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스물여섯 번째 날
늘어지게 늦잠 자던 나를 깨운 건 알람이 아닌, 요란하게 창문을 두드리는 빗줄기였다. 하루의 시작을 재촉하는 빗방울들의 아우성에 못 이겨 눈을 비비고 몸을 일으켰다. 창밖에는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있는 거인이 물을 퍼부어대는 것처럼 비가 오고 있었다. 출근해야 했다면 찝찝하고 성가시는 날씨였겠지만, 운이 좋게도 휴무일이었다. 끼니를 챙겨 먹고,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손톱을 깎고. 특별한 것을 하기 위해 애쓸 필요 없다. 휴무일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도 창문 밖으로 미끄러지는 빗줄기처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산책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특별해진다.
6시쯤 비가 그쳤다. 밤 산책을 즐긴지 오래된 거 같아 샤워를 마치고 편안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코끝에 머무는 공기는 평소보다 가벼웠고, 흙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내가 유독 좋아하는 맑은 공기다. 비가 그친 걸 확인하고 무작정 집을 나왔지만, 막상 대문 밖으로 나오니 혼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지도를 잃어버린 탐험가처럼 우뚝하니 길가에 섰다.
“호수 근처로 갈까? 아니면 성당을 가야하나….”
느릿느릿 혼잣말을 내뱉으며 머릿속으로는 ‘어두워지는 저녁에 혼자 가도 부담 없는 곳’을 빠르게 찾아냈다.
“올드타운 가야겠다!”
시르미오네의 올드타운은 언제나 사람이 많고, 사랑이 넘치는듯한 느낌이 가득하다. 보라색 꽃으로 뒤덮인 건물, 모든 연인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키스 미’ 표지판, 낭만적인 선율을 연주하는 길거리 예술인, 건물 사이사이로 보이는 가르다 호수. 그곳이라면 저녁에 혼자 가도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집에서 올드타운까지 걸어가려면 꽤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시내 성곽까지 갈 작정이었다. 비 내리는 날 종일 자전거를 바깥에 세워둔 탓에, 자전거 위에는 빗물이 흥건했다. 집에 다시 들어가 휴지를 들고 나오기 귀찮았다. 혹여 밤 공기가 차가우면 걸치려 들고 온 셔츠로 빗물에 젖은 핸들과 안장을 쓱쓱 닦았다.
자전거를 타고 깨끗하게 청소된 거리를 신나게 달렸다. 대충 말리고 나온 축축한 머리칼 사이로 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유독 더 시원했고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원래 모든 일에 겁이 많다. 그래서인지, 자전거도 잘 타지 못한다. 비가 막 그친 거리를 달리는 게 신나면서도 불안했다. 밤 산책을 안전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시르미오네 성곽까지 가는 길을 반쯤 달렸을 때,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이라는 레스토랑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비에 젖은 거리의 묘한 공기를 따라 걸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갤러리를 구경하듯 거리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금세 시르미오네 성곽 근처까지 도착했다.
이곳의 여름밤은 특별하다. 시르미오네의 여름밤은 본인이 속한 일상을 떠나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의 생기로 반짝인다. 호수 돌담에 앉아 대화하는 연인들, 젤라또를 먹으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외국에 있는 느낌이 든다. 올드타운 초입에 있는 젤라또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요거트 맛과 무화과 치즈케이크 맛을 골랐다. 젤라또 위에는 항상 몽실몽실한 크림을 올려 줘야 한다. 젤라또를 가지고 호숫가 돌담에 걸 터 앉았다. 바로 앞에 백조 가족이 있었다.
어른이 된 우아하고 새하얀 백조는 흔히 봤지만, 내 팔뚝보다 작은 어린 백조는 처음 봤다. 어린 백조는 동화 ‘미운 오리 새끼’에서 형용하는 그대로였다. 대게 동물들은 어릴 적의 모습이 성장을 마친 후의 모습보다 귀엽기 마련인데, 어린 백조는 다른 어린 생명체들에 비해 못생겼다. 얼룩덜룩 때가 잔뜩 묻은 듯한 회색 빛깔의 작은 몸통에 삐죽삐죽 고르지 못한 깃털이 돋아 나 있었다. 작은 아기 백조들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동화 ‘미운 오리 새끼’의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어릴 적에 읽었을 때도,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 떠올려도 나에게는 다가오는 메시지가 많은 이야기다. 오리들 사이에서 본인만 다르다고 느끼며 외롭고 슬펐을 백조를 생각하면 한참이나 슬프다가도, 그런 슬픔이 나에게 큰 위로를 주기도 한다.
그날 저녁 나는 새끼 백조를 보고 ‘생각보다 못생겼다’라는 생각을 했다. 안데르센은 새끼 백조를 보고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를 만들었다. 내가 보고 그냥 지나쳐 보낸 것들이 안데르센의 눈에 비쳤다면 얼마나 멋진 이야기가 됐을까? 남들이 흘려 보는 것을 스쳐 보내지 않고, 생명력을 부여하여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자질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돌담에 한참이나 앉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