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결론은 없다①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삶의 결론은 없다①


늦은 대학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지난 1학년 2학기부터 연속 3학기가 ALL F였다. 성적이 3학년 1학기부터 'ALL A'를 시작으로 계절학기에 가능한 모든 학점을 전부 다시 신청했다. ALL F였던 51학점 중에 40학점을 회복했다. 늦은 공부는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다. 나는 다시 유학을 꿈꿨다. 함께할 사람도 있었다. 나의 아내였다.


나의 아내가 나를 받아주고 내 여자가 되어 주었을 때, 나는 자부심으로 내 아내가 그저 자랑스럽기만 했다. 유난히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정말 아름다운 여자다. 나의 인생에 있어 두 번째 사랑은 불가능하다 생각한 내 곁에 나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은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사실 나의 인생에서 온전히 ‘나의 여자’로서의 존재는 나의 아내가 처음이었고 그러한 감정은 감동 그 자체가 되었다.


나의 아내를 알게 된 것은 20살 무렵 교회의 예배시간에서이다. 아내는 당시 중학교 3년의 앳된 모습이었지만 예배 중간에 특송을 하는 중창단의 피아노 반주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 여학생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내가 앉아 있던 2층에서 멀리 내다보이던 여학생의 모습이 꽤나 인상에 남아 있었다. 이후 6년이 지나 대학에 다시 복학하니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당시 2학년이었다. 피아노가 전공이다. 음악학과 내에서는 인기가 꽤 많았다. 아내의 연주 실력이 전 학년 중에 최고였을 뿐만 아니라 반주가 필요한 학생들은 줄을 서서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아내는 천재였다. 드물게 타고난다는 절대음감의 소유자다. 그녀의 연주능력은 한 번 들은 곡을 피아노로 즉석에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특출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냥 된다는 것이 아내의 대답이었다. 처음에 학교에서 아내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조용하지만 당돌하고 도도했다.


음악학과 내에는 각자 자기 전공이 있다. 나는 성악이다. 매주 담당 교수에게 개인레슨을 받으려면 새로운 곡을 가지고 연습을 해야 한다. 시험이나 개인 연주회가 있을 때는 피아노 반주가 필요한데 피아노반주에 선뜻 응하는 피아노 전공자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성악은 개인레슨 때마다 반주자가 필요했으니 피아노 전공자들의 마음을 사는 것도 학교생활의 일부였다.


각 학년은 저마다 최고라고 자부하고 인정받는 친구들이 있었다. 피아노를 전공했다고 전부 반주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피아노곡은 잘 할 수 있지만 반주에 영 소질이 없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 친구들은 반주곡을 나름대로 연습해야 하니 반주를 맡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보통 기말 시험 때, 자신의 곡을 제외하고 10여명에게 반주를 하여 주었다. 나는 가끔 있는 교회 예배시간에 특송을 하게 되면 성가대 반주자였던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그래서 아내는 학교에서도 자연스레 나의 전용 반주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타고난 고음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음을 갖고 태어난 가수는 드물다. 테너를 전공하고도 음역을 정복하지 못하고 바리톤으로 전공을 바꾸는 사례도 흔하다. 그래서 고음이 탁월한 테너는 학생시절부터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는다. 아내는 세계적인 테너들을 유독 좋아했다. 세계적인 테너의 음반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필요한 곡이 있으면 아내에게 녹음을 부탁하여 내 연습곡을 연습하곤 했다.


인연이란 것은 이렇듯 자연스럽게 모든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아내는 학교에서 처음 나를 보았을 때부터 특별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레슨시간에 지정반주자도 없이 눈앞에 있는 각 학년 최고의 피아노 반주자만을 골라 레슨을 받는 나의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아내 역시 불현듯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사랑이란 것을 믿지 않았다. 나의 아내는 사랑이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라 믿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학교에서의 나의 방황과 삶의 고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에 대한 호기심과 아내의 측은지심이 나에 대한 사랑을 키운 동기가 된 것이다.


그녀와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하고 나는 다음날부터 내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지난 12년 동안 내가 사랑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은 많았다. 유독 나의 아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내가 나를 받아줄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이유는 모른다. 나는 아내에게 나의 비망록을 주었다. 아내는 밤을 새워 그 글을 읽었다. 다음날 아내를 다시 만나 나는 내 모든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소진해 버렸고 지금은 누구를 자신 있게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나를 아내가 받아 준다면 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진심을 다해 고백하였다. 아내는 허락했다. 새로운 사랑은 참으로 자연스럽고도 쉽게 사뿐히 날아 내게 스며든 것이다.


열림은

언제나

딴청부리며 비껴있는

건너편 창문을 마주하고 있다.


창문을 닫는다.

커텐이 햇빛을 가리우고

책상 위 백열등이 밝혀지면

분노와 애증은

다시 덧문마저 열어제껴

햇빛에 한껏 푸르른

사랑을 헐떡이며 들어마신다.


많은 시간 속에 얼룩진

뿌연 유리창 너머

멀어지는 수평선 밖에도 세계는 존재한다.

얼룩진 안타까움마저 열어제끼면

세상 또한 밝게 다가올 수 있음도

저미며 떨려오는

열 줄 상실감으로 늘어진다.


27년을 담은

낯설어버린 이 공간에

설움을 깔고 누웠다.

고운 햇빛이

문지방을 타고

홑이불의 사각거림으로

바닥을 타고 올라오며

시린 가슴을 덮는다.

뻗쳐든 두 손

눈부신 두 눈

멀도록 가로젓다가

두 팔로 태양을 감싸 안으려 하였다.


내가 맨 처음 당신을 보았을때

나처럼 당신도 어린아이였다.

자라난 시간 속에

막 피어난 당신을 보았을땐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에

그저 끄덕이며 외면하고 있었다.

순수와 일관성을 향한

깨어진 성실에

늘어진 육체의 껍데기만을 이끌고

다시 그대를 바라본다.

그토록 갈망하며 인내해야했던

진실과 믿음과 사랑이

당신의 두 눈 속에 박혀 빛나고 있었다.


환희.

감동! 그것은 참으로 따뜻했다.


결벽 속의 망설임.

당신을 향한 상처난 순결과

한이 서린 눈물을

그대에게 온전히 맡길 수가 없었다.


파란하늘과 함께

태양의 빛으로 맑게 피어올라

밝음을 따라 흐르는

새하얀 뭉게구름.

송송히 맺히는 땀방울 사이로

목덜미를 스쳐 흐르는

한줄기 서늘한 미풍.

오랜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추억의 느낌 속으로

나를 이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허공에서 주섬거리는

생의 슬픔을

당신만이 붙잡아 준 것이다.


아름다움.

환희와 기쁨.

부족을 채우는 자기만족과 충족함.

의지를 통한 자신감과 극복.

사랑에 겨운 행복.

무지를 일깨운 자각.

생명을 향해 뻗쳐든 무수한 가치와 그 의미.

인간의 존재방식과 상호관계가 나아가는 필연적 방향.

보다 바름을 지향하는 생존의 노력.

능동적인 육체의 움직임을 통한 감각의 확대와 그 즐거움.

정적인 육체의 떨림을 통해 감지되는

잔잔히 차고 넘치는 충만함.

또한, 이런 것들과 대립되는

무수한 생각과 감정과 말초적인 감각.

삶의 구체성.

가슴에 벅찬 다양함이다.

이 모든 것을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많은 자신감과 여유를 주었다. 어느덧 우리는 소문난 캠퍼스커플이 되어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연습곡을 내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좋아 했다. 피아노곡에 문외한인 나도 상당한 수준의 감상 능력을 갖게 된다. 다른 후배들은 아내에게 더 이상 반주를 부탁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에게 먼저 청탁을 했다. 나만의 여자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혼을 해서 유학을 같이 하기로 약속을 했다.


아내와의 만남과 동시에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운전면허 시험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차를 내 것처럼 타고 다녔다. 아버지의 중형 자가용을 타고 학교를 다니는 당시 나는 부유한 대학생의 전형이 되었다. 누구나 나에게 아내의 안부를 먼저 묻고, 아내에게 나의 안부를 묻는다. 아내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보내고 아내의 집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온다. 잠시 떨어져 있기를 두려워 할 만큼 우리는 서로가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마치고 있을 무렵, 아내는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양가 집안은 서로의 결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지금에 와서도 아내가 썼던 편지의 첫줄을 읽는 순간 아득하여지는 감정으로 주체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오빠에게'

너무 오빠에게 몰두한 나머지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맙니다.

어디서 오빠의 목소리만 들어와도 내 전신이 감각이 마비되어 나는 오빠를 느끼기 위하여 너무도 분주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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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 앞으로 어떤 이가 될지도 불투명하군요. 언제부터 이렇게 흐려졌는지...

가끔은 정말로 아무도 모르는 이름으로 살고 싶고,

도시가 싫고, 내 욕심이 싫고

다만 그저 인간의 모습으로 그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앞으로 나에게 많은 충고와 격려 부탁해

그리구 오빠 사랑한다.


일요일밤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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