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누군가의 엉덩이를 닦아줬을 때
경찰관들이 만나는 주요 고객들
경찰서에서 사복을 입고 근무해서 매일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그 날은 Zara에서 새로 산 스웨이드 재킷을 입고 출근길에 나섰다.
새 옷을 입어서 그랬나? 그리 무겁지 않은 출근길이었다.
출근해서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기도 전에 형사님이 나를 급하게 찾는다고 했다. 여자 피의자가 난리치고 있는데 좀 도와줄 수 있겠냐는 거였다. 타 부서인 형사님이지만 같이 근무했었고 선배들도 도와주고 오라고 했다. 여직원 한 명과 급하게 형사팀으로 갔다.
형사팀에 들어가자마자 문제의 피의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사무실 바닥에 거의 눕다시피 한 중년 여성은 술에 취해 바지를 벗으려 하고 있었고 이미 상의는 벗어 속옷 사이로 가슴이 다 드러났다.
남자 형사들은 손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옷부터 입혀야 했다. 바닥에 누운 피의자는 팔다리를 사방으로 차면서 완강하게 저항했다. 그 와중에 피의자의 손가락에 잔뜩 묻은 인주가 보였다.
설마 설마 했지만 옷을 입히고 의자에 앉게 하기 위해서
신체를 밀착할 수밖에 없었고 나의 새로 산 스웨이드 재킷은 인주로 벌겋게 물들었다. 왜 그렇게 힘은 센지 술 취한 사람들은 참 힘이 세다. 결국 벗은 바지와 윗 옷을 다 입히고 의자에 앉게 하는 데 성공했고 형사팀에서는 잽싸게 수갑을 채웠다.
이제 할 일은 다 끝났구나 안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는 피의자ᆢ
안 보내 줄 수 없다. 수갑을 풀고 같이 화장실에 갔다.
코 대신 입으로 숨 쉬며 용변을 다 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10분쯤 지났을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팬티와 바지를 다리 사이에 대충 걸친 채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오 마이갓!
엉덩이에 똥이 붙어 있는 채로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순간 이거 현실이야? 아득해졌지만 언른 마음을 다 잡았다.
나보다 현장 경험이 많았던 A는 언제 챙겼는지 주머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끼고 쿨하게 나한테도 건네주었다. 한 명은 비틀거리는 피의자의 몸을 잡고 한 명은 엉덩이를 닦았다. 더럽기보다는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안전하게 형사팀으로 인계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퇴근 후 자세히 본 새 스웨이드 재킷은 벌건 인주 자국이 가득해서 이 상태로는 입을 수 없었다. 세탁이 가능한지 알아보니 얼룩빼기 전문 세탁소에서는 지워 줄 수 있다고 했다.
비용은 3만 원! 79,900원짜리 재킷인데 세탁료가 절반이라니 새 옷인데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눈물을 머금고 세탁했다.
일주일 뒤 말끔해진 그 재킷을 입고 출근했는데 또 경찰서에서 옷을 벗고 난동을 부리는 여성피의자가 있었다. 설마 날 부르지 않겠지? 했는데 그날도 형사팀 협조 요청이 왔다. 이번엔 검은 펜을 들고 난리를 치는 피의자였다.
난 어쩌자고 또 그 스웨이드 재킷을 벗지 않고 달려간 것일까? 보급으로 나온 바람막이나 패딩을 입고 일을 할 때도 있는데 그날 따라 그 옷이 입고 싶더라니
바보 같은 나를 탓해봤자 어쩔 수 없다.
검은 난이 가득한 그 재킷을 들고 세탁소를 또 찾았다. 사장님은 뭔 일을 하시다가 어쩌다가 이렇게 또 온 거냐며 물으셨다. 어디 가든 직업을 말하는 일은 없는데 그날은 왠지 말하고 싶었다. 사장님은 안 돼 보였는지 몇 천 원을 빼주셨다. 옷은 다시 말끔해졌고 그 덕분에 형사님은 도와줘서 고맙다며 나 포함 팀 전체를 고기와 술을 사주셨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나름 모범생으로 살았던 나로서는 처음엔 황당하고 생경했다. 그런 고객들을 만나면 현실감이 떨어져
언른 정신을 다시 붙든다.
7~8년전 일이고 이제는 이런 고객님들을 만나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현실감이 없고
심장이 내려앉지만 정신을 더 빨리 부여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도 내 고객이란 생각으로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