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비행도 같은 레이오버도 참 다르다 (Ft. PRG A320 )
승무원이 되면 멀리 있는 오랜 친구와 다시 만날 수 있다.
7년 전, 호주에서 한 가닥의 브레이드를 단 옴브레 머리에 매주 해변을 가 태닝 된 태양빛을 머금은 피부에 한국인 같아 보이지 않는 한국인이 한국에 돌아왔다. 춤에 열정이 가득한 그녀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에서 하는 댄스 오디션에 참가해 통과했다. 전 세계에서 온 댄서들과 서울에서 밤샘 댄스 연습을 하며 프로모션 비디오 촬영을 했다. 그녀는 지금 승무원이 되어 그 멤버 중 친하게 지냈던 체코 친구를 보기 위해 프라하 비행을 요청했다. 오월 스케줄이 나왔을 때 요청했던 프라하 비행이 두 개나 나왔다!
바로 친구에게 알렸다. 이날 이날 비행이 있다고. 첫 번째로 가는 프라하 비행에는 친구가 파리에 있을 거라고 해 두 번째 프라하 비행에 만나기로 했다.
첫 번째 프라하 비행
이 전 비행이 카사블랑카 비행이었는데 메디컬 케이스에 승객들끼리 싸우기 시작해 시큐리티까지 와서 오프로드 시키고 비행이 4시간 지연됐었다. 돌아오는 비행에서도 픽업 시간, 도착시간 다 지연되었다. 카사블랑카 비행 후 보통의 비행보다 더 피로함을 느끼고 바로 다음 있는 프라하 비행에 씩을 내야 하나 심히 고민했다. 그래, 친구도 없는데 레이오버 가서 쉬고 장만 봐 오자. 그렇게 편안한 잠옷과 캐주얼한 옷만 짐을 싸 갔다.
캡틴은 조인트 브리핑 때 자신의 옆에 있는 크루를 대신 소개하라고 하였다. 비행에는 애비니쇼 태국인 한 명과, 나와 동갑인 한국인 크루, 활발한 영국인 크루, 엄마 같은 인도인 크루 그리고 엄마새가 되고 처음 비행한다는 남자 로마니안 엄마새 이렇게 풀 컴플리먼트에 라이트 로드의 비행이었다. 어떻게 손발이 척척 맞고 여유롭게 5 star 가 아닌 7 star 서비스까지 할 수 있었다. 리퀘스트인 무비 스낵도 한 명 한 명 챙겨주었다.
그리고 크루들끼리 레이오버에서 다 같이 나가자는 것이었다. 특히 영국인 크루 A는 나갈 계획이 없었던 나에게 같이 꼭 나가자며 애교를 부리고 인도인 크루 M은 내가 나가서 입을 예쁜 옷도 안 가져왔다니 자신의 드레스까지 빌려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하고 내 옷을 캐주얼하게 입었다. 랜딩 후 도착해서 분위기 좋은 우리를 보고는 부기장님이 Can I join with you guys? 하며 같이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Of course. 난 More is merrier를 외쳤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로비에서 한 시간 후에 만나기로 했다. 온 크루가 만나 두 대의 우바를 불러 시내로 나갔다. 그냥 파란 하늘과 푸르른 나무들 아름다운 동네만 봐도 이 전에 힘들었던 비행으로 인한 내 마음이 완치된 느낌이었다. 햇빛 아래 우바 안에서 창밖의 경치만 바라봐도 행복했다.
도착해서 다 함께 거리를 거느리며 랜딩 디저트로 체코에서 유명한 Trdlo 뜨르들로(굴뚝 빵)를 먹었다. 갓 구워진 뜨르들로에 초콜릿을 찍어 피스타치오를 바르고 조린 사과를 넣고 아이스크림으로 채워진다. 다들 입가에 초콜릿이 묻었는지도 모른 채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찰스 브리지로 향했다. 아름다운 다리에서 다들 인생 샷도 건진 후 쇼핑도 하고 저녁을 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유로로 낼 수는 있지만 모두에게 충분한 유로가 없었다. 맥주만 마시고 저녁은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맥주는 부기장님이 beer is on me를 외치며 쏘셨다. 우린 체코 음식점을 가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난 호텔로 돌아와 샤워 후 뻗었다. 카사블랑카의 피로가 풀리지도 않은 채 프라하를 돌아다녀 크루들끼리 애프터 파티를 할 기력조차 없었다. Rain check!
다음 날 아침에 장을 보고 도하로 비행 준비를 하였다. 돌아오는 길 굉장한 라이트 로드였다. 한국인 크루와 난 모든 크루를 위해 맛있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만들어 다 같이 마시고 비행준비를 시작했다. A는 자신이 지금까지 마신 커피 중에 최고로 맛있다며 난리가 났다. 해피하게 시작해 해피하게 서비스를 끝내고 번갈아가며 콕핏(cockpit)에 가 경치를 봤다. 밤에는 도시들이 지구 위의 별처럼 빛난다.
승객들 중에는 한국인 신혼여행 커플 승객도 있었다. 한국인 승객만 보면 왜 더 반가운지. 아내분은 10주 임신이라고 해 최대한 신경을 많이 써 드리고 싶었다. 중간중간에 계속 체크를 하고 물과 간식을 요청하지 않아도 드렸다. 비즈니스 클래스로 가 디저트와 레몬 민트 드링크를 준비하고 편지에 캡틴을 포함한 온 크루에게 부탁해 축하 한마디씩을 적었다.
난 한국어로 적었다.
"프라하 비행에서 만나게 되어 축복이에요. 결혼, 신혼여행 그리고 10개월 임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이번 여행 추억 평생 간직하며 사랑으로 영원히 함께하길 바라요"
나중에 보니 10주인데 10개월로 잘못 적었다..
디저트와 편지를 서프라이즈로 축복해 드렸다. "이렇게까지 축복을 해 주시다니 앞으로 꼭 더 행복하게 살아야겠어요." 하고 남편분이 말했다.
아, 이 두 분의 만남부터 결혼,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축복할 만한 일인지 다시 일깨워 드린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가끔 잊고 산다. 지금 내 옆의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 삶의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크루들이 이렇게까지 편지까지 쓰고 축복해 준 적은 처음이라고 축복해 준 우리가 더 기뻐했다. 나누는 기쁨이 더 컸다.
M은 와츠앱 그룹을 만들겠다며 온 크루의 번호를 적었다. 랜딩 후 우리 모두 지금까지 최고의 비행이었다며 마치 프라하에 일주일 정도의 홀리데이를 다녀온 기분이라며 아쉽지만 작별 인사를 했다. 캡틴부터 온 크루가 지금까지도 와츠앱 그룹으로 연락을 하고 있다. 한 크루와는 오프가 맞아 저녁도 같이 먹었고 다 같이 오프를 맞추어 또 만나기로 하였다. 매 비행이 이렇기만 하면 좋으련만 이런 비행은 굉장히 드물고 스페셜하다.
두 번째 프라하 비행
이 번 비행에는 체코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체코를 가는 길.. 40명의 인도인 단체 여행 그룹이 탔다. 비행기가 관광버스 느낌으로 변했다. 탑승하자마자 싸온 인도 음식들을 먹으며 자리를 옮기고 일어서서 서로 신나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보딩 중에 이미 마실 것들 요청도 엄청나게 하였다. 후... 인도 비행인가요. 분명 유럽 가는 길인데. 인도 아주머니는 나에게 Hot water 요청을 하였고 난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먹고 있던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코리안다(coriander, 고수)와 그린칠리로 만들었다는 차트니(chutney, 인도식 소스)를 난에 발라 하나를 싸 나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강한 향이지만 정신과 입맛이 확 돌고 맛있었다. 맛있다고 하니 하나 더 싸준다고 하지만 괜찮다고 하였다. 이렇게 시끄럽고 디맨딩한 인도 승객들에 이너피스가 유지 안 될 뻔했다가도 아주머니의 차트니 손맛에 풀어졌다.
이머전시 도어 근처에 앉은 그룹의 멤버 중 한 인도 아저씨는 최고의 서비스를 해주어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40명이 단체로 인도에서 와 프라하, 비엔나, 부다페스트를 이 주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 하지 칭찬해 준 그 아저씨에게 간식을 하나 더 갖다주었다. 아주 좋아하시고 랜딩 후에도 저 멀리서 나를 보며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단체로 여행 가는 그 설렘과 흥분이 다 전해졌다.
Enjoy your travel!
난 체코에 랜딩 해 샤워를 하고 침대에 녹아내렸다. 한 시간만 누워있다 준비하고 친구를 만나로 나갔다. 친구가 피곤하면 말하라고 언제든 넌 호텔로 돌아가서 쉬어도 된다고 이해한다고 하였다. 내가 그렇게 피곤해 보였나. 친구를 만나 프라하의 핫플에 가서 저녁과 칵테일 한잔하고 강가로 가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집을 돌아왔다. 댄서 친구를 만나면 나의 이너 차일드가 살아나 그냥 신나고 춤이 춰진다. 까를교를 배경으로 간단히 인스타 릴스 댄스 비디오를 찍었다.
그다음 날은 조식을 먹고 장을 보고 도하로 돌아올 비행을 준비했다. 돌아오는 비행에는 한국 분 몇 분이 있어서 인사를 했는데 한 분은 크루였다. 4일 연속 오프라 체코를 혼자 여행했다고 했다. 다른 한국 여성 한 분도 직원인가 했는데 체코에서 무용교육 전공을 하는 대학생이라고 했다. 여름 방학으로 삼 개월 동안 한국에 돌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승무원이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들어가기 엄청 힘들다고 들었다며 다시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 주셨다. 그리고 나중에 체코에 오면 무용 관련 공연을 보여주겠다고 하시고 나에게 선물로 쪽지와 쓱 넣으라며 터키에서 샀다는 비누를 주셨다. 명함은 많이 받아 봤어도 비누는 처음이다.
또 다른 한국 분은 중년의 아주머니셨다. 체코 분과 결혼하셔 남편과 아들 한 명과 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27년 전에 선교사로 체코로 가고 25년 전에 결혼해 대학생 아들 한 명이 있다. 아들은 5살 때 한 번 한국을 갔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한다. 하지만 첫 번째는 어린아이였기에 기억이 없어 거의 처음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직 한국은 도착 안 했지만 엄마의 고향으로 가는 길 친절한 한국인 승무원을 시작으로 좋은 기분을 느끼길 바랬다. 나의 부모님이 다른 국적의 사람이라면. 앞으로 내가 외국인과 결혼해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분일까 상상이 안 간다.
모든 비행에서는 한 명 한 명 개성 있고 매력적인 크루들이 함께한다. 매 비행에서 크루들에게 많이 배우고 영감을 얻는다. 예쁜 얼굴 뒤에 숨겨진 삶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끔 놀랍기도 마음이 아프기도 한다. 승객들 또한 그들의 여정과 삶을 보며 큰 영감을 느낀다.
기내에서 바쁘다가도 순간 창 밖의 절경을 우연히 보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아 지금 내가 구름 위에 있구나.
비행을 하며 나만의 만트라를 마음속으로 많이 외친다. 영어를 하지 못해 답답한 노인의 승객이 있다면 그 승객을 돌아가신 할아버지라고 생각하자고 속으로 생각한다. 신나게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는 승객을 보면 얼마나 설레고 기쁠까 그 여행하는 마음을 더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다른 승객에 피해가 가지 않는지만 살핀다.
같은 목적지를 가는 비행이어도 크루에 따라, 승객에 따라 나의 상태에 따라 다른 비행이 될 수 있다. 이 마음가짐만은 잃지 말자. 지금 내가 있는 여기, 이 소중한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한 친절함을 나누고 공감하고 다 같이 행복할 수 있길. 행복한 승무원이 행복한 비행을 만든다.
Happy cabin crew makes the flight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