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세 번째 날
호텔에서 판매할 카페 메뉴들을 전격적으로 개편했다. 작년 여름, 조식 서비스 제공 외의 시간에 간단하게 식사로 해결할 수 있을 만한 메뉴를 찾던 손님들이 많았다. 그런 손님들에게는 디저트 메뉴보다, 끼니가 될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판단하며 카페 메뉴들에 변화를 주게 됐다. 새로 바뀐 메뉴들을 위해, 메뉴판도 새 단장을 해야 했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도 메뉴판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른 시간에 출근했기 때문에 퇴근도 일찍 하는 날이었다. 분침과 초침이 ‘3’ 코앞에서 서성이는 시침의 엉덩이를 때리는 순간, 나 또한 찰싹, 엉덩이를 맞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퇴근이다. 오일 파스텔과 스케치북을 챙겨 들고 호숫가로 나왔다. 호숫가에는 저마다 수영복을 입고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물속에 들어가 시원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벤치에 앉았다. 이리저리 엉덩이와 다리를 옮겨보며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았다. 그러고는 무릎에 스케치북을 올리고, 오일파스텔을 꺼냈다. 녹차 크림 라떼, 티라미수 크림 라떼와 같이 유럽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메뉴들을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손에 힘을 풀고 조심스럽게 밑그림을 그렸다. 손에 힘을 너무 뺐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그린 그림 마냥, 밑그림은 도화지 위에 삐뚤빼뚤한 선으로 남았다. 처음에는 오일파스텔을 어떻게 써야 예쁜 색감을 낼 수 있는지 몰랐는데, 여러 번 그리다 보니 예쁘게 색을 뭉개는 법을 터득하게 된 거 같다. 샌드위치를 그리고, 여러 음료를 그리며 한창 열중할 때쯤, 허벅지 위로 미색과 회색이 섞인 듯한 색상의 기괴하고 덩어리 진 액체가 떨어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게 뭐야!”
들어주는 사람도, 대답해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꽤나 큰 소리로 혐오감이 섞인 감탄사를 외쳤다. 처음 본 걸쭉한 액체였지만, 1초 만에 그것이 새똥임을 알 수 있었다. 새똥, 새똥이라니! 새똥 맞는 일은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새똥은 이렇게 아무에게나 조금의 언질 없이 툭 하고 떨어지는 거구나. 조용히 들이닥치는 불행 같기도, 아무런 예고 없이 들어오는 행운, 이벤트 당첨 같기도 했다.
“그래도 머리에 맞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허벅지 위로 푹 퍼진 그것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안 그래도 더운 날씨 탓에 끈적끈적하고 불쾌했던 몸이 더없이 불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급하게 가방을 뒤적였지만, 휴지, 혹은 새똥을 닦아낼 수 있는 휴지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아쉽게도 벤치에서 일어나야 했다. 엉거주춤 짐을 챙기며, 새똥이 오일파스텔 초록색 구역까지 오염시켰다는 것을 발견했다. 새똥이 더 많은 것들에 묻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짐을 챙겼다. 짐을 챙겨 성당옆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이 카페는 테라스가 호수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적당히 시원한 바람과 철썩이는 물소리를 듣기에 아주 좋은 카페이다.
카페에 들어와 자리를 잡기 전, 가장 먼저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에 들러 꿉꿉한 흔적을 닦아 냈다. 카페로 걸어오는 동안 살짝 굳었는지, 생각보다 잘 닦이지 않았다. 휴지에 물을 적셔 허벅지를 닦아내며, 생각하는 똥의 형태가 아니라 그런지 생각보다 덜 찝찝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건 누군가의 분비물이라고 생각하니 말로 이루어 표현하지 못할 만큼 찝찝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뒤, 테라스에 응달진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음료를 주문하고, 편안하게 앉고 나니, 그림을 그리기 싫어졌다. 영감은 매 순간 찾아오는 게 아니다. 휘황찬란하던 영감은 방금 새똥에 의해 훼방당했다. 뺀질뺀질 맞은 핑계에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그 사이 테이블 위에 놓인 아포가토를 한입 먹었다. 스케치북을 펼쳐두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밝은 목소리로 무얼 하냐고 물었다.
“혼자야? 성당 옆에 카페 간 거 같은데?”
카메라로 비춘 카페의 테라스를 보자, 친구는 단번에 내가 있는 곳을 알아맞혔다.
“맞아. 방금 호수 근처에 앉아있다가 새똥 맞아서 겸사겸사 피난 차원으로 자리를 옮겼어.”
“새똥? 그거 행운인데.”
“새똥이 무슨 네 잎클로버도 아니고, 행운이라고?”
“응. 새똥 맞는 거 행운이야.”
이외에도, 이탈리아 친구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새똥 맞았다는 이야기할 때마다 이유 모를 축하를 받았다. 세뇌당하듯 곧 가다 올 행운에 대한 예고를 들어야 했다. 곧 다가올 나의 행운은 새똥 때문이 아니라, 무수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행운 주문’ 덕분일 것이다. 말은 씨가 되니까. 새똥 맞은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예상했던 건 안타깝다는 반응이었는데, 그와 정반대로 축하를 한 아름 듣고 나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빠른 판단이 어려웠다. 그저 몰랐다며 웃어 보일 뿐이었다.
정말 새똥을 맞고 나면, 행운이 찾아올까? 아니면, 재수 없는 일을 당한 사람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신일까? 아마, 새똥 맞는 건 모두에게 매일같이 발생하는 흔한 일이 아니라, 조금 특별한 확률에 속해야만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희박한 확률을 행운에 빗댄 걸 수도 있겠지.
이탈리아 영화 ‘인생의 아름다워’에 나오는 주인공을 떠올려 본다. 처참한 독일군의 학살 현장에서도 사랑과 웃음을 잃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안타까운 상황에 부닥쳤을지라도, 인생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빛으로 물들였던 이탈리아 사람들. 그 옛 습관 덕분에 아직도 이탈리아인들은 세상의 모든 구석, 심지어 새똥까지도 아름답게 해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저녁에 엄마와 통화하며 낮에 새똥 맞은 이야기를 했다. 이에 이어 모든 이탈리아인들은 새똥을 ‘곧 도래할 행운’으로 간주한다고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에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딸, 거기서 좋은 일 있으려나 보다. 새똥 맞으면 좋은 일 생겨.”
그랬다. 이탈리아 사람들만 매사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세상의 모든 구석을 아름답게 보는 게 아니었다. 한국인도 마찬가지였다. 나만 새똥을 재수없는 일로 여겼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