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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성 Jun 20. 2023

이탈리아에만 오면 자주 찾는 공간

7월의 첫 번째 날

신기하게도, 시르미오네의 날씨는 서울의 날씨와 비슷하다. 높은 확률로 대개 매일 그렇다. 서울이 맑으면 이곳의 하늘도 푸르고, 서울에 비가 내리면 이곳의 하늘도 음울한 빛을 띠다가 이내 비를 쏟아낸다.


“여기는 아침부터 계속 비가 와. 거기는 어때? 많이 더워?”


데구르르. 방금 일어나 뻑뻑한 눈알을 굴려 창밖을 보았다. 하늘과 바람이 만들어 낸 오늘의 색감을 확인했다.


“오늘은 날이 조금 흐려.”


이른 아침 이불에 휘감긴 모습으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잠들기 전 단정하게 정리한 이불은 앞뒤가 뒤바뀌어 있을 만큼 흐트러진 채로 내 몸에 둘둘 감겨있었다. 먼저 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했다. 한국의 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광장시장 빈대떡 먹고 싶다.’ 속으로 생각했다.

한 번 한식 생각이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먹고 싶은 것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삭바삭한 한국 치킨 먹고 싶다. 맞아 한국 프라이드치킨에는 묘하게 마늘 향이 섞여 있어. 아, 닭과 마늘. 뜨끈한 국물이랑 같이 닭 한 마리 먹고 싶다. 얼큰한 닭볶음탕도 좋겠다. 매콤한 거. 그래 곱창전골도 먹고 싶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은 최대한 한국 음식 자체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그리움과 미련은 그렇다. 한번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고 온 마음의 표면을 적신다.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때문에, 애당초 뿌리를 잘라버리려는 마음이다. 시르미오네에는 한식당이 없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한식당을 가려면 기차 타고 1시간을 이동해 밀라노에 가야 한다.  


 아무리 각고의 다짐으로 고향 음식을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지만,  비가 오는 날 한국의 국물 요리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을 마주하기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 씻고 우산을 집어 들고  근처 슈퍼에 다녀왔다. 가서 작은 배추 한 통을 살 생각이었다. 이탈리아 마트에서는 배추를 ‘Cavolo di Cinese’라고 표기한다. 직역하면 ‘중국의 배추’라는 뜻이다. ‘이게 왜 중국 배추야?’ 랩에 꽁꽁 묶여있는 배추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배추를 보고 서 있는데, 이곳에서 나의 외모만 보고 ‘Cinese(중국인)’라고 부르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배추의 표기를 노려보다가 ‘에이…. 쯥.’ 혀끝을 차며 배추를 집어 들었다. 더 이상 신선한 야채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맞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못마땅한 배추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배추된장국을 끓였다. 이탈리아에서 지낸 짧지 않은 시간 덕분에 한식 요리사가 됐다. 스스로 자신의 요리 실력에 굉장히 만족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내 요리를 최고로 사랑하는 손님은 늘  본인이다. 내 입맛대로 이것저것 넣어 많든 한식을 먹을 때면 늘 뿌듯하다. 빗소리를 들으며 깔끔한 국물. 후들후들 푹 익은 배추. 행복이 따로 없었다. 밥을 말아먹었으면 좋았겠지만, 밥이 없어 간간이 빵을 곁들여 먹었다. 배추된장국을 한 그릇 시원하게 비워내고, 비가 내리는 창틀에 화분을 올려 두었다. 배가 부르고 나니 그제야 화분도 밥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 내리는 밖을 보고 있자니, 아침에 날씨를 알려주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오늘 영상 통화를 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가족은 나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형식적 가톨릭, 실질적 무교이기 때문에 ‘기도’의 힘을 믿는 줄 몰랐다.  


“여기가 교황님이 있는 터전이라 그런지 기도빨이 잘 받는 거 같아.”


어떤 흐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화 중 성당 이야기가 나왔다.


“성당에 자주 가?”


“응. 미사에 참여하는 건 아니고, 그냥 시간이 나면 들러. 사실 종종 시간을 일부러 내서 들리기도 해.”


“가서 뭐 해?”


“뭐 하긴? 기도하지.”


자주 성당에 들러 기도한다는 딸의 말이 귀여웠는지, 부모님은 웃으시며 ‘기도할 게 그렇게 많아?’라고 물으셨다.  


“당연하지. 그중에도 가족 기도를 많이 하지.”


 우리 가족은 내가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는 이야기에 기뻐했다. 가족을 위한 기도가 너무 당연한 기도 제목이기 때문에 좋아해 줄 거라 생각하지도 못하고 흐르듯이 한 말이었는데, 기뻐하는 가족들을 보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매주 성당에 간다. 동네에 있을 때는 과일 상점 맞은편 길가에 있는 성당을 들르거나, 올드타운 안에 있는 아담한 성당에 들른다. 일요일에 다른 도시에 놀러 가는 날이면, 그 마을의 성당에 간다.  의도치 않게 ‘이탈리아 성당 도장 깨기!’와 같은 습관이 생겼다. 재작년 여름이었나. 어떤(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마 사소한) 이유로 마음이 고달팠다. 막상 집 밖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당장 만나서 대화를 나눌 친구도, 부모님의 집도, 그렇다고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녀서 기분전환을 핑계 삼아 다른 마을에 다녀올 수도 없었다. 길 잃은 강아지처럼 답답한 기분으로 벤치에 앉았다. 그곳에 앉아서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가는지, 바닥에 개미가 얼마나 많은지 수를 헤아려 보고, 그런 무의미한 놀이가 지겨워졌을 때쯤에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저 대화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대충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종소리가 들렸다. 단조롭고 부드러운 선율이었다. 근방 성당의 종소리. 종소리가 나를 부르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성당에 찾아갔다. 그날을 계기로 매주 성당에 간다.


 미사에도 참여하지 않아 본인을 ‘가톡릭’이라고 단정하기조차 민망하지만, 꾸역꾸역 사람들이 가장 적은 시간대에 성당을 찾아간다. 성당에 들어가서 앉아있으면, 그곳에는 분명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지만, 오랫동안 바깥에서 겉돌다가 집에 돌아간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어두운 조명과 차가운 적막으로 가득 찬 공기가 편안하다. 낯설지만 편안한 긴장감이 나를 감싸준다. 늘 가장 앞자리에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신과의 교섭을 시도한다. 촛불을 켜고 이내 참아왔던 걱정거리, 어리광을 쏟아낸다. 한참 이야기를 쏟아내다 ‘아차!’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사회성을 발휘한 대화로 그 시간을 마무리하기 위해 신에게 감사한 일을 언급하며 고마운 마음도 전한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들을 향한 기도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성당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다시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건 오로지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진심으로 시간과 마음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어 다행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설거지를 마칠 때쯤이면 빗방울이 잦아들었으면 좋겠다. 성당에 다녀올 수 있게. 어쩌면 기도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내가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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