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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Nov 21. 2022

월동준비

월동준비.

네 글자의 한자로 된 단어지만, 4자성어로 불릴 만큼 오래된 단어는 아니다. 대부분 뜻을 알겠지만 혹시라도 MZ 세대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여 토를 단다.


월동준비(越冬準備) - ‘(추운) 겨울을 잘 넘길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철 지난 단어가 아니라 세월 지난 단어를 떠올린 건 날씨 때문이었다. 11월 치고는 따뜻한 축에 속할 날씨가 계속되면서 아내가 ‘청개구리가 되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담그던 김장을 떠올린 것이다. 장모님은,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에 김장을 해야 마음을 놓는 분이셨다.


이 김장은 월동준비의 첫 손에 꼽히는 항목이었다. 김장에 여러 가지 의미 부여도 가능하겠지만, 미사여구 빼고 정리하면 먹고 살기 힘들 때 겨우내 먹을 반찬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었다. 제사상 차리는 비용이 얼마라는 뉴스처럼, 이맘 때면 매년 ○인 가족 김장하는 데 얼마가 든다는 뉴스가 보도되고는 했다. 


김장 담그는 날이면 아내는 속이 아팠다. 사촌과 땅 때문이 아니라, 겉절이 때문이었다. 장모님표 김치에는  오징어와 굴도 들어갔는데, 이 해물류를 좋아한 아내가 오징어, 굴과 함께 겉절이를 많이 먹다 보니 속이 쓰리게 된 것이다. 반면 익지 않은 김치는 잘 먹지 않는 나는 김장 날이면 오히려 먹을 게 없는 풍요 속의 빈곤을 겪게 되었다. 


아내가 친정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얻어 온 김장 김치는 우리 부부의 겨울철 중요 식량이 되었다. 장모님께서 안 계신 지금은 마트의 김치가 우리 부부의 김장이 되고 있다. 그렇게 월동준비 항목 한 가지는 추억이 되었다.



월동준비의 또 다른 주요 항목은 연탄이다.

연탄. 연탄은 사실상 김치보다 더 중요한 월동준비 품목이었다. 김치와 달리 연탄이 무언지 모르는 MZ 세대는 꽤 있을 것 같다. 아파트가 대세가 되기 전인 한 세대 쯤 전까지, 연탄은 가장 주요한 난방 수단이었다. 연탄을 갑자기 필설로 설명하자니... 먼저 웃음부터 나온다. 뭐라고 해야 할까.

연탄(출처- 나무 위키)


시커멓고 원통형으로 생긴 물건으로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22개의 구멍이 뚫려있다(*). 방 구들이 있는 방 아궁이에 이 연탄을 넣으면 밤새 뜨듯하다. 겨울을 나는데 필수적인 물건이다. 다 아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자니 쉽지 않다.


겨울철 난방 수단은 연탄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다음은 석유류였다. 보일러가 등장하면서 연탄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연탄 보일러라는 것도 있었지만, 점차 기름 보일러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아파트의 비중이 커지면서 연탄은 ‘라떼’의 추억이 되었다. 이 설명을 보고도 요즘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겠다. 요즘 연탄은 연예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기부하는 물품 정도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바퀴 돌아서 나와 띠가 같은 조카애가 생각난다. 몇 년 전, 조카 혜▢이가 나와 아내에게 물었다. TV를 보던 중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마당 한복판에 수도간이 있고, 빙 둘러 툇마루가 있는 그런 한옥을 보면서 던진 질문이었다. 

“저런 집은 어디 가면 볼 수 있어?”

나와 아내는 말문이 막혔다. 이게 질문인가, 방O인가.


저걸 못 봤냐, 저걸 모르느냐고 잠시 죄인 심문하듯 다그친 우리 부부는 정신 차리고 냉정하게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 조카애는 아파트에서 태어나, 30여년을 아파트에서 살았다. 수도간은 TV에서만 보았다. 그 애가 씻는 공간은 수도간이 아니고 욕실이다. 집에 대문이라는 게 있다는 건 알지만, 어쩌면 그걸 밀고 들어가 본 적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부터 우리 부부는 비슷한 상황이 되면 ‘혜▢이는 이거 알까?’ 하고 자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고보니 연탄을 아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연탄이 다 타고 나면 연탄재가 된다. 이 연탄재를 발로 찼다가는 안 모 시인에게 야단맞는다.

연탄재 사진. 출처(대문 사진 포함)-pixabay



김장 김치는 마트에서 사다 먹고, 아파트에서 연탄 걱정 없이 사는 나에게 필요한 월동준비가 한 가지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어떻게 운동을 할까 하는 게 고민이다. 내가 하는 유일한 운동은 걷기 운동인데, 한 달에 20일 이상을 하루에 6천 걸음 이상 걸으려고 한다. 


내가 지난 한달 동안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다 아는 나의 핸드폰 앱을 보니 4월부터 10월까지는 매월 20일 이상을 걸었다. 하지만 11월이 되면 운동한 날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해서 12월부터 2월까지 세 달 동안은 총 30일밖에 걷지 않았다. 한 달에 10일밖에 되지 않는다. 


추운 날씨에 무릎 걱정, 심장 걱정, 그리고 김장과 연탄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하지만 운동 걱정도 빼놓을 수 없다. 운동복을 하나 살까, 겨울용 신발을 살까. 지난해에도 이런 생각을 안 했을 리가 없다. 김치 걱정, 연탄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 운동 걱정이 들어앉았다. 사는 건 이렇게 걱정하는 일인가 보다.


*연탄에 뚫린 구멍수에 따라 연탄을 부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구공탄이다. 9개의 구멍이 뚫려있다는 뜻인데, 이건 나도 본 적이 없다. 더 오래 전 물품이다. 그 후로 19공탄, 22공탄이 등장했다. 하지만 나도 연탄을 본 지 하도 오래 돼서 연탄 구멍이 19개인지, 22개인지 가물거린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인터넷의 사진을 뒤져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연탄은 22공탄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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