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드레 Oct 18. 2024

균열된 보통의 민낯.

영화 <보통의 가족> 리뷰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은 2024년 10월 16일 개봉했다. 제48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헤르만 코흐의 <디너>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2009년에 출간된 이후 4번이나 영화화될 만큼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을 지닌 작품이다. 같은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공감과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반영하고 있다. 영화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계급화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어른들의 왜곡된 시각이 어떻게 아이들에게까지 고스란히 답습되고 있는지를 담아내고 있다. 도덕성보다는 부의 축적, 사회적 지위가 우선시 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의 '보통'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모두가 직면하지 않으려 했던 기꺼이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보통의 가족>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물질적 욕망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살인자의 변호를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재완.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자상한 소아과 의사 재규. 자녀 교육과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 연경. 어린 아기를 키우며 가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지수.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은 흠잡을 데 없는 평범한 가족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발견하게 되면서 사건을 둘러싼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이들. 신념을 지킬 것인가, 본능을 따를 것인가? 인생의 모든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늘날, '보통'이라는 기준이 더 이상 보통이 아닌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기준이 엄격해졌거나 도덕적 수준이 낮아졌다는 의미일까? 여러 사회 문제는 복합적인 원인이 얽혀있지만, 누구도 그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처럼 <보통의 가족>은 정상 가족이라는 허울 아래 숨겨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깨진 유리처럼 쉽게 깨질 수 있는 양심을 그려내며 사회적 압박과 개인의 도덕적 선택이 얽히는 복잡한 상황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보통의 가족이라는 단어와는 다르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변호사,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 단어부터도 보통을 넘어선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삶 혹은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가족의 모습이다. 보통의 상대성이 이토록 극명하게 드러나는 가정이지만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보통의 도덕적 기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보편적인 도덕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영화 속 가족은 자녀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한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전문직 부모, 모범적인 자녀를 둔 '보통'의 가족으로 비치기를 원하며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자식들의 범죄를 숨기려 한다. 보통을 넘어선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도덕적인 선을 넘어선다. 진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합리화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자녀의 범죄 앞에서 그들의 고고한 도덕적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보통보다 더 아래의 추함을 보여주는 부모들의 얼굴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게 만든다.



회개 (悔改)란,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잘못을 털어내고 반성이라는 이름 아래 회개를 통해 자신의 위안을 찾는다.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이용'하고 회개하는 것은 진정한 속죄의 의미도 아닐뿐더러 '회개'라는 의미를 퇴색시킨다.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 그들의 회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또한,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위선에 대해 논한다. 법은 정의가 아니다. 형식적인 반성과 적절한 용서는 오로지 법 자체로 존재하여 그 상황을 판단할 뿐이다. 법의 맹점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많아질수록 그 존재는 더욱 무의미해질 수 있다. 스스로 최소한의 선을 지키지 못한다면, 법은 결국 유명무실한 존재가 될 것이다.


지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 '선'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유동적이고 상황에 따라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법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수많은 폭력과 선의를 가장한 위선은 어느덧 '보통'의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법은 곧 정의를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형식적 일지 모를 반성과 '적절한' 용서는 법 자체로서만 존재하며, 그 상황을 판단하는 데 그칠 뿐이다. 이러한 현실은 법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영화 속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세 번의 식사 장면이 나온다.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들의 감정은 점차 변화를 보인다. 연경과 재규는 봉사활동을 열심히 다니고, 돈보다 명예가 더 중요시하는 이상적인 부부이다. 하지만 아들 시호가 사건에 연루되면서 이들의 위선적인 민낯이 드러난다.  연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호를 변호하기에 급급하다. 먼 나라의 기아를 보며 동정의 눈물을 흘리던 연경은 자신이 아들이 죽인 노숙자는 겨울이 되면 얼어 죽었을지 모를 사람 아니냐며 시호를 옹호하는 모순을 보인다. 재규는 자수시키기 위해 차까지 끌고 갔지만 결국엔 죄를 덮는 선택을 한다. 반면, 재완은 거대 로펌의 변호사로 어떤 범죄자여도 변호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고 자수를 권유하려 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건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고 행동하는 인물들과는 차이가 있는 '지수'라는 인물에 흥미로움을 느끼게 된다. 지수는 재혼했다는 이유로 이 이야기에서 절대적으로 배제된 인물이지만 그만큼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와 감정에 휩싸여 갈등하는 동안, 지수는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의 모습을 냉정하게 관찰한다. 영화 속에서는 깊이 다뤄지지는 않았으나 지수라는 인물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지수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충분히 입체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수많은 이야기와 주제에 의해 그녀의 이야기가 뒷전으로 밀린 듯한 느낌이다.



영화 속에서는 보통의 기준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하는 대신, 순식간에 바뀌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시선에서 출발한다. 목격하는 사건 속의 인물들의 입장이 변화하며 '위선'이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던 인물들조차도 상황이 악화되면서 점차 도덕적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내적 갈등과 타협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은 더욱 중요해진다. 결과적으로 죄를 그대로 덮었을 때의 문제 그리고 그 어른들의 시각을 아이들이 그대로 답습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사회의 계급화가 생각보다 더 깊숙이 우리 삶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원작소설이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딜레마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인 만큼 영화는 한국의 특수성을 잘 녹여내었다. 이 영화는 오히려 이바노 데마테오 감독이 2014년에 연출한 <더 디너>의 리메이크 작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설정은 비슷하지만 한국 사회의 맥락에 맞춰 변형된 캐릭터와 사건들을 통해 독특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원작 소설에 나왔던 유색 인종 입양아, 친자식과 입양아, 폭력성의 유전과 같은 내용이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지만 한국 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다뤘다.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와 개인의 도덕적 판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각 인물들의 선택을 통해 "나는 이 중에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https://brunch.co.kr/@mindirrle/540


https://mindirrle.tistory.com/124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담은 그 마음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