과를 가져와야지 하며 조식을 먹으러 향했다. 신선한 과일과 칠리를 넣어 매운 오믈렛을 맛있게 먹고 아프리칸 스파이스 밀크티도 마셨다. 지난 엔테베 비행에 픽업 직전까지 무리해서 승마를 해 더위를 먹은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비도 오고 방에서 쉬다 돌아갈 준비를 했다.
Flying back to Qatar
카타르로 돌아가는 비행,
R3 포지션이었다. 이코노미 중간 오른쪽 존 담당.
어떤 승객이 폰 충전을 하고 있길래 충전이 되냐고 물어봤다. A330 기종은 와이파이나 충전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되는 것 같아 보였기에 그냥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옆에 앉은 분이 충전된데요 하고 한국어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바로 젊은 한국인 여성분이었다. 아니 한국인이셨어요! 반가워요! 하고 인사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외항사에서 이렇게 일하고 계신 거 멋있다고 스트레스 안 받고 즐기면서 일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는 인식하기 어려워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말해 준 승객에게 감사했다. 혼자 아프리카를 이 주 동안 여행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더 멋있다. 승무원이어도 혼자 여행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경영학 박사 논문을 쓰고 계셨는데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몰래 간식을 가져다줬다. 남은 유럽 여행도 충만한 시간 보내고 한국에 돌아가서 논문도 졸업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란다.
바(음료 서비스), 런치/디너(저녁 서비스), 무비 트릿(간식 서비스) 5시간 비행에 이코노미에는 이렇게 세 서비스가 있었다. 이코노미 주스에는 오렌지, 사과, 망고, 크랜베리, 토마토 다섯 가지 주스들이 있는데 쓴 순서대로 인기 있다. 그래서 첫 세 개의 주스는 업리프트(현지에서 추가로 받는 것)가 되었는데 주스 따기가 너무 어렵게 되어있었다. 첫 줄부터 서비스를 시작하는데 너무 안 따져서 승객한테 부탁했는데 승객이 땄는데 따개만 따버려 구멍은 나지 않았다. 마치 캔 음료에서 구멍은 안 나고 캔 따개만 날아간 것처럼. 커틀러리의 칼로 구멍을 내서까지 열심히 따주셨다. 반대편에 승객도 다른 주스를 따주셨다. 웨갈레 뇨~ 하고 계속 외쳤더니 주변 사람들이 다 웃었다. 우간다 현지어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밀 서비스를 하는 중간에 맥주가 떨어져 바로 뒤 R2 서비스를 하고 있는 카트로 가서 맥주 세 캔을 전달해 달라고 했다. 서비스를 하다 다시 받으러 가 겉에 비닐까지 통째로 넣어진 맥주들을 받아서 안았는데 이럴 수가. 그 비닐 밑에 밀 하나 터진 게 묻어서 내 다이닝 재킷 앞에 다 묻어버렸다. 이렇게 다이닝 재킷이 더러워진 건 처음이었다. 이대로 서비스도 할 수 없었다. 순간 다이닝 재킷을 내려다보고 충격을 받아 헉하고 몇 초간 얼었는데 바로 앞에 승객이 자신의 커틀러리 롤 냅킨을 바로 냅다 건네주어 닦았다. 냅킨을 닦으라고 건네어준 승객의 이름도 국적도 모르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화장실로 잠깐 들어가 더러워진 다이닝 재킷을 닦고 서비스를 이어나갔다.
드디어 서비스가 끝나고 에프트 갤리(비행기 제일 뒷 갤리)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승객들이 와서 좀 서있겠다고 했다. 편하게 스트레칭하세요. 애프트 갤리 요가원이 오픈되었다. 간단한 스트레칭 동작들을 승객들에게 알려주며 함께 비행으로 뭉친 몸을 풀었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이렇게 기내에서 써먹고 있다. 이코노미 크루였을 때 난 자주 애프트갤리를 요가원으로 댄스 플로어로 만들어 승객들을 크루들을 재밌게 움직였다.
Long beathe in
deep breathe out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깊게 숨을 내쉬자,
내 앞의 40명 약 8줄의 이코노미 자리를 서빙할 카트 앞에 서서 숨이 턱 막히곤 했다. 이 많은 승객들을 언제 다 서빙하지? 클리어런스를 할 때는 트레이가 바닥으로 엎어져서 엉망진창이었던 적도 허다하다. 그런데 한 승객 한 승객에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줄이고 서비스도 끝나있다.
내가 스트러글(struggle) 할 때마다 주변 승객들은 항상 나를 따뜻하게 도와줬다. 한 승객 한 승객 바라보았다. 중간에 이야기도 하며 웃으며. 그러다 보면 마지막 줄이었고 서비스는 끝났다. 이렇게 매일 하는 비행이 힘든데도 즐겁다. 아 내가 지금까지 비행을 하는 이유이구나.
완벽하지 않은 서비스를 주는데도 그 진심을 이해하는 승객들이 있어서이다. 한 승객 한 승객의 삶의 스토리들이 나를 마음을 움직인다. 이 모든 세상의 이야기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다 나의 날개에 속삭인다.
삶은 정말 짧아
지금 여기 마음껏 너의 삶을 살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