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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성 Jun 01. 2023

출국 당일

 6월의 스물다섯 번째 날

 

 출국 당일. 내가 탑승할 비행 편은 새벽 12시 35분 출발이다. 저렴한 표를 고집한 탓인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시간에 출발하게 됐다. 코로나로 인해 이탈리아의 밀라노, 베니스로 운항하던 직항 비행 노선은 모두 사라졌다. 내가 구매한 항공권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거쳐 이탈리아 밀라노로 간다.  


“공항철도 타고 가면 돼. 늦은 시간인데, 엄마 아빠는 나오지 마.”  


 부모님이라면 한사코 거절하며 공항까지 데려다줄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에 떠나기 전날까지도 ‘나는 공항까지 혼자 가리다’라며 선언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부모님은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셨고, 결국 나는 편안하게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공항까지 갔다.  

늦은 밤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코로나로 인해 공항 이용객이 현저히 적어졌음을 눈으로, 공항의 차분한 분위기로 느낄 수 있었다. 깊은 밤이라 유독 조용한 공항의 분위기는 도서관 같았다. 공항 안에서 나누는 우리의 대화는 동굴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처럼 목소리가 울렸다. 보안 검색대로 들어가기 전, 나는 가방을 뒤척였다.  


“뭐 두고 왔어?”


아빠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이탈리아에서 사용하려고 챙긴 즉석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하늘색 카메라로 가장 먼저 찍은 사진은 출발 전 엄마 아빠와 함께 환하게 웃는 나의 함박웃음이었다. 작별인사를 마치고 수하물 검사대로 이동했다. 뒤를 돌아서자 헤어짐의 아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렇게 공항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며 감정이 차오를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 일을 떠올리면 곧바로 웃음이 난다.


 21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출국을 하게 됐다. 중국 절강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가기 위함이었다. 지금이야 혼자 외국에 간다는 낯섦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당시에 그 낯섦은 그저 커다란 두려움이었다. 무엇보다도, 출국 직전 엄마가 암 수술을 마쳤기 때문에, 시기상 회복기에 있는 엄마를 떠나는 게 무섭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유난처럼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아픈 엄마와 아빠를 떠나는 게 불안하고 무서웠다. 출국 전날 까지도 가기 싫다고 그랬지만, 부모님은 분명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경험이 될 테니 다녀오라고 응원해 주셨다.


 작별 인사를 마치고,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출국 심사를 받았다. 심사를 마치고 출국장 내부로 들어가 아빠가 설명해 줬던 대로 라운지를 찾아갔다. 역시 우는 얼굴로 들어갔다. 라운지에 앉아서 라면과 간식들을 이것저것 챙겨 먹으면서도 턱 끝에서는 고여있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학생 같아 보이는 사람이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딱하게 여기셨는지, 모르는 아저씨가 다가와서 말을 거셨다.  


“어이구, 학생. 혼자 어디 멀리 가나 봐.”  


나는 먹고 있던 라면 면발을 후루룩 흡입하고 고개를 돌려 아저씨를 보았다. 대답하기 살짝 민망했다. ‘멀다’라는 단어가 민망할 만큼, 옆 나라, 이웃나라로 향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가요.”  


아저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는지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대화를 이어 가셨다.  


“중국이면, 그래도 가깝네. 그럼 오랫동안 가나 보구나?”  


아저씨의 다음 질문은 나를 더 민망하게 만들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8개월이요.”  


대답을 들은 아저씨는 씩씩하게 잘 다녀오라는 말을 남기시고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떠나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가족과 10년간의 생이별을 감당하며 홀로 불모지에 가는 사람처럼 울고 있었던 내가 얼마나 오버스러웠는지.  


 나는 원래 눈물이 많다. 특히 공항에서는 늘 이별의 아쉬움이 그림자처럼 뒤 따라다니기 때문에 감정을 눌러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출국길도 마찬가지였다. 인사만 하고 뒤만 돌아서면 누가 눈물 버튼을 누른 것 마냥 코에는 물이 차고, 눈가는 뜨거워진다. 매번 이런 상황에서 눈물이 나올 거 같으면 라운지에서 만났던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러고는 실소를 터뜨리며 마음을 정리한다. 그 아저씨는 그날 고작 두 가지 질문만 했을 뿐인데, 그 짧은 대화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웃음을 짓는다. 나는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에 눈물을 흘리고, 별것도 아닌 일에 웃음을 짓는 단순한 사람이다.



 난생처음으로 엉덩이가 납작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사실 좁고 불편한 자리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옮겨가며 들었던 선잠이라, 중간에 종종 소음을 들으면 잠에서 깨기도 했다. 하지만 눈을 뜨지 않고 계속 자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눈을 떴을 때 ‘와! 이제 2시간밖에 안 남았어!’라고 기뻐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이거 지금 엉덩이 근육이 변형되고 있는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며 엉덩이에 전도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떴다. 입 안으로 혓바닥을 굴리자, 텁텁하고 건조한 맛이 느껴졌다. 때마침,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승무원이 물을 한 잔 마시겠냐며 컵을 내밀었다. 나는 물을 받아 들고 칫솔 치약을 챙겨 화장실에 갔다. 비행기에 있는 화장실은 치와와 같다. 크기는 작으면서, 그렇게 요란스러울 수가 없다. 변기 물을 내리면 나까지 빨아들일 거 같은 강인한 진공 소리를 내며 배설물을 가지고 간다. 세면대에서 물을 조금만 오래 쓰면 시냇가에서 무거운 물 양동이를 길어 오는 사람의 탄식처럼 느껴지는 커다란 소리를 낸다.


 자, 이제 떨리는 마음으로 남은 비행시간을 확인할 때다. ‘계획보다 조금 눈을 빨리 떴으니 한 3시간 30분 정도 남았을까? 이번처럼 한 번에 오랜 시간을 잔적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래 그럴 거야.’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좌석 앞 작은 모니터의 빛을 밝혀 남은 비행시간을 확인했다. 웬걸. 아직도 중국 위다. ‘말도 안 돼. 이건 몰래카메라야.’ 좌절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그저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 두 손가락으로 화면 속 지도만 확대했다가, 줄이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눈꺼풀이, 속눈썹이, 더 이상 강제적으로 맞닿아 있기를 강인하게 거절한다. 좌석 아래에 두었던 책을 꺼냈지만, 글을 읽기에는 주변이 너무 어둡다.

그간 썼던 글을 고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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