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나는 그녀와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그녀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왠 일로 먼저 왔니?"
"그러고 싶었어." "지난 주에 여기서 몇 시간을 기다렸지 뭐야!“
그녀는 투정하듯 어리광을 부린다.
"나는 분명히 오늘을 얘기했었는데“
"기다릴만 했어. 오빠의 마음도 알 것 같았고"
"이거“
내가 주었던 비망록을 돌려준다.
나는 그냥 그녀를 바라보며 얘기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아"
"나도 오빠를 사랑했었을 수도 있었어. 아니 사랑하게 되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나의 선택과 남자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오빠, 고마워"
"결코 있지 못할거야."
"오빠만큼 나를 사랑한 사람이 결코 없었다는 것도,
앞으로 누구도, 내 남자친구조차 오빠만큼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어"
"나는 오빠에게서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을 받았어."
"솔직히 오빠의 사랑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오빠가 알잖아? 나보다도 나란 사람을 오빠가 더 잘 알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오빠의 사랑에 감사할 뿐이야!“
"그래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집으로 함께 돌아오며 예전처럼 가볍게 농담도 하고 장난도 쳤다. 그리고 그녀의 집 앞에서 마지막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인 이별의 포옹을 무심한 듯 하고 돌아섰다.
잊지 않겠다는 여자의 진실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녀는 7년 전 자신의 약속을 그 동안 기억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필요에 의한 선택적 망각. 나를 좋아했던 많은 여성들도 이제 와서 돌이켜 나를 좋아했다고 고백하지는 않을 것이다. 순간 그녀들은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마도 그녀의 결혼생활에 위기가 올 때면 그녀의 선택에 대한 책임 정도의 나의 사랑은 기억할 것이다. 그러한 여자의 일반적인 특성도 진화론적 이유가 있는 것이고, 이제 나이가 든 나 역시 그러한 특성이 생겨나는 것은 개인의 역사에 적응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흔히 남자들은 여자의 과거를 용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성적문제를 순결이란 굴레를 씌우고, 마치 하얀 것이 더럽혀지면 회복될 수 없는 것으로 형상화 하여 여자 스스로 굴레가 되어버리는 현실은 아직도 존재한다.
성이란 남녀의 문제에 앞서 인간과 인간의 신의라는 도덕적 인식과 부여되는 의미와 가치로 접근함이 옳을 것이다. 여성은 순간의 가치를 존중한다. 과거의 사실은 여자에겐 선택적 망각이 되고, 현재 충실해야 하는 남성에게 최선의 의미를 부여한다. 여자의 과거를 거론하는 남자는 참으로 졸렬한 남자가 되어 결국 후회를 하게 한다. 내게 충실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 내게 충실할 수 있도록 여자의 작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 이것은 남자에게 있어 행운인 것이다. 그것은 남자의 옆에 있는 여자는 항상 그 현실에 충실하여 남자의 가장 소중한 의미로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인생에 다시 할 수 없는 모든 마음을 다한 것이다. 후회는 없었다. 내 자신이 그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그녀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20년이 흘렀다. 한 번도 그녀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가지고 그녀를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나에게도 역시 선택적 망각이란 방법을 경험하게 한 것이다. 세상살이가 생각만큼 쉽지 않아 다시 인생을 다잡아 보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니 까맣게 잊었던 그때의 감정과 고뇌가 다시 되살아나 나 스스로가 빠져들고 있다는 자괴감은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러한 모든 자괴감을 가슴에 안고 세상을 살아간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며 사랑이란 열병을 필연적으로 경험한다. 그것이 결국 사랑에 대한 열정과 공허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가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왜일까? 나는 세상 사람들의 그러한 노래에 속았다는 감정으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엄청난 고통이었음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 때문도 아니다. 내 자신이 만든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었다. 내 육체 구석구석에 입력된 사랑의 상처는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랑은 아름답다 노래한다. 나의 모든 희생을 강요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상처의 크기만큼 사랑의 크기를 경험하게 한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내가 바랐던 것도 아니다. 인생에서 자신을 온전히 버리기를 강요하는 경험은 사랑이란 것을 통해 유일하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결국 내가 누구를 사랑했다는 사실조차 스스로 비웃게 되는 것도 사실이 되고 만다.
나는 과연 얼마나 희생을 하였던 것인가? 단지 부끄러움만이 남았다. 아마도 인생이란 것은 그러한 사실을 알게 하고자 사랑을 인간에게 강요한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다.' 그것은 곧 역설인 것이었다. '그래도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을 나의 인생에 강요하는 것이었다. 절실한 바램을 알게 했다. 나에게 끝없는 희생을 강요했다. 스스로 낮아짐을 강요했다. 나의 배고픔을 알게 했다. 그리고는 절망을 알게 했다. 인간은 사랑이란 고백이 자신의 욕망을 내포하는 것이기에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하려 한다'는 겸손을 스스로 다짐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랑은 결국 '사랑했다'는 결과를 남기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스스로 자긍심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껴야만 하는 이러한 사실만을 나의 역사에 남긴 것이다.
돌이켜 나는 그녀와의 어떠한 모습이나 순간에도 미움이나 증오심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한참을 지난 지금의 나이에도 감정의 기억이 주위의 작은 것들에도 상처를 입고 화를 내게 되는 자신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당시는 이기적이고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행동조차도 이해하려 애를 쓰며 스스로를 도닥거렸다. 또한 감정의 이기심을 알게 하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당연히 내게 주어져야 한다는 인간의 기대와 이기심을 함께한다는 것도 사실이 되었다.
나는 나의 인생에 당면할 수밖에 없었던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이다. 사랑한 것이다. 나의 사랑은 스스로 특별한 것이라 인식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그것은 누구나가 경험하는 보편적인 인생에 불과한 것이다. 단지 나는 남보다 그것에 좀 더 열중하였다는 사실만이 있었다. 그러한 사랑의 경험이 다행스럽게도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에 대한 인간적인 한계를 경험하게 한 것이 된다. 삶에 대한 겸손, 그러한 인식은 나를 보다 풍부하고 여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며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삶의 힘이 되었다.
사람에게 있어 경험을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사유가 없이 말초적으로 느낀 사실만을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고정관념에 자신을 묶어놓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오히려 경험이란 것이 자신을 좁은 시야에 가두는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수년 동안 일본서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얘기 중에 모든 경우를 '한국은 이래서 안돼!' 라는 말을 한동안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는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일본에 대한 그 친구의 우월한 편견을 꼬집었다. 그것에 대한 그 친구의 결론은 대화의 핵심을 벗어나 '내가 일본을 살아 보았느냐' 라는 대답으로 결론지으려 하였다. 누구나가 경험하게 되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경험주의의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어릴 적에 누구나 경험하는 예를 들어보겠다. 서울 구경을 하고 온 친구가 서울에 대하여 이것저것을 말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다른 친구가 자기도 아는 서울에 대한 나름의 주장을 한다. 한참을 싸우다가 "너 서울 갔다 왔냐? 나는 서울구경을 하고 왔다." 이 한마디에 모든 싸움은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이러한 유아기적 사고를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20세기 미국의 실용주의를 발전시킨 경험론은 현대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그러한 과학의 발전은 과학만능주의를 생산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러한 현대 미국사회의 현실주의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바하는 제주시의 반도 안 되는 좁은 영지를 평생 벗어난 적이 없었다. 평생을 지방 영주의 궁정악장에 불과했지만 세계음악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바하의 음악은 현대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른다. 서양음악의 발전에 동떨어져 있는 다양한 동양음악이나, 폴리네시안 음악조차도 바하의 음악을 바탕으로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음악적 보편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헨델은 당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섭렵하였다. 그는 다양한 민속 음악을 집대성하였고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영국에서 공작 작위를 받기도 하였다. 그의 풍부한 경험은 다양성을 통합하였고 그의 업적은 그를 바하와 비교하여 음악의 어머니라 부른다.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경험에 의한 결과를 가지고 원자의 원리를 발견한 것이 아니다. 바하 역시 마찬가지다. 인식을 한다는 것은 직관을 통하여 사고적 경험을 갖는다. 이것이 직관적 경험이다. 이러한 직관적 경험은 직접적인 경험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헨델의 음악적인 완성 역시 경험만으로 축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한 사실을 사유를 통하여 직관적 경험으로 접근한 결과물인 것이다. 나는 나의 사랑의 경험이 이 모든 과정을 알게 하였고 또한 그것들을 담아보려 애를 썼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부족하나마 이룬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충년(充年)의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