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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Sep 07. 2022

토란 이야기 2022

추석 이야기(2)


오랜 세월을 같이 한 부부들은 말이 줄어든다. 오래 함께 살면 눈빛만 보고도 이심전심으로 통한다던가. 이렇게 생각하면 긍정적이다. 그러면 부정적인 생각은? 서로 간에 관심도 별로 없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말이 없어지는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이런 부부도 있을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수십 년을 함께 살고도 끊임없이 할 이야기가 있는 부부처럼 나의 토란 사랑은 그런 것이다.(이 문장은 ‘참 혼자서도 잘 논다’는 질타를 각오하고 쓴 글이다.)


지난 해 이맘때도 여기 브런치에 토란 이야기를 썼다-‘토란의 계절, 가을’. 그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하도 많은 말을 털어놓아서 올해 새롭게 할 말이 없겠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다시 감히 말하건대, 나의 토란 사랑은 그렇게 과거완료형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늘 현재 진행형인 토란 사랑이 이제부터 펼쳐진다.


토란은 매년 추석을 앞둔 9월 초쯤 시장에 나온다. 급한 마음에 8월 말에 가본 적도 있는데, 아직 안 나왔다는 답만 들었다. 9월부터 두 달 남짓 재래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다가 11월 말에서 12월 초가 되면 시장에서 사라진다. 마트에는 추석 전 주에 반짝하고 나왔다가, 추석 다음 주만 돼도 사라진다. 나는 한동안 토란을 파는 재래시장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서울 망원시장에서 12월 중순까지 파는 걸 산 적이 있다. 그것이 토란의 기간한계선이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인터넷으로 사려고 생각을 바꿨다. 재래시장은 가게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어서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사려는 것이다. 인터넷을 뒤졌다.


있다, 곡성 토란. 곡성 토란의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지만 토란을 주문하는 것은 처음이라 걱정이 조금 되기도 했다. 자칫 잘못해서 토란 없이 추석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쓸 데 없는 걱정이다. 급하면 시장에 뛰어가서 사면된다.


인터넷으로 3kg을 주문했다. 평소 시장에서 사는 가격보다 조금 싸다. 배송비를 포함시켜도 싸다. 9월 2일에 일괄 배송 시작이라고 정보가 뜬 모양이다. 남의 말처럼 쓴 것은 아내가 주문하고, 배송 과정도 지켜보기 때문이다.


토란은 전형적인 계절 음식이다. 옛날 같으면 한여름에 토란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아마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앞의 글 ‘제철 과일’에서 말한 대로 시도 때도 없는 세상 아닌가.


몇 년 전 백화점 식당가 한식당에서 법을 먹었다. 초여름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놀랍게도 메뉴에 토란탕이 있는 것이 아닌가. 보통 콩국수나 팥죽을 메뉴에 넣어놓고 계절음식이라고 해놓은 것이 생각나 직원에게 물었다. 지금 이게 되느냐고. 주방에 물어보겠다고도 안 하고, 된다고 한다. 가격은 물론 조금 비쌌다. 갈비탕보다도 몇 천원 더 비쌌으니까.


잠시 후 작은 쟁반에 한 상이 차려져 나왔다. 토란국 한 그릇과 몇 가지 반찬이 함께. 특별히 맛있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내 생각은 ‘도대체 이 계절에 토란이 웬 일인가’ 하는 데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름 초입에 토란을 먹고 나서도 내 머릿속은 “이 계절에 웬 토란?”에 골몰했다.


토란은 예정보다 일찍 9월 첫날에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배송 직전에 땅에서 캐낸 것이 분명한 모양새였다. 아내는 이게 3kg이 맞느냐며 생각보다 양이 적은 것 같다고 무게를 달아보잔다. 주문한 공이 있으니, 무시할 수 없어서 달아보았다. 약 3.2kg은 된다.

인터넷으로 산 곡성 토란으로 올해 처음 만든 토란조림. 사진이 많이 아쉽지만... / 표지사진=pixabay


양이 꽤 돼서 한두번 만에 다 먹기엔 많다. 토란을 오래 보관하는 법을 찾아보았다. 2주 정도 단기 보관하는 것은 토란을 신문지로 싼 후 신문지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두라고 한다. 시키는 대로 일정량을 나눠서 보관했다.


다음 장기 보관. 오래 전 하나로마트에서 판매직원 중년 여성분이 알려준 방법과 같았다. 토란을 어느 정도 익게 삶은 후 껍질을 벗겨 냉동 보관하는 것이다. 백화점 식당가에서 토란국을 먹은 후에도 이 방법을 생각하기는 했었다. 방법을 알았으니 이제 엑셀을 밟아서 진행하면 될 텐데, 나는 여기서 망설이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고민은 한참 해놓고 결론은 다르게 내렸다.


마치 현자라도 된 것처럼 당연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렇게 까지 할 일이 아니다. 제철에 먹는 음식 맛이라는 것도 있다. 기다리는 즐거움도 있고. 두세 달 열심히 먹으면 된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참 한가롭다고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토란 타령을 하고 있으니.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갖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하는 세태, 그것도 시간을 다퉈가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 ‘나는 손에 쥘 수 있는 만큼만 내 것으로 하겠다.’


배부른 자의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토란 3kg이 안겨주는 안정감. 아니다, 토란조림을 한번 해먹었으니까 3kg이 채 안 되겠다.



신데렐로 만큼 토란을 사랑하는 분들을 위해 지난 해 본인이 쓴 졸고 ‘토란의 계절, 가을’을 링크합니다. 이러다가 토란 홍보대사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https://brunch.co.kr/@cinderello/71


여러분 모두 기쁜 한가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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