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 가는 중. #1

아이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내 아이를 보내던 학교를 그만두기로 부모인 우리는 결정했다.

3년간 내 아이는 학교에서 행복하게 잘 컸다.

아이는 대안 교육기관으로 발도르프교육을 하는 학교에 다녔다.

아이 학교 생활

발도르프교육은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라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가 인지학이란 사상을 기반으로 설립한 학교에서 시작된 교육이다. 발도르프교육이란 용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발도르프 아스토리아(Waldorf-Astoria) 담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자녀들을 위해 처음 설립된 학교의 이름을 기반으로 지금은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있는 교육이다.

인지학(人智學; Anthroposophie, Anthrophosophy)이란 인간에 대한 앎(지혜)(Anthro + Philosophy, Sophia)이다. 인간 자체에 대한 앎을 기반으로 전인교육(全人敎育)에 중점을 두었다.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배움을 목표한다. 교육과정은 인지학의 인간 발달과정을 기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이야기 한 발달과정에 따라 아이는 입학 전에 글을 배우지 않고 학교에 입학한 후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입학한 다른 친구들은 유치원부터 발도르프교육을 하거나 공동육아를 하던 아이들이었다.


5세부터 초등학교는 발도르프교육을 하겠다고 나는 생각하였으나 정확한 철학을 몰랐기에 일반 유치원을 보냈다.

발도르프교육을 아이가 입학하고 본격적으로 알게 되면서 정말 중요한 시기는 유치원 시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비록 아이는 발도르프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으나 학교생활을 즐겁게 적응해 나갔다.

1학년 시기부터 학교에서 방과 후를 운영해 준 덕분에 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며 방과 후 생활을 하였다.

방과 후 생활은 아이의 체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이 1학년 때 방과 후 선생님은 긴 나들이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산행을 하셨다.

3년간 아이는 온몸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친구들과 선배, 후배와 함께 사회생활을 배워 갔다.

자신감도 생기고 활달한 아이로 3년간 성장했다.

사교육 없이 온전히 학교 교육을 통해 아이는 배움을 이어나갔다.

아이가 자람에 학교에 감사한다. 이렇게 아이가 좋아하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우리는 결정을 했다.

아이는 행복한데 부모가 너무 힘들어서이다.


아이 1학년 때의 생활

처음 아이가 학교를 등교하기 시작할 땐 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얼마 되지 않아 나 역시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 안 되는 등하굣길이지만 차가 막히면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다. 등교는 내가 시키고 하교는 아이 아빠가 시켰다.

발도르프 학교는 원래 1학년 1학기 때는 수업을 짧게 하고 방과 후 활동도 하지 못하게 한다. 아이들 발달과정에서 아직 체력이 방과 후 활동을 할 정도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다행히 우리 부부가 선택한 학교는 우리 학년부터 맞벌이가 70% 이상으로 학교에선 1학년 1학기 때부터 방과 후 참여를 허락했다.

아이는 6시까지 학교에 머물러 있었다. 학기 초엔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다. 8시까지 등교로 6시 정도에 일어나 등교를 해야 했다. 그러면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리기도 했다. 저녁을 먹일 시간도 없었다. 남편이 하교를 담당했는데 퇴근하여 아이가 먹을 저녁을 사서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먹였다.

아이는 힘들어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체력 향상이 되었고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1년 정도 아이 등하교를 위해 왕복 최소 2시간 거리를 차로 운전하며 다녔다.

나와 남편은 이렇게 맞벌이로 일을 하며 아이를 대안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교육했다.

아이가 1학년 때 학기 중엔 아이를 학교에서 돌보아 주기에 일하기 어렵지 않았다.

근데, 방학이 문제였다. 누구나 맞벌이 부모에게는 방학이 문제다. 방학이 찾아왔다.

방학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다.

방과 후 긴 나들이 때 아이 모습

학교는 방학 기간 중 3주간 방과 후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운영방식을 통보했다.

학교 방중 방과 후를 운영하지 않을 때 아이를 맡길 곳이 우리에겐 없었다.

학교 방중 방과 후는 우리 학년이 입학하기 전까지 맞벌이 부모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맞벌이 부모를 위한 돌봄을 방학 내내 진행되는 일정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한두 명의 아이들은 부모들이 돌봄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돌봐주는 다른 대안이 없다. 온전히 우리 부부가 해결해야 한다.

부랴부랴 방법을 찾다가 집 근처 돌봄센터가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돌봄센터에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보고 아이를 그곳으로 보냈다.

1학년 때는 함께 입학한 부모들과도 자주 연락을 하거나 교류가 많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다른 부모들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1학년이 끝나갈 때까지 아이들과의 마실(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도 허락되지 않은 상태였다. 마실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아이들끼리 놀게 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여름방학 동안 돌봄센터를 이용해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돌봄센터는 아이의 학교 교육과 맞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우리에겐 당시 선택권이 없었다. 아이가 하는 돌봄센터 활동과 학교 교육이 맞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이 돌봄센터도 매일 돌봄센터를 가지 않는 아이는 겨울방학엔 이용이 어렵다고 센터장이 통보해 주셨다.

방학 때만 이용하고자 하는 우리에겐 겨울방학 때는 이용이 어렵다는 방침이었다.

결국, 여름방학엔 돌봄센터에서 아이 돌봄이 가능했으나 겨울방학엔 불가했다.

아이 1학년 생활 동안 아이도 학교에 적응하고 부모인 우리도 학교에 적응하느라고 정신없이 보낸 한 해였다.

그러던 중 11월 말에 나는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고, 아이를 돌보고 챙기는 일은 온전히 남편이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해야 하는 일들에 모두 아이 아빠가 참석하고, 병원에 있는 나를 챙기고, 내가 하던 일의 수습도 하게 되었다.

퇴원 후 나는 한동안 운전을 하지 못했고, 아이 아빠가 도맡아 운전과 아이 등하교를 신경 쓰게 되었다. 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이의 겨울방학은 직접 챙기기로 했다.

맡길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아이의 첫 학교생활 1학년 기간은 부모인 우리도 너무 좌충우돌하며 보낸 한 해였다.

아이의 겨울방학부터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집도 학교 근처인 차로 5분 거리로 이사를 했다.

아이를 방과 후에서 선생님께서 안전히 돌봐주신다. 하지만 혼자 늦게까지 남는 아이는 힘들어했다. 친구들이 가는 시간에 맞춰서 자신도 하교하고 싶어 했다.

대부분 4시 정도에 대부분의 방과 후 친구들은 하교한다. 나는 일을 하기에 이 시간에 맞춰 아이를 하교시키기 어려웠다.

회사를 출근하는 일을 그만두고 재택으로 할 만한 일을 찾기 시작했다.

일을 그만두고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부모 교육에도 욕심이 생겨 교육을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도르프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가며 학교에 봉사하기로 하였다. 공동 반 대표를 맡고 학교 운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아이의 학교는 대안 교육기관으로 온전히 부모들의 경제력과 품으로 운영된다.

아이가 1학년 시절 나는 맞벌이로 학교 일에 많이 참여할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과 다른 부모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잘 보냈다.


2학년때의 생활

2학년에 본격적으로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게 되고 난 후부터는 학교에 관련된 일에 쉽게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시간을 낼 수 있는 한 학교 일에 참여하였다.

학교는 부모가 학교 운영, 설비, 선생님들의 수업 지원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아이가 2학년이 되었던 시점 학교는 9학년 체계를 12학년 체계로 변경하던 시기였다.

이 체계를 변경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이 해 나가는 일정을 보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어떤 동기가 저 부모들을 움직이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하는 부모도 있고 아이를 돌보며 참여하는 부모도 있었다.

대부분 맞벌이가 아닌 홀벌이인 경우가 많긴 했다.

그래도 아버지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는 운영위를 보면서 밤늦게까지 회의를 진행하고 결정하고 협의하는 모습을 보았다.

준비하고 협의한 내용을 함께 학교에 다니는 부모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또 협의하는 과정을 1년간 지켜보았다.

학교를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아이가 1학년 때 나는 일을 하는 동안 그 누군가는 ‘학교를 위해 이렇게 노력했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이의 학교생활 2학년은 이렇게 지나갔다.

아이는 학교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행복한 아이

근데 부모인 우리는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2학년 공동 반대표를 하며 많은 봉사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큰 노력을 하는 부모들이 있기에.

교육에 대해서도 철학과 실질적인 적용의 차이를 보게 되었다. 이상은 저 위에 있으나 그를 실천하는 사람에 따라 구현되는 내용은 다르다는 현실을 보게 된 것이다.

발도르프교육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노력 중인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아이가 잘 크고 있음을 확인했다.

철학을 실천하고 아이를 그렇게 키우기 위해 부모가 해야 할 부분에 대한 인식도 크게 와닿기 시작했다. 품을 내어서 해야 하는 부모의 역할을 더 보게 되었다.


3학년 때 생활

그러던 중 학교 수업료는 3학년에 되던 시점에 훅 올랐다.

아이의 수업료와 방과 후 비용을 합치니 매달 지급되는 비용이 월 100만 원이 되어 갔다. 그 외 추가적인 수업이 진행될 때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아이 교육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으나 경제적인 부분도 점차 무시될 수 없는 수준이 되어갔다. 아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해야 하는 부수적인 교육이 더 생겼다.

4학년부터는 운동과 악기도 따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학교에 새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수는 내 아이의 밑에 학년부터 급격히 줄었다. 이는 다시 수업료가 오를 수밖에 없는 학교의 상황이 되게 된다.

아이의 4학년부터 악기와 운동, 상승한 수업료를 부모인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논농사

아이가 3학년부터 나는 다시 출근하는 일을 시작했다. 재택으로 할만한 일은 출근을 하며 버는 수입을 맞출 수 없었다.

또한,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며 집에 들어가는 비용도 증가했다.

일을 다시 시작하니 우리 부부는 또다시 바빠졌다.

아이는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었으나 나와 남편은 너무 바빴다.

주말은 아이의 학교 일로 매주 뭔가를 해야 했다.

특히, 3학년 과정의 아이는 농사와 집짓기를 해야 했다.

아이들이 주로 하는 수업이었으나 부모의 도움도 필요했다.

주말과 주중에 부모의 품을 내야 하는 일들이 자주 생겼다.

둘 다 회사에 매여 일하는 처지로 주말에만 겨우 시간을 내어 참석할 수 있었다.

주중에 우리 부부는 시간이 얼마 없어 아이를 챙기고 겨우 잠들기에 급급했다.

주말은 또 학교 모임과 아이 수업 참여로 바빴다.

이렇게 3학년 일 년을 보내면서 나는 계속 나에게, 남편에게 묻게 되었다.

‘우리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 것이지?‘. 물론 아이를 위한 희생은 필요하다.

처음 아이를 입학시킬 때 학교에서는 많은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수준이 입학 전까지는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아이가 1학년 시절은 더 몰랐고, 2학년에 공동 반 대표를 하면서 운영되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씩 인식했고, 3학년 땐 우리의 시간도 너무 부족함을 느꼈다.

KakaoTalk_20250114_093542809.jpg 여름방학 밭관리 부모가 함께 하는 여름 밭농사

아이를 위한 부모로 해야 할 일이 있다. 근데, 우린 아이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으로 '아이를 올바로 키우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하고, 그 돈으로 아이 학교 수업료를 내야 하고, 아이 학습을 위한 품과 시간을 내야 하고, 학급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모임에 참석해야 하고, 학교 운영을 위한 총회 등에 참석해야 했다.

아이가 인간으로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경쟁이 아닌 선택을 하고 싶어 대안 교육을 선택했는데…. 부모인 우리는 너무 힘이 들고 지쳐갔다.

나는 다른 부모들에게 물었다. '다들 이 삶이 힘들지 않아요?'라고.

'어떻게 그렇게 학교 일에 몰두할 수 있어요?'라고.

나는 나의 삶도 살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우리 부부의 우리 가족의 삶도 살고 싶었다.

일부 부모는 대답했다.

'유치원 때부터 이렇게 생활을 해서 그냥 당연하게 생활한다.'

'선생님들이 온전히 교육할 수 있게 지원해드리고 싶어서 우리도 노력한다.'

'내 아이의 학교가 졸업하고도 잘 있길 바라는 마음에 학교를 위해 노력한다.'등등….

나는 아이를 유치원도 시립으로 편하게 보내서인지 이 생활을 계속해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결국 서로 결론을 내렸다. '아이를 일반 학교를 보내자'라고.

이 생활을 계속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어떤 선택이 가장 좋은 부모의 선택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근데, 우리 부부가 결론을 내린 건 부모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 다 피곤함에 절어서 서로에게 짜증을 내며 싸우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이는 것보다 서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이 학교 생활

아이에게 현재 들어가는 비용을 온전히 아이가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곳에 쓰기로 했다.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는 모르겠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또 뭔가를 부모로서 결정하고 방향을 틀어서 가고 있다.

아이가 자라는데 방법을 여러 가지이다.

3년간 대안 교육기관의 방법을 선택했었다. 방법은 이것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반 공교육을 받으면서도 잘 자라는 아이들은 있다.

우리도 그 방법을 다시 모색해서 찾아보려고 한다.

이게 부모로 맞는 방법인지 모르지만, 또 아이를 위해 우리를 위해 도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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