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떼 i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Oct 10. 2022

한글의 힘

(시조1)

如此亦如何 / 如彼亦如何 /

城隍堂後垣 / 頹落亦何如 /

吾輩若此爲 / 不死亦何如 (*)


이 시(시조)를 읽고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시조는 어떤가.


(시조2)

이런들 어떠하리  /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칡이  / 얽혀진들 어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얽혀 / 백년까지 누려보세


대부분이 ‘아, 이거야 알지.’ 할 것이다.


위의 時調1은 李芳遠(朝鮮의 第3代 國王)이 지은 何如歌이고,

아래의 시조2는 이방원(조선의 제3대 국왕)이 지은 ‘하여가’이다.


어느 것이 쉬운가.

나는 옛날 옛적에 시조2를 학교에서 배웠다. 국민학교(오늘의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당연히 시조2가 쉽다.


시조1은 오늘 이 글을 쓰느라 인터넷을 뒤져서 처음 보았다.

시조1의 셋째 구 이하가 내가 기억하는 시조2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하면, 어제가 한글날이라 그렇다. 직장 생활할 때의 시의성(時宜性) 지옥에서 빠져나온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을 겪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글자는 세종대왕께서 15세기 중반에 만드신 한글이다.(=하나마나한 소리 같지만, 이 문장은 이 글의 핵심 가운데 핵심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제4대 국왕으로, 한글을 만드신 것뿐만 아니라,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업적을 쌓으신 분이다.


내가 돌아다녀 본 세종 임금 관련 유적지를 몇 군데 꼽아보겠다.

세종대왕께서 영면하고 계신 경기도 여주의 영릉(英陵). 능으로 들어가는 입구 길 양 옆에 조그만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30년 쯤 전의 이야기다. 몇 년 전 가보니 길은 완전히 바뀌었고, 은행나무는 사라졌다. 그 대신 임금의 업적을 나타낼 측우기, 혼천의 등의 모형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괜스레 사라진 은행나무가 그리웠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부근에 위치한 세종대왕 박물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박물관이다. 이 역시 30년 가까이 전에 가 보았다.


그 후로 세종대왕 박물관에는 가보지 않았다. 안 가본 것은 서울 용산에 국립 한글박물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한글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경내에 있다. 2014년 10월 9일 한글날에 문을 열었다. 교육 차원에서도 가볼 필요가 있겠지만, 교양 차원에서도 가볼 만하다. 말한 대로 중앙박물관과 함께 엮어서 가면 다 돌아보는 데 하루로도 부족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외경(출처 : 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돌고 돌아서,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다.


국립중앙박물관(한글박물관이 아니라) 본관 우측 끝부분 벽에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하는 훈민정음(訓民正音) 서문이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


그걸 한문으로 쓴 것은 이러하다.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故 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 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 易習 使於日用耳


어려운가. 이 한문을 한글로 바꿔써보겠다.


국지어음 이호중국 여문자 불상유통

고 우민 유소욕언 이종부득신기정자 다의

여 위차민연 신제이십팔자

욕사인인 이습 사어일용이


여전히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쉽게 풀어보겠다.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한글로 풀어적는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 고로

어리석은(불쌍한)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구나.

내가 이것을 가엽게(안타깝게) 여겨서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으니,

쉽게 익혀 날마다 편히 쓰기를 바라노라.

이제는 이해니 뭐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진 오른쪽 끝부분의 얼룩거리는 글씨가 한글 창제 서문이다. 아무리 찾아도 클로즈업으로 찍은 사진을 못 찾았다.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 박물관 홈피에도 없고.ㅜㅜ




20여년 전 한창 PD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한글날에 즈음해 한글을 모르는 어른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교실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는 우리나라에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성인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그들은 한글을 모르는 설움도 설움이지만, 그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은 자식들에게도 드러내지 못한다고 했다.


한글을 깨우쳤을 때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이야기 했다.(“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고 썼다가 고쳐썼다.)


“은행업무를 볼 수 있게 된 것과 관공서에서 서류를 뗄 수 있게 된 거요.”

그 교실에 있던 평균 연령 65세 분들이 모두가 여성이었기에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남성이 있었다면 운전할 때 표지판을 읽을 수 있는 것을 추가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불편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 이런 불편을 겪는 줄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정도 쓰면, 세종대왕님께서 신데렐로가 임금님께 얼마나 감사드리는지 아시지 않을까.




*인용 근거 : 이 글에서 인용한 하여가와 한글 창제 서문 등은 따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 인용했다. 학문적인 글이 아니라서 양해 될 수 있으리라고 감히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패배를 맛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