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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달 Jul 06. 2022

이야기 꽃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곳, 분푸쿠(文福)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선배 오랜만에 저녁 드실래요?”

 같은 기숙사에 사는 한기수 후배인 겐짱이 말을 걸어온다.

 “오 좋지. 그럼 오랜만에 분푸쿠 갈까?”

 “안 그래도 가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어요. 가요 선배”

 “그럼 끝나고 로비에서 봅시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도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도착하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무사시 코스기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엔 허허벌판이었다고 하는데 재개발의 물살을 타고 지금은 살고 싶은 지역 1위에도 왕왕 뽑힐 정도로 매력적인 지역으로 거듭 나였다. 하루가 다르게 고층 맨션과 쇼핑몰 등이 들어서고 있는 이곳에 결이 다른 꼬마 건물들. 그 건물 중 한 곳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분푸쿠(文福)가 자리 잡고 있다.


  어둑한 복도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연다. 안 그래도 조도가 낮은 가게 안은 야키토리(닭꼬치)를 굽는 연기로 자욱하다.

 “어서 오십쇼! 몇 명이십니까?”

 “두 명이요.”

 “ 그럼 카운터(우리나라에서 흔히 닷찌라 불리는 오픈 키친 앞자리)는 어떠세요?”

 카운터라… 둘 다 표정이 뜨뜻미지근해진다.

 “혹시 안쪽에 자리 없을까요?”

 “그럼 안쪽으로 안내해드릴게요. 손님 두 명이십니다!!(쩌렁쩌렁)”

 안내해주는 점원의 구호에 맞춰 다른 점원들이 연달아 “이랏샤이마세!!(어서오십쇼)”를 외친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도 정해진 구호를 외친다.

 “일단 생맥 두 잔 주세요!”


 “아무래도 바는 좀 그렇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내가 말한다.

 “어휴 그럼요. 여기 세 번 오면 두 번은 회사 사람 만나는데 합석이라도 하자 하면 아찔해요.”

 저렴한 가격에 맛도 좋고 가볍게 한잔 즐길 수 있는 매력은 필히 우리만 느끼는 게 아닐 테고, 나 또한 회사 선배 추천으로 이곳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만큼 회사 사람들과 조우할 일이 많다. 회사 욕을 하려고 만난 건 아니지만 결국 회사 욕으로 끝나는 우리의 대화이기에 늘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생맥주가 나오고 오토오시(お通し、곁들임 반찬. 반찬이지만 돈을 받는다. 보통 자릿값의 개념.) 우메다이콘(우메보시가 올려진  ) 나왔다.  무도 우메보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유독 이곳의 우메다이콘은 끊임없이 먹게 된다.


 “짠! 오늘도 고생했어요!”

 얼음장을 입에 대자 차가운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간다. 캬. 맥주의 첫 한 모금은 정말 귀하디귀하다. 두 번째 모금은 이 맛이 안나. 맥주를 마시니 정신이 든다.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지나가던 점원을 불러 세운다.

 “우선 대파 닭꼬치, 모래집, 닭 껍질, 염통, 닭다리 살, 쓰쿠네(다진 닭고기를 완자 모양으로 빚은 것 연골, 아스파라거스 두 개씩 주세요. 소금 양념? 뭐가 좋아?”

 “소금이요. 아 선배, 전 간도 먹을래요.”

 “그럼 간도 하나 추가해주세요. 그리고 곱창 카레도요.”

 “네 알겠습니다.” 점원이 능숙하게 메뉴를 받아 입력한다.

 “일단 먹어보고 또 시키자.”

  하나하나 일일이 점원이 직접 굽기 때문에 받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니 흐름 끊기지 않게 일단 처음부터 많이 시키고 바로 먹을  있는  집의  하나의 명물 곱창 카레도 함께 시켰다. 곱창 카레는 돼지 곱창이 들어간 카레로 조그마한 밥공기에 담겨 나오는데 (밥은 나오지 않음) 카레 덕분에 전혀 곱창 냄새가 나지 않고 이게  맥주에도  어울리고 청주에도  어울리는  도둑이다. 카레 곱창  ,   . 번갈아 먹다 보니 어느새 야키토리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이 코스 아닌 코스요리를 즐긴다. 숯불에 직접 구운 야키토리를 먹는다. 눈앞에 자욱한 연기로 한번, 숯불 향으로 한번, 입으로 한번. 구운 닭이 이렇게 맛있었나. 분위기 때문인가. 적당히 복잡하고 적당히 시끄러운 공간이 더욱 입맛을 자극한다.

 하나둘 쌓여가는 꼬치의 수만큼 우리의 대화도 무르익어간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회사생활과 기숙사 생활을 돌아보았다. 겐짱을 처음 만난  2017 4 1 겐짱의 입사식이었다. 처음엔 그저   없는 후배라고 생각했는데 연수를 끝내고 같은 본부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다. 같이 기숙사 살이를 하는 형편인지라 함께 보내는 주말도 늘어났다. 좋아하는 음식과 취미가 비슷하고  하면 어하고 척척 죽이  맞는  부러지고 귀여운 후배. 퇴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라 이런 시간이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는지 아쉬움이 연기처럼 자욱해진다.


 슬슬 절정의 치닫는 우리의 대화와 배.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이제 마무리를 시켜볼까.

“구운 오니기리랑 돼지고기 부추 말이 2개씩 주세요. 양념으로 주세요.”

 모든 꼬치 메뉴를 본래의 재료 맛을 즐기기 위해 소금으로 시키지만 부추 말이만은 꼭 양념으로 시킨다. 고소한 돼지고기와 안에 든 부추의 푸릇푸릇함이 양념의 단짠단짠과 어우러지면 더할 나위 없는 밥도둑이 되는 거다. 석쇠에 겉면이 구워져 누룽지 맛이 나는 오니기리 한입, 부추 말이 한입. 이 조합이라면 쌀 한 가마에 부축한 포대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적당히 더운 가게 안에서 배도 불러오고 취기도 돈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할 시간. 알딸딸한 기분으로 전철을 타는 건 아쉬웠다.

 “선배 오늘 많이 먹었으니 우리 기숙사까지 걸어가요.”

 이렇게 내 마음을 또 알아주다니. 기특하기 그지없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즐기던 그날 밤을 아마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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