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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성 Jun 12. 2023

새벽에 찾아온 손님

6월의 스물여덟 번째 날


 오카리나 선율만큼 고운 소리 덕분에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어쩜 새들은 매일 같이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할까? 새벽 5시를 막 지난 시간이었다. 역시, 한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거리가 벌어 놓은 시간 차이 때문에 낮에 피로하더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어제는 종일 시장에 다녀오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포를 나누느라 피곤했는지, 집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곤잠에 들었다. 도착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시차를 극복한 것 같다.


 머리맡 선반에 두었던 휴대폰을 손에 쥐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민소매를 입어 훤히 드러난 내 어깨를 감싸는 건 새벽 공기였다. 서늘했다. 조심스럽게 바닥에 발을 디뎠다. 예쁜 에메랄드색 타일로 꾸며진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다시 보니 에메랄드색이 아니라, 빙산의 색과 비슷해 보였다. 까치발을 들어 천천히 바닥의 냉기에 익숙해지려 했다. 발가락이 차가운 타일의 온도에 익숙해진 것 같아 대담하게 두발 딛고 일어섰다.  


“(허)!”


 타일은 외마디 비명도 뱉지 못할 만큼 차가웠다. 놀라서 들이마신 숨을 입안에 잠시 머금었다가 밀린 부채를 갚듯 크게 몰아 내쉬었다. 냉기는 발바닥을 관통하고 두 다리, 엉덩이, 허리를 거쳐 머리끝까지 쩌릿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손에 꼭 쥐고 있던 휴대전화의 화면을 켰다. [메모장 : 구비 목록]에 ‘실내화’를 적었다.

‘오늘은 만사를 제쳐두는 한이 있어도, 꼭 마트에 가서 생필품 장을 보리라.’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기적어기적 거실로 걸어 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얼음 위에 발을 내딛는 듯한 감각은 다섯 걸음을 옮겨도, 열 걸음을 옮겨도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썰렁한 기운에 몸이 반사적으로 부르르 떨렸다. 새소리가 흘러 들어오는 창문을 보았다.


“자기 전에 창문 닫는 것도 깜빡했구나.”


 밤새 쉼 없이 드나들었을 바람. 그 바람은 집 안에 옅게 물든 나의 냄새를 부지런히 밖으로 퍼 나르고, 바깥의 냄새를 집 안으로 옮겨 들고 왔다. 그 덕분인지 서늘하고 푸르며, 싱그러운 것들의 향기가 거실을 가득 메웠다. 창문을 닫고 싶지 않아서 어젯밤 식탁 의자 위에 벗어 두었던 가디건을 걸쳐 입었다. 가디건과 내 살갗 사이에 차가운 공기가 스미지 않도록 옷감을 잡아당겨 몸통에 휘감았다. 그러고는 옷감이 풀리지 않도록 팔짱을 꼈다. 다소 거만한 자세로 거실을 둘러보았다. 아무렇게나 풀어 헤쳐놓은 캐리어가 불쑥불쑥 토해놓은 나의 짐 가지들 때문에 거실은 산만했다.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할까 잠시 서서 고민하던 찰나,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또 정리는 밀어두고, 카메라를 집어 알록달록한 소파에 웅크려 앉았다. 한동안 정리하지 않은 카메라에는 지워야 마땅한 사진들이 있었다.


 과거에 카메라를 마주 선 피사체들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옛 기억을 생생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과거에 갇힌 그들의 웃음은 지금까지도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마땅히 지울 사진이 없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아니. 카메라를 타고 한참 과거 여행 중이던 나의 집중을 흩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톡톡’


소파 바로 옆 베란다 유리창에서 나는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웬걸! 노랗고 작은 손님이 정중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고양이었다. 고개를 돌려 고양이를 보자, 고양이도 덩달아 나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아까 그 소리 내가 낸 소리가 맞아.’라고 말이라도 하듯, 또다시 앞발을 들어 베란다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솜방망이’라고 하는 고양이의 둥글고 작은 발이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는 솜사탕처럼 포근하고 사랑스러웠다.  


“들어와!”


 고양이는 한국인들이 ‘예의’를 중시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내가 동방예의지국에서 15시간 넘게 날아온 외국인이라는 걸 알았던 걸까? 고양이는 내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자, 그제야 바로 옆에 열려있는 공간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걸어 들어왔다. 고양이는 서슴없이 방에 들어와 이곳저곳을 훑고 다녔다. 길고양이는 아니었다. 분명 주인이 정성으로 빗질을 해주고, 깔끔히 돌봐준 고양이었다. 이탈리아에는 고양이를 반쯤  내놓고 기르는 사람들이 많다. 낮이면 고양이는 옆집 베란다에 마실 다녀오기도 하고, 지붕 위에 올라가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이 사실은 이전에 친구 T의 집에 갔을 때 처음 알게 됐다. T의 집에 놀러 간 나는 기대에 부풀어 고양이를 찾았지만, T는 고양이가 외출 중이라며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를 비롯한 몇몇 이탈리아 사람들)의 고양이양육법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직 캐리어도 제대로 풀지 않은 상태라 고양이에게 물 한 그릇 내어줄 대접조차 없었다. 이곳에는 아무런 ‘간식’ 소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는 홀연히 떠나갔다.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는 무연히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소파에 던져두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화면을 켰다. [메모장 : 구비목록]에 ‘고양이 밥그릇’를 적었다.

‘마트 오픈 시간에 맞춰 장을 보러 가야겠다.’ 다짐했다.


 새벽, 타지에서 남들보다 일찍 눈을 뜬 이방인의 집에 찾아온 고양이의 이름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탈리아 주인은 고양이를 ‘벨라’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본명은 앞으로도 알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나는 이 고양이를 ‘데니’라고 부를 생각인데, 운명(destiny)이라는 단어에서 생각해 냈다. 내 본명은 ‘김유성’이지만, 이곳에서는 본명 외에도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저마다 애정을 담아 만들어 준 애칭들이 싫지 않다. 데니도 이곳에서 새로 얻게 된 애칭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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