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라고 소문난 상사가 있는 비행을 갔다 왔다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원수가 누군가에게는 은인일 수도 있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서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비행에서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를 피부로 느꼈다.
비행을 가기 전 crew onboard 섹션에서 같이 비행하는 크루 리스트를 볼 수 있다. 소위 크루 사이에 조심해야 하는 상사들 이름이 적힌 블랙리스트가 있다.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비행을 하던 중 이번 비행 슈퍼바이저를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다들 유명한 블랙리스트라며 콜씩*을 내거나 조심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리고 비행 중 최대한 멀리하라고 신신당부를 받았다.
*콜씩(Call sick) : 아프다고 병가 신청을 하고 비행이 취소되는 것이다.
잠깐의 생각엔 무서워 콜씩을 내야 하나 했다가도 그도 잠시 아니 뭐 그런 것 같고 비행을 콜씩 내나 게다가 내가 요청한 비행이고 레이오버에는 친구가 나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블랙리스트 상사라는 것을 알고 조금의 걱정은 있었지만 큰 두려움은 없었다. 그녀도 같은 사람이고 나에게 불공평하거나 무례한 말을 한다 해도 내가 잘못한 점이 있을 것이고 그걸 표현하는 방법은 그녀 스스로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서운 소문을 뒤로하고 비행 준비에 집중했다. 사실 혹시 몰라 평소보다 더 공부를 했다. 비행하는 기종과 서비스 그리고 브리핑 질문 등을 공부했다.
그리고 다가온 픽업 타임에 크루 버스를 타고 도착한 브리핑 룸.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종이를 한 장 건네며 내 포지션이 겔리라는 것이다. 뜨악 상상도 못 했다. 가는 길에 겔리라니 다른 나보다 경험이 많은 크루들도 있는데 가는 길 갤리를 담당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압박을 주는 것인가 싶었다. 브리핑에서 내가 사실 두 번 갤리를 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길 라잇 로드일 때 모두의 도움을 받고 해 봐서 가는 길은 처음이니 내가 완벽하지 않고 느려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다른 크루들은 도와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갤리 : 이 전에는 6개월 일 한 후로 갤리 담당 포지션을 주었다고 하지만 요즘엔 빠르게 트레이닝을 시키고 한두 달 밖에 되지 않은 주니어에게도 시키고 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브리핑 질문을 받는다. 그 무섭다고 소문난 상사가 나에게 한 질문은 아마 지금까지 비행하면서 받은 질문 중 가장 쉬운 질문이었다. 아니 열심히 공부해왔는데 이렇게 쉬운 사람의 평균 체온은 몇 도인가요?를 물어봐 주시다니. 속으로 휴 감사합니다 하고 생각했다. 가끔 브리핑 질문은 긴장하거나 당황해서 알 던 것도 답을 버벅거릴 때가 있지만 이번엔 가장 쉬웠다.
하지만 포지션은 부담 그 자체였다. 사실 갤리가 언젠가는 해야 하는 포지션이기에 내가 언제든 겔리가 될 수도 있기는 했다. 그냥 시킬 수도 있지만 세세하게 스페셜 밀을 존을 구분해서 다 적어주었다. 난 적어주신 걸 봐도 아직 헷갈리는 단계이지만 그 종이가 없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일하기가 수월하다.
그리고 탑승한 비행기는 내가 처음 비행을 해보는 기종에다 가는 길에 갤리도 처음이라 갤리에 들어간 순간부터 당황스럽기는 했다. 카트들을 열어봐도 돌아서면 무슨 카트였는지 기억이 안 나고 가져간 스티커는 온도 차이로 생긴 물기 때문에 붙지도 않았다. 생소하게 생긴 오븐들과 커피 머신부터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녀가 다가와해야 할 일들이 적힌 종이를 또 건네준다. 그리고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이코노미 갤리에 필요한 물품들도 가져다주었다. 나는 속으로는 멘붕이었다가도 다시 차분히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의 일들을 하고 꼼꼼하게 하려 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비행도 항상 착륙을 한다.
무사히 도착을 하자마자 아침에 랜딩을 해 나처럼 배고파 하는 크루들과 함께 조식을 먹으러 가서 호텔 조식을 즐겼다. 레이오버 동안에도 8년 전 미국에서 만난 친구 4년 전 아일랜드에서 만난 친구들과 재회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는 승객의 수가 적은 라이트 로드의 비행이었다. 서비스를 끝내고 밥을 먹고 나서 그 상사가 나에게 무심하게 툭 종이를 건네고 다음에 갤리에서 일할 때 해야 할 일의 순서와 팁들을 설명해 주셨다. 지금까지 비행에서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정말 숨은 꿀팁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앞으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얘기를 하는 데에도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해 주셨다. 내가 인도 플렛 메이트의 소음 때문에 숙소를 옮겨야겠다고 했더니 친구를 데려오는 건 규정상 허용되어 있으니 나중에 회사에 말할 때에는 그 소음으로 인해 쉬지 못하고 비행을 가서 일에 지장이 생긴다고 잘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처음 입사해 이코노미 크루로 일을 했을 때가 생생하게 생각난다며 그때 상사가 뭐라고 하면 기분이 나쁘기도 했는데 사실은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닌 걸 알면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착륙 시간이 다가오고 마자막까지 난 모자를 찾으며 덤벙거렸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도 그 상사가 나를 귀엽게 바라보고 도와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외에도 일을 하다 피곤해 입에 뭐가 나면 비타민 C를 챙겨 먹고 비타민 B12도 좋다고 그리고 여기서 오래 일하며 살고 싶다면 처음 옮길 때는 힘들더라도 좋은 숙소로 옮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 주셨다.
착륙을 하고 이번 비행에서 많이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짐을 찾는 곳에서 만났을 때 또 엄청난 조언들을 해 주셨다. 비행을 하며 힘든 일이 있거나 안 좋은 경험을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는 정말 작은 것인데 친구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줄 알았으나 그 일을 더 기억하게 되고 더 불리는 격이 된다고 했다. 친구들을 만나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그냥 작은 상태로 남기고 사라지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승객에 관해서도 한 명의 무례한 승객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좋은 백 명의 승객들이 있지 않냐며 긍정적이고 좋은 면이 훨씬 많으니 그것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앞으로 잘해나갈 것 같다고 비행 중에 얘기를 했던 그녀의 말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은 소문으로 절대 판단해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렇게 조심해야 한다고 하던 상사가 사실 나에게는 선생님 같기도 언니 같기도 한 분이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많은 경험들에서 나온 진실한 조언임을 느꼈다.
상대방도 그렇지만 나의 태도도 중요하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상대를 대하고 모든 사람에게 편견을 갖지 않고 평등하게 따스한 시선으로 진실되게 다가가야겠다고 명심했다. 소문으로 누군가를 절대 판단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아무리 악마라는 사람도 내가 어떻게 대하고 마음먹느냐에 따라 나에겐 천사가 될 수가 있다.
오늘의 비행은 다 내 마음에 달려있다.
Today’s flight is all upon your mind.
Do not judge others. Be your own judge and you will be truly happy. If you will try to judge others, you are likely to burn your fingers.
-Mahatma Gand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