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게 가을은 생을 관조하게 하는 계절인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조락의 계절이라고 하는 작가도 있다. 그 연유와 출처도 알 수 없지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누군가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감정을 묻는다면, 나에게 ‘가을은 토란(土卵)의 계절’이다.
얼마 전, 새벽녘에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오늘 같은 가을날을 기다렸다. 세상에 사람이 그렇게 단순할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나, 여기 그런 사람도 있다. 아무 때나 딸기도 먹을 수 있고, 여름이 끝난 지금 몇 만원 주면 수박도 먹을 수 있지만 토란은 여전히 가을이 되어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계절을 타는 먹을거리도 한둘 쯤 있어야 나이든 사람들이 ‘나 때는 말이야...’하며 이야기의 허두(虛頭)를 꺼낼 수 있지 않겠는가.
열흘 전 쯤 두 친구와 함께 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토란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 시작의 전후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시작한 듯하다. 토란은 중부 지방 음식이라는 생각에 이야깃거리가 된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나는 서울 사람이지만, 두 친구는 충청도 사람이었다. 한 명은 토란 특유의 맛을 알고 좋아한다고 했지만, 다른 한 명은 의외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수십년에 걸쳐 관찰한 바에 따르면 토란은 그런 음식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 토란...”하며 칭찬을 늘어놓는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안 먹어봤어” 혹은 “몰라”로 일축하거나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의아해 하는 불가해한 음식.
설명하기 매우 힘들지만, 토란은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느냐’는 그 맛에 먹는 음식이다. 요즘 대세라는 매운 음식처럼 자극적이지도 않고, 특유의 향도 없으며, 특별히 씹는 맛도 없는 토란. 관종이라는 요즘 단어와는 정반대로, 이목을 끌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음식. 굳이 특색을 들자면 멋모르고 맨 손으로 토란 껍질을 벗기다가는 손이 가려워 혼나게 된다는 것 정도일까.
토란과 비슷한 식품을 꼽자니 감자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토란과 감자는 닮은 점이 많다. 조리해 먹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고, 맛이 자극적이지 않으며, 별로 비싸지도 않다. 하지만 그 매력에 빠지고 나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마성의 맛을 지닌 음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브런치에서 한참 전에 ‘감자야 미안해’라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https://brunch.co.kr/@cinderello/7).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이성(異性)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 대상의 공통점을 추려 ‘이러이러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한다. 아, 귀여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키 큰 사람이 좋아? 마른 사람은 싫고? 너무 조용한 사람보다 말이 좀 많은 사람이 낫다고? 등등.
식성도 이렇게 간추려질 수 있다. 나의 식 취향을 꿰뚫는 아내는 감자와 토란을 좋아하는 내 식성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했다. ‘텁텁한 걸 좋아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텁텁하다’라는 단어는 형용사로, 그 세 번째 뜻은 이렇다. '음식 맛 따위가 시원하거나 깨끗하지 못하다.' 피상적이라는 단어는 이런 때 쓰는 단어일 것이다. 겉으로만 살펴서 그 깊이와 오묘함을 헤아리지 못한 표현, '텁텁하다.' 개성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맛을 간직하고 있는, ‘무미의 미(無味의 味)’를 어떻게 인간의 부족한 표현력으로 묘사할 수 있겠는가.
지난 해 겨울 들어 눈이 내리고, 모란이 아닌 토란이 천지간에서 자취를 감춘 후 무려 2백50여 일 동안 오늘을 기다려왔다. 나는 오늘 코로나 백신을 맞으려는 아내를 병원에 바래다 준 후 토란을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첫 번째 유기농 식품 가게. “토란 있어요?” “아, 아직 안 나왔어요?” 파는 아주머니가 토란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는 게 대번에 느껴진다. 안타까운 분이다.
목표로 삼았던 재래시장 골목에 접어들었다.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ㄱ식품을 오른쪽에 두고 지나치며 잔뜩 펼쳐놓은 야채 상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없다. 가장 먼저 토란을 갖다 놓는 집인데. 진짜로 아직 안 나왔나.
백 미터쯤을 걸어 반대편 입구 왼쪽의 ㅇ농산에 도착했다. 있다. 이 대목에서 안도의 한숨이라는 표현이 필요하다. 안에서 알머니(아주머니+할머니)가 뭘 찾느냐며 걸어 나온다. 토란이요. 껍질을 벗긴 토란은 근(400g)에 7천원이란다. 토란의 평균 가격인 4천원~6천원을 훌쩍 넘는다. 첫 물이라 그러냐면서 안 깐 토란 가격을 물었다. 근에 5천원이란다.
원래 토란 좀 먹는다 하려면 안 깐 토란을 사서 직접 껍질을 벗겨먹어야 제 맛이다. 만원을 한 장 꺼내서 두 근을 샀다. 저울눈 900g을 가리키면서 줄 만큼 준 거라는 듯이 말하는 알머니. 소중한 토란을 흥정 대상으로 삼기 싫어서 끄덕이고는 “고맙다”고 말했더니, 알머니 왈. “제가 고맙지요” 한다. 사람의 품성 함양에도 도움이 되는 토란...
돌아나오는 길. 다시 ㄱ식품.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아까는 틀림없이 못 보았는데, 상자들 한복판에 토란이 있다. “사장님, 토란 어떻게 해요?” 근에 5천원이라고 한다. 알이 잘다. 사장님은 오늘 토란이 많이 팔린다며, 벌써 두 상자 째 열었다고 혼잣말을 한다.
두 근만 달라고 했다. 사장님이 토란을 봉지에 담는데, 많다고 느껴진다. “많지 않아요?” 했더니 무게를 달며, “어, 서근이나 되네” 한다. 이미 두 근을 사서도 그렇지만, 지갑에 5만원 두 장과 만원 짜리 달랑 한 장뿐인데 어떻게 하나. 사장은 천원이라도 한 장 더 달라며 세 근을 그냥 줄 모양이다. 지갑을 꺼내서 펼쳐 보였다. 토란을 덜어낼 줄 알았더니, 그냥 가져가란다. 그리고는 토란 껍질 벗기는 법을 알려준다. 익히 알지만 맞장구를 쳤다. 한 근이 거저 생겼으니, 그 정도 립서비스는 해야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아내에게 톡을 했다. 답이 없다. 바로 잠시 후 코로나 백신 주사 맞은 아내가 2층에 나타나더니 두리번거리려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직진으로 걸어온다. 창가 턱에 놓은 두 개의 시커먼 비닐 봉다리를 보고는 묻는다. “토란하고 뭐 샀어?” “엉, 토란하고 토란.” 웬 말장난이야 하는 표정의 아내에게 설명을 했더니, 그제서야 끄덕인다.
브런치를 시작한 후 이렇게 토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가을을 기다리기도 했다. 이제 집에 가서 토란을 끓여먹을 일만 남았다. 내가 사랑하는 토란, 가을은 이렇게 토란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