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1908/03/08. 2018/03/08. 2016/05/17.

by 부뚜막위고양이

‘패션’은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갖고 있는 멋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멋을 어떻게 표현하면 나는 옷으로 하루를 색칠한다는 기분으로 옷을 입는다. 칙칙한 색으로 덮는 날도 있고 한 가지의 색에 주목시킬 때도 있고, 어울리는 색상들을 찾아 조화를 이루는 날도 있다. 이렇듯 그날의 기분과 인상을 바꿔줄 수 있는 게 아무래도 옷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옷을 신경 쓰기에는 우리는 출근이나 등교 전 많은 일을 해야 된다. 우선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야 한다. 그리곤 씻고 밥 먹을 먹어야 하며 여성의 경우 화장하는 시간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려면 출근, 혹은 등교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적어도 6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해야 한다. 아침에 정신없이 옷을 고르고 거울 앞에 서면 왠지 별로인 날이 있다. 전날 저녁에 이렇게 입고 나가면 좋겠다 싶은 옷들도 아침만 되면 구려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부분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다. 억지로 안 맞는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그날은 하루 종일 안 맞는 옷에 시달려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한창 유행하는 그래픽 디자인되어 있는 다양한 색상의 티셔츠 그리고 흰색, 검은색 티셔츠와 깜빡 유행하는 재킷들, 그리고 다양한 디테일이 들어간 바지이지만 입기엔 너무 과한 것들도 한 무더기로 산 적이 있다. 참 옷은 많은데 옷장을 열어보면 입을 옷 참 없다. 급한 대로 얼렁뚱땅 입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첫 번째로 ‘옷은 절대로 그해 베스트를 사면 안 되는구나’ , ‘스테디 한 제품을 사는 것이 탁월한 선택이구나’ 란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항상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는 나만의 스타일이 확고해야 되는구나.’ 두 번째로 ‘가격’도 무시할 수 없다. 값싼 옷을 여러 벌 사는 것보다 다소 값이 나가지만 오래 입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질적인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셋째, ‘무지 디자인’은 피하자. 아무래도 아무 디자인이 없는 제품은 얼굴을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얼굴에 자신이 있다면 입어도 충분히 소화 가능하겠지만..(얼굴이 자신이 있으면 뭘 입어도 소화 가능하지 않나?)

노출’이라고 하면 원초적으로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가 있을 텐데 노출은 최소 2가지의 뜻이 있다. 첫번째론 어떠한 정보를 제3자에 보이는 노출과 자신의 신체부위를 들어내는 노출. 이 2가지의 뜻이 있다. 전자는 원하지 않는 노출이고, 후자는 원하는 노출로 생각된다. 오늘은 후자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왜 노출을 할까? 왜 들어내야 하는가? 에 초점을 두고 말하자면 첫째로 온도와 관련이 있다. 특히 가장 더운 여름 날씨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노출을 해서 내 신체 온도를 낮추려고 하기 위해 노출을 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얇은 천과 짧은 상하의, 리넨 재질의 옷들을 주로 입는다. 둘째로 미디어에선 연예인들이 패션에 대해 자신의 sns에 올리거나 기사로 인해 패션의 유행을 알 수 있다. 그럼 다른 인플루언서들도 그와 비슷하거나 거기에 더 나아가 새로운 패션을 선도하기도 한다. 단순히 노출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의 선을 부각하는 패션도 종종 있다. 딱 붙는 원피스나 청바지, H핏 치마 같은 제품들은 몸매를 노출시키기에 좋은 옷이다. 노출은 시각적으로 많은 정보와 이미지를 상대에게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성적인 매력도 어필할 수 있다. 하지만 노출이 있는 옷들은 여성에겐 자신의 매력을 부각하고 유행에 어느 정도 민감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노출을 패션으로 받아들이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다.

아쉽게도 남성의 입장은 차원이 다르다. 평소 여성이 핫팬츠 정도의 기장인 하의를 입고 다닌다면 여성의 자신감과 성적인 매력이 포인트가 되겠지만, 대한민국의 시각에선 성범죄로 이어지는 참사가 발생된다. 이유는 즉 야하게 입었다, 저 여자(핫팬츠의 기장 정도 오는 하의를 입은 여성)는 날 유혹한다, 남자가 고프다 등 다양한 선입견과 드러운 편견을 집어넣어 판단하게 된다. 마치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유혹해 성범죄를 일으키지 말라는 이유로 히잡을 두르고 다니는데 이처럼 저능한 문화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여성의 옷차림새로 성희롱하거나 성범죄를 일으키는 건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말 번번이 일어난다. 가령 간편한 옷차림으로 편의점을 가더라도 짧은 반바지를 입는 경우가 있는데 (여성은 단지 편해서 입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남성은 거기에 자신의 성적 욕구를 드러낸다. 이러한 범죄의 원흉이 여성의 노출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문화다. 참 의아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구속은 많다면 왜 남성에 대한 구속은 어디에 있을까? 왜 남성의 성욕에 대한 구속 없이 여성의 몸에 대한 구속만 존재하며, 마치 여성은 태어난 자체로 성적 욕구를 드러내니까 가려야 하는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남성의 편리를 강요한 삶이 아닐까?

세상은 남성의 시각으로 해석된 사례들이 많다. 나라에 중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들도 남성의 시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여성에 대한 차별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항상 남아있다. 사회적 약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영화나 책도 차별을 받으니 얼마나 사람에게 공감을 할 여유가 없는 사회인가. 그리고 편협한 시각에서 약자들의 고통을 해석 해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한다던가, 망상이라고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말로 망상인가?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 ‘성범죄’라고 치면 대부분 가해자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피해자로서 존재하는 게 어렵고 가해자가 처벌받긴 힘든 세상이다. 피해받은 여성은 따로 거처로 옮겨져야 하고 가해자는 사회에 남아 또 다른 성범죄를 일으키는 이 악연의 굴레는 언제쯤 벗어날 수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이란? 1908년 3월 8일 미국 1만 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노동조합과 선거권 결성의 자유를 얻기 위해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에서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외쳤다. 여기서 빵이 의미하는 바는 남성과 비교해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가 가득한 최악의 환경에서 하루 12~14시간씩 노동에 임해야 했지만,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1911년 유럽에서 첫 행사가 진행됐었다. 세계 각국에서 남녀 차별 철폐와 여성 지위 향상 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에 유엔에서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 3월 8일을 지정해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3월 8일엔 빵과 장미를 나눠주는 행사가 실시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여성의 날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부터 나혜석 선생님, 박인덕 선생님 등이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왔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맥이 끊겼지만 1985년 공식적으로 다시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2월 20일, 여성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안이 국회에 통과됨에 따라 2018년 3월 8일이 법정 기념일인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평소 일상과 같은 오늘이 몇십 년 전엔 비극을 맞이해왔고 불합리에 투쟁을 해왔다. 당연히 없어져야 될 일들이 만연하게 일어나고 불평등을 겪으며 더 이상 불합리와 불평등에 굴복하는 게 아닌 극복한 날이다. 오늘날까지 힘겨운 투쟁으로 힘드신 분들을 기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따뜻한 말과 빵, 장미를 나눠주는 건 어떨까?





*대표이미지는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님의 작품입니다.(인스타그램 주소: www.instagram.com/kokoon)*