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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바라보는 관점 Oct 11. 2024

아버지의 죽음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수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수수는 가족과 친하지 않다. 

친하다는 의미를 수수 자신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게 하지만 수수는 가족과 잘 연락하지 않는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가족이 모일 때 만날 뿐이다.

가족 모임에 참석해도 수수는 아버지와 간단한 인사만 한다. 

‘저 왔어요.’

‘저 갈게요.’ 정도로.     

그렇게 지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사진: Unsplash의The Good Funeral Guide

수수는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궁금하다.

생각해 보니 수수는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수수는 특히, 아버지를 싫어했다. 어릴 땐 엄청 싫어했다. 

수수 아버지는 종일 술에 절어 살았고 TV만 보고 있었다. 

그런 수수가 갑자기 아버지는 종일 무슨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이걸 궁금해한 적이 없다.

수수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한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 관심도 없었다.

그냥 아버지는 수수가 가끔 방문하는 집에 있는 아빠라는 이름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가족의 사랑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수수는 확실히 안다. 수수 자신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도 아버지를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사랑했을까? 아버지로 존경했을까?

존경했으면 그냥 저런 죽음을 맞게 했을까?

그 역시 의문이 든다.

수수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진정제를 투여받으며 마지막 생을 마감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버지의 울부짖음은 항상 진정제로 막혔다.

수수가 전해 들은 말로는 아버지는 손발이 묶이고 진정제가 투여되었다.     

수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당뇨 합병증으로 쓰러지셨다. 

수수 어머니는 아버지가 새벽에 방에 쓰러져 있으신 모습을 보고 아들을 급히 불러 병원으로 이송했다. 

수수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며칠 입원하셨다. 

다행히 의식은 돌아왔고 병원에선 퇴원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 아무도 그가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지 않았다.

그의 바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아무도 그를 돌볼 여력이 없다고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곳에서 2달 이상 집에 가고 싶다고 정신이 들 때마다 소리치다가 결국엔 숨을 거두었다.


수수는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냥 아버지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죽음이 슬퍼서 눈물이 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가족 그 누구도 아버지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영혼이 자신의 육신을 떠나는 그 과정을 혼자서 겪고 떠났다.

수수는 그 사실이 좀 불쌍하고 아버지의 그런 죽음에 눈물이 난다. 

아무도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수수는 아버지, 자신의 육신 안의 영혼이 온전히 아버지 자신으로 살았던 시간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40년을 넘도록 알코올에 의존하며 살았고 나머지 시간은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수수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교통사고 나기 전부터 술을 입에 달고 사셨다. 

교통사고 이후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더욱 술에 의존하였다. 

주위에선 장애를 갖게 되었으니 알코올에 의존하는 걸 이해해야 한다며 어린 수수를 설득할 정도로 내버려 뒀다. 

하지만 수수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교통사고 나기 전부터 삶에서 술이 없었던 적이 없다. 

수수 아버지는 철저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이 교통사고를 난 후부터는 더욱더 다른 사람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길 원했다. 자신이 불편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낮이든 한밤중이든 상관없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졌다. 

함께 사는 수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요구에 대응하며 살았다. 

수수 아버지는 고혈압과 당뇨로 술과 담배를 끊으셨었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버지와 가까이 사는 가족은 자기 뜻대로 하길 바라며 소리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모습에 질린 가족은 마지막엔 그 돌봄을 해 나갈 자신이 없었다. 

요양병원이 아버지의 마지막 거처가 된 이유는 이런 이유였다. 

그런 아버지는 결국 다른 이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며 이기적으로 살다가 영혼이 몸을 떠났다. 

죽기 전이라도 주위 사람을 배려할 수 있었다면 혼자 육체를 떠나는 죽음을 맞이하였을까?

수수는 다시 한번 의문을 던진다. 

아버지는 살았을 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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