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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바라보는 관점 Oct 04. 2024

수수의 친구 이야기 2 - 실의 이야기

'실'에 대해 수수는 알고 있는 걸까?

수수는 오늘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를 만났다. 그동안 수수도 바빴고 친구도 바빴다. 

전화통화는 가끔 했으나 얼굴 본 지 오래되었다.

수수 친구의 이름은 ‘실’이다. 

실은 1인 기업으로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비자 발급을 연결해 주고,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등 회사의 출장에 관련된 일을 주로 해준다. 

수수와 친구는 대학교 같은 과 친구이다. 

졸업 후 초기 몇 년 동안은 다른 친구들과도 자주 만났었다. 매해 서로 생일도 챙겨주며 얼굴을 보았었다.

하나둘 결혼하고 나서는 만나지 못하다가 요즘 수수와 실만 가끔 만난다. 

수수는 ‘실’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다. 

수수는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의미에 대해서도 어떤 의미인지 의문이 들고 있다.

그냥 어느 회사에 다니는 것인지, 성격이 급하다는 것인지, 외모가 키가 크다는 것인지 이런 것으로 보이는 모습을 아는 것이 아는 사람인 것일까?

서로 이름을 기억하고 가끔 얼굴 보는 관계가 아는 사람일까?

‘실’과의 아는 사람 의미가 이런 것이라면 수수는 ‘실’과 아는 사람이다. 

가끔 수수는 ‘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요즘은 어떤 느낌으로 살고 있는지,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는 어떤지, 가족과의 관계는 어떤지 등등 ‘실’의 내면의 생각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수는 ‘실’과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않았다. 

그냥 요즘 회사 생활이 어떻고 ‘실’의 여행사 생활은 어떤지, 드라마는 뭐가 재미있는지, 날씨는 왜 이렇게 더운지 등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눈다. 

‘실’은 말투가 사실 심각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냥 하는 모든 이야기가 농담같이 느껴진다. 남자친구 이야기나 선배들의 이야기 등 자기 생각인지 정확히 모를 정도로 그냥 웃으면서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웃으면서 정말 실없는 농담도 잘하기 때문에 수수 역시 ‘실’에 대해 재미있는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수수는 아직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의 정확히 의미를 정의 내릴 수 없으나 ‘실’에 대해 근래에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은 외로운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고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였던 ‘실’이었다. 

대학교 때 ‘실’의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는 졸업 후 결혼하고 만나기 어려웠다. 

‘실’은 늦둥이로 태어나 언니 오빠와 나이 차도 심하게 난다고 했다. 

언니들의 자식, 즉 조카를 돌봐주면서 살았다 했다. 

자신은 늦둥이였기 때문에 언니, 오빠보다 부모님과 오래 함께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부모님 곁에서 살고 싶었다고 한다. 

‘실’은 수수처럼 독립하여 살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다. 

수수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은 부모님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돈 벌고 생활비를 드리고 부모님을 돌보았다. 

‘실’은 사실 남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수수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것이다. 

수수가 친구에 대해 무심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어찌 보면 수수는 다른 모든 것에 무심한 건 아닐까? 

수수는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 물어본다. 

수수는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아는 걸까?’라고 물어본다.

자신을 계속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실’을 생각하면서 수수는 자신이 이런 면에서 주변 사람에 관한 관심이 부족했던 거 아니었느냐고 스스로 물었다. 

‘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수수는 ‘실’이 외로운 사람이란 걸 몰랐다. 

‘실’은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실’에겐 그냥 왔다가 가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근래 ‘실’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젠 ‘실’은 수수를 만났을 때 남자친구들 이야기도 안 한다. 

‘실’에겐 별로 의미가 없는 존재들 같다. 

‘실’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이제 돌아가셨다. 

‘실’은 농담처럼 또 툭 말한다. 

“난 이제 고아야. 엄마, 아빠 안 계시면 고아지.”

‘실’이 느끼는 감각으로 자신은 고아라고 했다. 그 말을 그때 수수는 농담으로 들었다. 

근데 얼마 전에 ‘실’을 만나고 수수는 알았다. 

‘실’이 정말 외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니, 오빠로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있으나 ‘실’ 자신이 느끼는 가족이 없음을….

‘실’은 결혼하지 않고 부모님과 살았다. 이제 함께 사셨던 부모님도 안 계신다. 

부모님과 살던 집은 오빠에게 상속되었다 한다. 

자신이 여행사를 하며 많은 돈을 벌진 못했지만, 그 돈은 부모님과의 생활비로 사용되었다. 

‘실’은 농담처럼 항상 말했다.

“나 가난해. 부모님 집이 오빠한테 상속돼서 오빠가 집을 판다고 했어. 그래서 집을 구해서 이사했어.”

‘실’은 오래된 빌라에 세 들어 살다가 얼마 전에 또 이사했다고 한다. 

“일도 바쁘고 이사도 했더니 요즘 힘들었다. 에어컨이 없어서 더 힘들다.”라고 수수와 통화 시 이야기했다. 

수수와 통화하면서 ‘실’이 말했다.

“올겨울에 에어컨 사서 설치하려고.”

“빌라 너 샀어? 너 집이야?”

“아니”

“그럼 이사할 때? 에어컨 이전 설치하려고?”

“응”

“지금은 사는 비용보다 이전 설치 비용이 더 나온다. 지금 사는 집에서 몇 년 살려고? 4년은 살 생각이야?”

“집주인이 나가라고 안 하면 4년은 살지 않을까?”

“그럼 에어컨 사. 아니면 두고 가서 새로 사는 게 더 쌀 수도 있어. 에어컨 있는 집을 구하면 안 돼?”

“에어컨 있는 집은 세가 더 비싸”

“그렇구나. 암튼, 이전설치비용 고려해야 해. 근데 지금까지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았냐? 요즘 엄청 더운데….”

“집엔 별로 없으니까. 근데 코로나 걸려서 그땐 진짜 힘들었어. 그래서 에어컨 사려고 하는 거지.”

“그렇구나. 잘 고민해 보고 결정해”

‘실’은 결혼할 생각이나 누구와 함께 살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혼자 계속 일하면서 살 생각을 한다. 

수수는 ‘실’과 통화하고 이번에 만나면서 ‘실’의 말투와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수수는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은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인지, 친구 ‘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인지….

우린 정말 자신과 친한 친구를 알고 있는 걸까? 

어릴 때부터 친구는 그냥 추억이라는 경험을 공유해서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릴 기억과 지금 사는 그 친구는 같은 사람이긴 할까?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에 의해 변하진 않았을까?

사람이 사람을 아는 건 뭘까? 수수는 아직도 그 의미를 정의 내리지 못했다. 

수수는 친구 ‘실’을 생각하면서 ‘좀 더 자주 연락하고 얼굴 봐야지’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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