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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Aug 28. 2022

전 남편이기 이전에 아이 아빠.

전 남편은 전 남편인데 아이 아빠. 아이의 친아빠. 친부. 생물학적 친부. 빼도 박도 못하게 닮은 부녀. 달리는 폼부터 얼굴 모양새, 성격까지 개구진 것도 닮아서, 거짓말도 못하는 친부. 그 사람은 딸을 정말 아낀다. 면접교섭은 2주에 한 번씩 행해진다. 2주마다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는 아이 아빠의 마음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서글플 때도 있을 것이고, 기쁠 때도 있을 것이다. 온 사랑을 다 쏟아부어 주겠지.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겠지. 아이에게 잘하려고 노력하겠지.


하지만 당신은 딸을 재울 때 매일마다 아이가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 아이가 등하원할 때 서 바닥에 나동그라진 모습을 보진 못하겠지. 등까지 싼 똥이 묻어서 얼결에 샤워하게 되는 건 잘 모르겠지. 아빠 보고 싶어! 하고 우는 모습은 보지 못하겠지. 당신은 아이의 모든 모습을 볼 수는 없겠지. 뭐, 나도 어린이집에 보내는 처지라 아이의 모든 모습을 본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아이가 크는 모습을 보지는 못하는 거잖아, 당신은.


그러나 당신은 아이의 친부. 빼도 박도 못하게 친부. 너무나도 닮은 친부. 당신은 면접 교섭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한다. 아이 방학 때는 일주일 동안 데려가서 돌보곤 한다. 바캉스를 간다고 며칠 동안 데려간 적도 있다. 이번 연휴에도 당신은 아이를 데려갈 예정이다. 당신은 아이를 사랑하는가? 당신은 아이를 아끼는가? 당신은, 아이의 어떤 모습도 수용해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가? 이건 나에게 묻는 질문. 당신이 아니라 나에게 묻는 질문. 당신은 준비가 된 것 같으니까. 당신은 아마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내게 힘이 되어 줄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웃긴다, 전 남편이라는 존재. 이렇게나 힘이 되다니. 이렇게나 지지가 되다니. 연휴가 끝나자마자 딸아이는 강남세브란스에 입원을 해야 한다. 그래서 왼쪽 관자놀이의 혹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 연휴 내내 당신이 데리고 있다가 입원을 시키고 수술날까지 돌볼 테니 수술하는 날 올라오라고 당신은 말했었다. 고마웠다. 아이를 지키는 사람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아이를 목숨 걸고 지킬 만한 사람이 나 혼자뿐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고작 수술 전후로 돌봐 준다고 이렇게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당신은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아이가 수술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게 다였는데, 당신은 크로스체크를 해 보자며 다른 병원에서의 검사도 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었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혼했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돌보고 있다. 당신은 멀리서 지켜보고 나는 가까이서 지켜보고. 당신은 2주마다 내려와서 아이를 지켜보고 나는 매일 아이를 지켜보고. 당신은 큰일이 생길 때마다 내려와서 아이와 나를 지켜준다. 나도 지켜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당신이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제발 죽지 말아 달라. 죽지 말고 건강히 살아서 내 아이를 지켜 다오. 내 아이를 지키는 건 나조차도 지켜주는 것. 난 그렇게 느꼈다. 당신에게서 안정감을 느낀다. 우리의 거리감이, 오히려 더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가끔 당신과 연애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우리 좋았지, 좋았더랬지, 정말. 이제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이 가정이 깨어진 데에는 우리 둘 다의 이유가 있었던 거고, 좁혀질 수도, 꿰매질 수도 없는 것이었으니까. 우리는 헤어지는 게 나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수도 없이 말하는 것은, 우리 사이에는 딸이 있다는 것. 우리 딸이 우리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는 것.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말이 맞다. 나는 전 남편인 당신과는 떨어져 있고 싶지만, 아이 아빠인 당신과는 연결되어 있고 싶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 당신이 아이 아빠라서 다행이다. 당신 같은 사람이, 아이 아빠라서 천만 다행이다.


당신에게 카톡을 보내면 1분 안에 답장이 오고, 당신에게 전화를 하면 곧장 받는다. 당신은 결혼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연락 문제로 나를 고생시켜 본 적이 없다. 당신은 항상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OO이 몇 시에 일어났나요? 하는 내 카톡에 음성 메시지로라도 바로 답장을 하는 당신.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딸을 지켜 줄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아이 아빠로 선택했다는 데에 기쁨과 안정감을 느낀다. 이혼한 마당에 이런 게 뭐가 기쁘고 안정감을 느낄 일인지 모를 이도 있겠으나, 나는 그렇다.


내 앞길은 요원하다. 막막하다. 그런 내 삶 속에서 그나마 나를 지탱해 주는 것들은 가족이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내 딸. 그리고 당신. 가족이라기엔 멀고, 남이라기엔 너무 가까운 존재. 이혼해 버린 당신. 이제는 전 남편이 되어 버린 당신. 당신을 나는 가깝게 느낀다. 남보다 훨씬 멀리 있는데도, 감정 교류를 전혀 하지 않는데도, 나는 가깝다고 느끼는 당신. 당신은 내 전 남편이기 이전에 아이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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